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박대연 티맥스 회장 "1조원 투입해 티맥스공과대학 세우겠다"

박대연 티맥스 회장.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박대연 티맥스 회장.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동생 뒷바라지를 모두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컴퓨터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일념으로 건너간 미국에서 8년 만에 학사와 석·박사 학위를 모두 거머쥐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티맥스소프트를 창업하고 KAIST 교수로 재직하는 등 국내 소프트웨어(SW) 산업에 한 획을 그은 박대연 티맥스 회장(티맥스소프트 최고기술책임자·CTO)이다.

티맥스소프트를 창업하기 전 이미 전자신문과 연을 맺었던 것 같다며 30여년 만에 잊혀졌던 개인 박대연으로 수상 사실을 밝혔다. 박 회장은 1987년 전자신문이 주최한 SW 관련 시상식에서 개발분야 장려상을 수상했다. 티맥스소프트를 설립하고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얘기, 당시 유학을 결심하고 지금까지 SW 개발에 매진하게 된 계기 중 하나라고 회상했다.

박 회장은 국산 SW 경쟁력을 입증한 산증인이다. SW 원천기술 확보와 도전 정신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 창업한 티맥스소프트에서 국산 SW 원천기술로 미들웨어 '제우스' 개발에 성공했다. 2005년 당시 시장을 장악해온 IBM 등 외산 SW를 제치고 국내 미들웨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기록했다. 10년이 훌쩍 지난 현재도 계속 1위를 수성하고 있다.

제우스 개발과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다. 국산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개발에 뛰어들어 '티베로' 개발에 성공했다. IBM·오라클 등 외산 DBMS 일색이던 국내시장에서 티베로는 두각을 나타냈다. 최근 브라질 3대 연금기금 FUNCEF와 현대·기아자동차 DBMS 외산 윈백에 성공했다.

제우스와 티베로 개발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가 완전 장악한 국내 운용체계(OS)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두 차례 실패를 겪은 뒤 지난해 티맥스OS를 공개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 PC버전이 구동되고 MS·한글과컴퓨터 등 오피스SW와 호환은 물론, 자체 오피스를 탑재할 정도로 기술력이 향상됐다. 공공·기업시장 공략을 추진 중이다.

2009년 워크아웃이라는 악재를 극복하고 10년간 '두문불출'하던 박 회장은 최근 통합 클라우드 플랫폼 등 클라우드컴퓨팅 기술과 서비스를 들고 공식석상에 섰다. 기업을 설립한 초심, 목표였던 티맥스공과대학 설립을 향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대담=김인순 SW융합산업부장

박대연 티맥스 회장.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박대연 티맥스 회장.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1조원 투입해 티맥스공대 설립한다

“티맥스공과대학을 설립하겠습니다.” 티맥스공대 설립에 1조원을 투입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 회장은 티맥스소프트 창업 이후 우리나라에도 캘리포니아공대(CALTEC) 같은 우수 공과대학을 설립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티맥스 최대주주이자 회장, CTO지만 사내에서 '교수님'으로 불리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티맥스공대는 박 회장이 약속한 사회 환원 일환이다. 미혼인 그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단언했다. 박 회장은 “가족이 있었으면 일도 안되고 상속 문제가 많았을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하고 싶어서가 아닌 강제로 사회공헌을 하게끔 하는 문화가 있는데 티맥스는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과 공공이 아니었다면 티맥스는 없었다”며 “티맥스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사회에 100% 환원할 것”이라고 의지를 나타냈다.

영감을 얻은 CALTEC 재학생 절반인 1000명을 매년 양성할 계획이다. 실력뿐만 아니라 일과 연구에 대한 철학이 있는 학생을 뽑아 전문인력으로 키울 계획이다. 박 회장은 “돈을 가진 자가 아닌 지식을 가진 자 양성을 목표로 학교를 설립할 것”이라며 “철학을 갖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롭기 때문에 최첨단 기술과 교육이 구비된 학교를 만들고 전액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유학과 창업…설계학교로 꿈을 시작하다

한창 학업에 정진할 나이에 집안 어르신들이 하나둘 돌아가시면서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챙겨야 할 동생이 네 명이나 있었다. 공부보다 생계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들 뒷바라지가 모두 끝난 시점이 1988년이었다. 박 회장은 그 길로 유학을 떠났다.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컴퓨터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96년 한국에 돌아와 한국외대에서 교수직을 맡았다. 1997년 1인 기업으로 티맥스소프트를 창업했다. 2000년 1월 연구원이 들어오기 전까지 혼자 운영했다. 운이 좋았다. 박 회장은 1998년 KAIST 교수가 됐다. 당시 제자 3명이 지도교수가 고생이 많다며 돕고 싶다고 회사에 들어왔다. 그렇게 티맥스가 출발했다.

◇시스템 SW 최초 상용화와 박세리 우승

1998년 7월 17일 최초로 시스템 SW 상용화에 성공한 날이다. 당시 과학기술부에서 도와줘서 언론에 데뷔했다. 미들웨어 상용화였으니까 의미가 컸다. 지상파 메인 뉴스에서도 보도를 위해 일주일간 촬영했다. 기사가 나가기로 돼 있었던 날 박세리 선수가 U.S. 오픈 우승을 했다. 기사는 당연히 나가지 못했다. 박 회장은 “단시간 내 효과적으로 홍보할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당시 정부 주도 SW 개발, 국산 SW 상용화에 부정적 인식이 컸다. '국산 SW도 쓸 만하다'는 신뢰를 쌓는 게 관건인 시대였다.

