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칼럼]눈 앞에 온 자율주행, 택시 생존 위해 플랫폼과 협력해야

이태희 벅시 대표<전자신문DB>
이태희 벅시 대표<전자신문DB>

최근 공개, 비공개로 열린 여러 카풀 관련 토론회에 업계 대표로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택시를 대표한 이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도 뜻을 함께하게 되는 내용이 있었다. “택시 규제를 대폭 풀어 택시가 근본부터 변화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과 “자율주행 시대를 대비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택시 앞에 놓인 가장 큰 위기는 카풀이 아니다. 자율주행 차량이다. 자율주행차, 특히 자율주행 택시는 앞으로 5년 안에 국내에서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2020년부터 자율주행차 판매 허용을 위한 규제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택시는 출시와 함께 시장을 석권하게 된다. 인건비 때문이다. 2017년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이 분석한 택시 원가를 보면 운송직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49.8%, 유류비(LPG)가 20.8%다. 둘을 합치면 70%가 넘는다. 완전 자율주행 전기차로 택시를 운행하게 되면 인건비는 0%가 되고, 유류비는 5% 수준으로 떨어진다. 인간이 운전하는 택시와 자율주행 택시는 요금 경쟁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율주행차는 자가용도 없앤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7년 초 현재 10억대가 넘는 자가용이 2050년까지 3억대 수준으로 줄고, 자율주행차 2억대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자가용 보유량이 현재 10%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란 예측도 있다.

이런 전망에 비춰 (택시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와 (자가용 운전자가 운전하는) 카풀 갈등에 대해 심하게 말하면 5년 또는 10년 이내에 사라질 일로 갈등을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변수는 있다. 한국의 자율주행 준비가 당혹스러울 정도로 늦다.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중국, 미국, 독일, 일본, 한국) 가운데 현재까지 상용 또는 시험용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또는 계획)를 내놓지 않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에선 우버와 구글(웨이모)이 올해 상용화된 무인택시 서비스를 내놓았다. 웨이모의 자율주행 택시는 인간의 손과 발이 닿는 핸들과 브레이크, 액셀러레이터 자체가 없는 100% 완전 자율주행차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지난해 중순 무인택시 시범서비스가 시작됐다.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 나리타공항과 도쿄 도심을 연결하는 택시를 무인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중국의 디디추싱은 지난해 중순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율주행차 테스트를 하고 있다. 독일 벤츠도 올해 상반기 중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버와 구글에 이은 세 번째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시작한다.

한국의 자율주행 대비가 늦는 것은 교통 혁신 중심에 있는 카카오모빌리티 같은 교통 플랫폼의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와 적대 분위기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자동차와 SK가 중국 디디추싱이나 동남아 그랩과 같은 해외 플랫폼에만 투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택시 정치력이 효과 높게 카풀 서비스를 막고 있듯 국내 자율주행 시대 개막도 늦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카풀 관련 토론회에서 택시 쪽 참석자는 하나같이 “카풀은 우버와 같은 자가용 영업을 시작하기 위한 핑계이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카카오 모빌리티가 결국 '우버화'할 것이니 미리부터 막자는 것이다. 사견으로 이런 접근법은 오히려 우버에 대문을 열어 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본다. '토종' 플랫폼과 '토종' 자율주행 택시가 제때 자리를 잡지 못하면 우버나 디디추싱 같은 글로벌 업체가 자기 브랜드를 단 자율주행 차량과 택시를 내세워 국내에 진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5년 안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자율주행차 전문가인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정책위원은 저서인 '이동의 미래'에서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10년 이상 늦었다. '패스트 팔로어' 전력으로는 모빌리티와 자율주행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기는 이미 늦었다”면서 “기술 격차를 생각한다면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우버와 디디추싱에 국내 모빌리티 시장 및 자율주행차 시장의 안방을 내주고 난 뒤면 택시업계도, 우리 산업계도 대책이 없게 된다.

자율주행 시대에도 사람이 운전해 주는 차량과 택시를 원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 택시 기사가 살 수 있다.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는 로봇택시에 비해 사람이 주는 안정감과 친근감, 친절함이 살아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 택시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이 부분이 아닐까? 한국 택시는 반대만 해서는 살 수 없다. 플랫폼과 협력하고 함께 논의해야 더불어 살 수 있다.

이태희 벅시 대표 taehee.lee@buxi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