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아랍에미리트(UAE)의 핵심 AI 기업 G42를 미국 주도의 기술 진영으로 포섭하기 위한 공작을 펼친 것으로 드러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현지시간) 보도를 통해 G42가 중국과 맺었던 밀접한 기술적 관계를 끊어내고 미국산 첨단 AI 반도체를 확보하기까지의 복잡한 물밑 과정을 공개했다.
미국 정부의 가장 큰 우려는 G42가 중국의 기술적 영향력 아래에 있어, 엔비디아 등 미국의 최첨단 AI 반도체를 제공할 경우 핵심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G42의 실소유주인 셰이크 타눈 빈 자예드 알나하얀 UAE 국가안보보좌관과, 중국 출신으로 과거 화웨이 등 중국 기업과 협력했던 펑 샤오 CEO의 배경은 미 당국의 의구심을 키우는 요인이었다. 펑 샤오가 과거 이끌었던 기업이 전직 NSA 해커들을 동원해 정적을 감시했다는 미 검찰의 수사 결과 또한 의혹을 증폭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CIA는 베테랑 요원 조니 개넌을 UAE 아부다비에 파견해 G42에 대한 집중 감시와 관리를 수행하도록 했다. 대사관 직원으로 신분을 위장한 개넌은 G42 관계자들을 끊임없이 압박하고 설득하며 중국과의 기술적 관계를 청산하도록 유도하는 이른바 '관리자' 역할을 했다. 그 결과 G42는 1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화웨이 장비를 철거하고 외부 감사인을 도입하는 등 미국이 요구한 체질 개선안을 수용했다.
미국 정부 내에서는 G42의 변화가 실제 단절인지 아니면 위장 전술인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개넌은 중국 국영기업과 G42 간의 지속적인 접촉 정황을 하급 직원의 독자적 행동으로 해석하는 등 유연한 보고를 통해 UAE와의 협력 관계를 방어했다. 이러한 노력은 바이든 행정부 말기 UAE에 대한 조건부 AI 칩 수출 승인으로 이어졌고, UAE가 중국 대신 미국을 선택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러한 기조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더욱 분명해 졌다. 오픈AI와 엔비디아가 참여하는 대규모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 UAE'가 본격화했고 최근 미 상무부는 UAE에 대한 AI 반도체 수출 통제를 대폭 완화했다.
이로써 G42는 향후 9개월간 엔비디아의 핵심 제품을 제한 없이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선 타눈 보좌관 측이 트럼프 일가 관련 기업에 거액의 투자를 약속한 점을 들어 이해 충돌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백악관은 이를 일축했다.
이번 사태는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단순히 무역 규제에 머물지 않고, 첩보 활동과 외교적 협상, 상업적 로비가 기묘하게 뒤섞인 형태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외신들은 이를 두고 첩보와 비즈니스가 결합한 새로운 외교적 회색지대가 기술 패권의 향방을 결정짓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