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약진, 인력 부족, 지원 삭감... 팹리스 '삼중고'

국내 10대 팹리스 업체 실적 추이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국내 10대 팹리스 업체 실적 추이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지난해 적자를 기록한 국내 팹리스 업체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적 격차에 따른 양극화도 심화됐다. 중국 업체의 급성장, 국내 인력 부족 등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메모리 반도체에 편중된 국내 반도체 산업 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육성 전략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국내 팹리스 상장사 가운데 매출 상위 10위권에 든 회사 가운데 아나패스, 알파홀딩스, 티엘아이, 동운아나텍, 픽셀플러스 등 5개 회사가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 제주반도체는 실적이 공시되지 않았지만 이변이 없으면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에 들어가는 컨트롤러, 드라이버 집적회로(IC)를 설계하는 아나패스와 티엘아이는 디스플레이 업계 불황에 직격타를 받았다. 적자를 기록한 회사도 갈수록 늘었다. 10개 업체의 5년 동안 영업이익(손실) 추이를 분석한 결과 2014년과 2015년에는 각 1곳이었지만 2016년과 2017년 각 4곳, 2018년 5곳으로 점차 늘었다.

업체 양극화도 심화됐다. 실리콘웍스 등 상위 4개 업체는 매출 증가와 흑자를 기록한 반면에 적자를 기록한 5개사 모두 적자 폭을 줄이지 못하거나 감소했다. 홍상진 명지대 교수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200개가 넘는 팹리스 업체가 있었지만 2010년대 들어와서 약 절반 줄었다”면서 “10위권 아래 회사는 실적 부진 늪이 더욱 깊어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팹리스 업체가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 약진 때문이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이후 최근 5년 동안 빠르게 시스템 반도체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국내 자리를 크게 위협했다. 한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제조사에 드라이버 IC를 수출하는 회사가 많다”면서 “빠르게 성장한 중국 회사가 내수 수요를 차지하면서 한국 업체가 설 자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저가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하던 업체는 경쟁력을 잃고, 고부가 가치 제품을 생산한 몇 개 기업만 생존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적 악화는 인력 부족과도 관련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인력이 처우가 좋은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대기업을 선호하면서 중소업체가 많은 팹리스 인력난이 더욱 심해졌다고 토로했다. 정부 지원이 쪼그라든 것도 문제다. 15여년 동안 정부의 시스템 반도체 인력 양성 사업 지원 추이를 살펴보면 2003년에 224억원이 투입됐지만 점차 감소, 올해는 61억원이 배정됐다. 업계 관계자는 “시스템 반도체 설계는 석·박사 이상 인재가 고난도 기술로 승부를 보는 분야”라면서 “정부와 업체 모두 단기적인 시각보다는 길고 꾸준한 투자를 해야 하지만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시스템 반도체 육성의 중요성을 느끼고 2017년 41억원에서 지난해 60억원대로 예산을 책정했다”고 해명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