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최초 블랙홀 관측...지구 크기 가상 망원경으로 관측

초대질량 블랙홀 모습이 사상 처음으로 공개됐다. 블랙홀 연구가 이론에서 벗어나 실제 관측 영역으로 진입했다. 우주 탄생, 진화 등 수많은 수수께끼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게 됐다.

EHT 프로젝트가 관측한 M87 중심부 초대형 블랙홀의 그림자. 중심의 검은 부분은 블랙홀(사건의 지평선)과 블랙홀을 포함하는 그림자다. 고리의 빛나는 부분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자료:한국천문연구원]
EHT 프로젝트가 관측한 M87 중심부 초대형 블랙홀의 그림자. 중심의 검은 부분은 블랙홀(사건의 지평선)과 블랙홀을 포함하는 그림자다. 고리의 빛나는 부분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자료:한국천문연구원]

사건지평선망원경(EHT, Event Horizon Telescope) 연구진은 10일(우리시간) 미국 천체물리학저널 레터스(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 특별판에 관측한 블랙홀 이미지를 공개했다.

EHT는 세계 각국에 있는 전파망원경을 연결, 지구 크기 가상 망원경을 만들어 블랙홀 영상을 포착하는 국제협력 프로젝트다. 사건지평선이란 블랙홀 안팎을 연결하는 지대를 뜻한다.

연구진은 관련 논문 6편을 발표하고 처녀자리 은하단의 중심부에 존재하는 거대은하 M87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 영상을 공개했다. 이 블랙홀은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져 있다. 무게는 태양 질량 65억배에 달한다.

블랙홀은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강한 중력을 가지고 있다. 사건지평선 바깥을 지나가는 빛도 중력에 의해 굴절한다. 블랙홀 뒤편에 있는 밝은 천체나 블랙홀 주변에서 내뿜는 빛이 왜곡돼 블랙홀 주위를 휘감는 이유다. 왜곡된 빛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블랙홀을 비춰 블랙홀의 윤곽이 드러나게 하는데 이 윤곽이 '블랙홀의 그림자'다. 연구진은 수차례 관측자료 보정과 영상화 작업을 통해 고리 형태의 구조와 중심부 어두운 지역, 즉 블랙홀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M87 사건지평선이 약 400억㎞에 걸쳐 드리워진 블랙홀의 그림자보다 2.5배가량 더 작다는 것을 밝혀냈다.

블랙홀은 극단적으로 압축된 천체다. 매우 작은 공간 내에 엄청난 질량을 포함하고 있다. 지구 질량과 비슷한 블랙홀 지금 크기는 탁구공 절반보다 작다. 이런 블랙홀이 시공간을 휘게 하고 주변 물질을 초고온으로 가열시키면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끼친다.

이번 연구에는 지구 크기 가상 망원경이 쓰였다. EHT는 망원경 8개를 연결해 이전에 없던 높은 민감도와 분해능을 가진 가상 망원경을 만들었다.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 아타카마 패스파인더(APEX), 유럽 국제전파천문학연구소(IRAM) 30미터 망원경,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 대형 밀리미터 망원경(LMT), 서브밀리미터 집합체(SMA), 서브밀리미터 망원경(SMT), 남극 망원경(SPT)이 참여했다. 지구 자전을 이용해 합성하는 기술로 1.3밀리미터 파장 대역에서 거대한 지구 규모 망원경을 구동했다. 이 가상 망원경이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 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다. EHT의 공간분해능은 파리의 카페에서 뉴욕에 있는 신문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정도다.

관측은 2017년 4월 5일부터 14일까지 6개 대륙에서 진행됐다. 같은 시각, 서로 다른 망원경을 통해 들어온 블랙홀 전파신호를 컴퓨터로 통합 분석해 이를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블랙홀 영상을 얻었다. EHT의 원본 데이터를 최종 영상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분석은 독일 막스플랑크 전파천문학연구소(MPIfR)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 헤이스택 관측소에 위치한 특화된 슈퍼컴퓨터를 활용했다.

향후 국제전파천문학연구소(IRAM NOEMA) 천문대, 그린란드 망원경(GLT) 그리고 킷픽(Kitt Peak) 망원경 참여로 민감도가 더욱 향상될 전망이다.

한국은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자 등 8명이 동아시아관측소(EAO) 산하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과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 협력 구성원으로서 EHT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한국이 운영하고 있는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과 동아시아우주전파관측망(EAVN)이 이번 연구에 기여했다.

이번 국제 협력 연구는 세계 연구자가 긴밀한 공조를 통해 진행했다. 예산은 미국국립과학재단(NSF), 유럽연구회(ERC) 그리고 동아시아의 연구재단들로부터 지원 받았다.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이번 결과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증명한 것으로 그간 가정했던 블랙홀을 실제 관측해 연구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면서 “향후 EHT의 관측에 한국 기여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쉐퍼드 도엘레만 EHT 프로젝트 총괄 단장(하버드 스미스소니안 천체물리센터 박사)은 “인류에게 최초로 블랙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이 결과는 천문학 역사상 매우 중요한 발견이며, 2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의 협력으로 이뤄진 이례적 성과”라고 언급했다.

하이노 팔크 EHT 과학이사회 위원장은 “블랙홀이 밝게 빛나는 가스로 이루어진 원반 형태 지역에 담겨 있다면 블랙홀이 그림자와 같은 어두운 지역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가정했다”면서 “이 현상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예측되지만 우리가 이전에는 전혀 직접적으로 보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이노 위원장은 “사건지평선에서 빛이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으로 휘어져서 생긴 이 그림자를 통해 M87 블랙홀 어마어마한 질량을 측정했다”고 말했다.

폴 호 동아시아관측소(EAO) 소장은 “이번 관측결과를 시공간 휘어짐, 초고온으로 가열된 물질과 강한 자기장을 포함하는 물리학적 컴퓨터 모델과 비교할 수 있었다”면서 “실제 관측 영상의 다양한 특징이 이론적 예측과 놀라울 정도로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로써 블랙홀 질량 측정을 포함한 우리 관측결과를 확신했다”고 덧붙였다.

최호 정책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