[전문가 기고]엔지니어링 산업, 제도 개선 시급하다

이재완 한국엔지니어링협회장
이재완 한국엔지니어링협회장

엔지니어링 산업. 처음 이 용어를 들으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딱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그러나 엔지니어링 산업은 지난해 기준 종사자가 13만명이고, 국내외 수주 실적을 6조4959억원 기록했다.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 건설·설비·제조 등 모든 산업에서 기획, 설계, 감리 등을 제공해 사업 성공을 위한 최적 상황을 만든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국가 산업에 미치는 경제 효과가 다른 산업에 비해 높다.

파급력이 대단하다. 엔지니어링 산업은 주어진 자원과 과학 기술, 전문 지식을 활용해 유리하게 유무형 재화를 창출하는 특성이 있다. 엔지니어링 산업 내실 성장은 곧 건설, 플랜트,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등 다양한 산업 경쟁력 향상을 의미한다. 한국은행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부가가치율은 제조업의 약 2.6배에 이른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득 중심 사회 만들기에 딱 맞는 옷인 셈이다.

좋은 일자리도 창출한다. 서비스업이 고용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엔지니어링 산업 고용유발계수는 제조업 갑절 수준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경제 활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을 때 터줏대감처럼 등장하는 주제가 '엔지니어링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인 이유다.

지난날 우리나라는 역량과 경험 부족으로 엔지니어링보다 부가 가치가 낮은 시공 분야에 집중했지만 점차 고부가 가치 산업인 엔지니어링 분야로 전환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과 희생을 했다. 그 결과 현재 한국 엔지니어링 분야 경쟁력은 세계 12위라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왔다. 이후 시선은 당연히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해외 진출'로 쏠렸다.

그러나 제도가 발목을 잡았다. 국내 공공발주 사업 대부분이 출혈경쟁에 따른 저가 수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해외수주 건은 대부분 '유사사업 수행실적'을 조건으로 내건다. 경험을 중시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제 살 깎기 식' 국내외 수주 경쟁은 해외 진출을 어둡게 만들었다.

엔지니어링 산업에는 기술성, 전문성, 창의성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협상에 의한 계약'이라는 입찰 방법을 따른다. 기술 평가 중점으로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계약 방법이다. 문제는 낙찰 하한율 기준이 60%고, 이 기준에 가까울수록 기술 점수에서 우위에 있어도 낙찰 결과가 뒤집힐 수 있도록 설계된 점이다.

그 결과 국내 공공발주 엔지니어링 산업에는 대부분 저가 계약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이는 경영 악화로, 다시 기술 인력 유출 및 우수한 인력 엔지니어링업계 근무 기피와 투자 축소로 이어졌다. 외형 성장에도 엔지니어링 산업의 해외 진출 활성화 실현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반 경쟁 입찰 평균 낙찰률은 약 78.9%다.

글로벌 기업은 기술력 확보, 사업 영역 확장 및 현지화를 위해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서는 등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중국은 풍부한 자금을 동원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적극 지원, 확대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어렵게 쌓아 올린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제값을 받을 수 없는 평가 방식 개선을 시작으로 엔지니어링 산업을 선순환 구조화해야 한다. 최소한 소프트웨어(SW) 산업 활성화를 위해 2014년부터 낙찰 하한율을 60%에서 80%로 올린 것과 비슷한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

엔지니어링 산업의 인력 유입을 활발히 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국제 공인 교육 과정 개발 및 제도 개선을 통한 엔지니어링 경쟁력 강화 방안 등 정책 지원도 필요하다.

엔지니어링은 산업의 기초 체력이자 기본 중 기본이다. 엔지니어링 역량 강화 없이 한국의 주력 산업 경쟁력 강화도 요원하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재완 한국엔지니어링협회장 leeunescap@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