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병인가?]<1> 전문성 부족한 연구기반 질병화, 과연 괜찮나?

[게임은 병인가?]<1> 전문성 부족한 연구기반 질병화, 과연 괜찮나?

세계보건기구(WHO)가 오는 5월 게임장애를 정식 질병으로 등재할 지 여부를 결정한다. 게임은 이제 산업과 문화를 넘어 보건영역까지 공적 책무를 지게 될 전망이다. 본지는 게임의 본질은 무엇인지, 게임으로 인한 부작용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짚어본다. 나아가 게임을 향한 부정적 시선을 해소하는 사회적 방안을 살펴보고 대안을 마련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게임은 병인가?]<1> 전문성 부족한 연구기반 질병화, 과연 괜찮나?

세계보건기구(WHO)가 5월 국제질병분류 제11개정판(ICD-11)에 '게임장애'를 등재하려는 움직임에 우려가 일고 있다.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우'를 범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연구 결과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만 전문성은커녕 기본 상식 수준 내용조차 담지 않은 논문이 범람하고 있다. WHO가 검토한 게임 중독 관련 연구 논문이 설문 대상자나 설문 항목, 판정 기준 등 표본 구성에 논란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WHO가 게임장애를 올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히자마자 정신건강과 사회과학 등 게임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가 36명이 임상심리학 분야 학술지 '행동중독저널'에 WHO 방침에 반대하는 논문을 투고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존스홉킨스대, 스웨덴 스톡홀름대, 호주 시드니대 등에 재직 중인 학자가 참여했다.

이들은 게임장애 진단을 지지하는 연구진 간에도 게임장애를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했다는 점, 근거가 빈약하다는 점, 비 임상적인 사회맥락을 간과할 수 있다는 점, 질병 분류 시스템 상 새로운 질환을 공식화하기 이전 중독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돼야 한다는 점 등을 꼽아 반대했다.

이처럼 게임장애 혹은 게임중독은 개념·정의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관련 연구가 깊지 않은 탓이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팀이 최근 공개한 '게임과몰입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2013~2018년 6개년간 '게임중독'과 '게임과몰입'을 다룬 국내외 논문 671편 가운데 게임 이름을 1개 이상 구체화해서 명시한 논문은 55편에 불과했다. 전체 논문의 8.2% 남짓이다. 게임 이름을 적시하지 않는 논문 비중이 90%를 넘었다.

게임을 특정하지 않은 채 연구 대상을 추상화했다. 게임이 아닌 '게임 유형'으로 범주를 임의로 확장해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전체 논문 가운데 38%인 256건은 플랫폼이나 장르 등 이용 행태가 다른 개별 게임 특성을 무시하고 모두 게임으로 통칭했다.

구체화해서 지칭한 경우에도 PC 온라인, 모바일, 콘솔, PC 패키지 게임 등 의미가 서로 다른 용어를 게임으로 일반화시켰다. 어떤 게임이, 어떤 요인이 과몰입과 연관이 있는지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연구 방향을 설정한 것이다. 요인 또는 병인을 밝히는 연구임에도 차이를 무시한 채 연구 대상으로 묶어 한계가 명확하다. 아울러 모바일 게임 시장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이를 대상으로 한 관련 연구는 드물다.

게임중독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척도로 쓰인 설문조사 방식도 30개 이상으로 일관되지 않았다. 상당수 논문은 1996년에 개발된 '영의 척도'를 사용했다. 이는 인터넷 중독을 진단할 때 쓰인다. 게임 중독을 진단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한계를 인정하지만 도출한 결과로 게임을 정신의학 관점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논문도 있다. 개개인 특성을 가지고 분석한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적용했을 때 생태학적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전체적 중독 위험 요인 예측에 한계가 있다고 인정한다. 정작 연구결과는 게임이용이 정서적 사회적 문제 등 사회적 우려를 증가시킨다고 결론짓는다.

이는 여전히 게임중독에 관한 일관된 조사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연구 방식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과장된 언어와 편향된 관점에서 진행하는 논문도 있다. 실체가 없는 게임중독을 이미 사회적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존재로 확정 짓고 연구를 진행한다. 자해와 폭력, 살인, 탈수, 영양결핍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면서도 근거를 적시하지 않는 건 기본이다. 인터넷중독, 게임중독 개념을 혼용해서 사용한다. 빈약한 근거를 선정적인 단어로 과격하게 표현하는 논문도 있다. 의도적으로 기준을 바꿔 과장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중독률이 6.1%라고 표현하고 10명 중 7명이 중독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현재 게임중독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의학계 분석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게임에 과몰입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우울증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이 함께 나타난다. 이것이 게임 때문인지 우울증이나 ADHD 때문에 중독 증세가 나타나는지 규명하기 쉽지 않다.

사회·환경적 영향에 따른 중독유발에 관한 연구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게임 이용자 패널 연구 보고서'에서는 학업 스트레스가 청소년이 게임에 집중하는 요인이 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게임중독에 대한 전문가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보건당국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고 체계적인 치료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방침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면 국내에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외에서도 논란 중인 WHO 결정을 그대로 따르겠다는 것이다.

게임 몰입 증상을 질병으로 간주하는 것은 결국 의료기관 치료를 전제로 한다. 중독을 유발하는 게임을 만든 회사가 이 비용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끌어 간다. 19대 국회에서 신의진 의원과 손인춘 의원이, 최근에는 최도자 의원이 실제로 이 논리를 법제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신의학전문의는 “과몰입이 환경에서 기인하는지 아직 규명이 안 된 상태”라며 “학회 모두가 인정할 만한 연구결과물이 쌓일 때까지 충분히 연구·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