박대연 티맥스 회장
박대연 티맥스 회장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워크아웃'

제우스 성공으로 계속 성장가도에 있던 티맥스는 2010년 돌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돌입했다. 대내외적으로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박 회장은 “2009년 4월 23일 당시 티맥스소프트 사장이 내일 월급 줄 돈이 없다는 보고를 했다”고 회고했다. 티맥스에는 2100명 임직원이 있었다. 그 뒤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해결책을 강구했지만 결국 2010년 2월에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티맥스는 고객 도움으로 회생에 성공했다. 고객이 시스템 SW 원천기술이 있는 기업을 살려야 한다며 더 사줘서 매출이 올랐고 티맥스 코어를 삼성에 매각했다. 워크아웃을 1년 만에 졸업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2011년 회사는 정상화됐다.

◇10년간 사라진 이유는 '연구'

워크아웃이 반환점이었다. 박 회장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했다”며 “워크아웃 돌입 전후로는 2008년 세계 위기 등 외부환경 탓으로 돌렸지만 회사가 정상화된 뒤 결국 기술력 문제였다고 진단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당시 제품 경쟁력이 없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우수한 연구원이 많았지만 직접 진두지휘를 해야겠다고 결정한 계기다.

그 길로 박 회장은 사회와 단절을 택했다. 약 10년간 친구나 가족, 지인을 만나지 않고 가장 친했던 동료도 만나지 않고 개발에 몰두했다. 제우스를 업그레이드하고 티맥스OS와 클라우드 개발 초석을 닦았다. 2012년 초부터 미국 유학 갔을 때 이상으로 개발에 몰입했다는 게 박 회장 설명이다.

◇티맥스 이끈 동력, 경영철학은 '나라를 바꾸자'

박 회장 경영철학은 '나라를 바꾸자'다. 획일된 교육이 아닌 국민 잠재력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자는 취지다. 정치와는 선을 그었다. '일절 관심이 없다'고 표현했다. 티맥스공대를 설립해 인재 양성을 하면 잠재력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보기술(IT) 영역은 우리나라가 줄곧 잘해왔던 분야인데 정부가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박 회장은 아마존웹서비스(AWS)나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외국계 기업이 약진하는 것에 큰 관심을 뒀다. 클라우드 플랫폼을 장악하는 기업이 미래시장을 가져간다고 판단했다. 티맥스 역시 클라우드 플랫폼에 집중한다. 박 회장은 “세계 클라우드 시장에 오너가 아직은 없다”며 해볼 만하다고 평가했다.

박대연 티맥스 회장
박대연 티맥스 회장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비메모리 반도체 등 미래기술 핵심이 SW인 만큼 정책적 지원 필요성도 강조했다. 공개SW 활용 한계도 지적했다. 모두가 오픈소스를 사용하면 발전이 없다는 게 박 회장 설명이다. MS 윈도가 모든 소스코드를 오픈해서 세계 1위가 된 게 아니라는 지적이다. AWS가 장악한 서비스형인프라(IaaS) 외 다른 클라우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티맥스 클라우드 핵심은 PaaS

IaaS는 하지 않는다. 티맥스는 서비스형플랫폼(PaaS)에 집중한다. 클라우드 통합 플랫폼 핵심은 PaaS와 서비스형SW(SaaS) 통합이다. 사용자 인터페이스상 굉장히 간단하게 미들웨어와 DBMS를 통합 클라우드 환경에서 제공한다. 클라우드 통합 플랫폼 '퍼스트무버'가 티맥스가 가진 차세대 사업 방향성이다. 박 회장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MS OS 호환과 DBMS 클라우드화, 리눅스 오피스 개발”이라며 “티맥스는 20년간 축적된 기술 노하우로 이 모든 것을 해냈다”고 평가했다.

◇10년 만에 공개한 '매출 100조 달성' 계획은

최근 박대연 회장이 제시한 티맥스 매출 목표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글로벌 톱 SW기업 연매출이 100조원인데 티맥스가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시작이다. 박 회장 역시 이러한 여론을 인지하고 있었다. “100조원 충분히 가능하다”며 “OS시장에서 10조원, DBMS 클라우드 10조원,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20조원, 클라우드 오피스 20조원, 교육 패러다임을 바꿀 클라우드 스터디 20조원, 그리고 아직 공개하지 않은 현재 개발 중인 솔루션으로 20조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시장에서 벌이 들이는 매출 목표 총합이다. 세계적 SW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다. 티맥스소프트의 코스닥 상장과 티맥스데이터와 티맥스오에스 나스닥 상장 성공이 전제 조건으로 풀이된다. 박 회장은 “MAGA(MS·AWS·구글·애플)와 함께 글로벌 톱 5 SW기업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성남 금곡동 티맥스타워에서 박대연 티맥스 회장(오른쪽)이 김인순 전자신문 SW융합산업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성남 금곡동 티맥스타워에서 박대연 티맥스 회장(오른쪽)이 김인순 전자신문 SW융합산업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박대연 티맥스 회장은…

1975년 광주상고를 졸업하고 1988년까지 한일은행 전산실에 재직하다 30대 초반 늦은 나이에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오리건대학에서 컴퓨터공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학사부터 박사학위 취득까지 걸린 시간은 6년 5개월이었다.

1997년 시스템 SW 전문기업 티맥스소프트를 창업했다. 기업활동과 함께 1998년부터 2006년 3월까지 KAIST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회사에서 회장이란 직함보다 '교수님'으로 불리며 매일 연구원들과 격의 없는 토론을 하고 있다. 신입사원 채용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티맥스는 경력사원이 아닌 신입사원 위주 채용 문화를 갖고 있다. 제우스, 티베로, 티맥스OS, 클라우드 등으로 연매출 100조원, 세계 톱5 SW기업을 목표로 한다.

정리=

박종진기자 truth@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