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산업 발자취-4회

60년대 후반은 호남전기의 평탄한 성장기였다.

품질관리체제의 강화로 65년 상공부장관으로부터 생산성 품질관리상을 수상 하고, 이듬해엔 우량 KS표시 허가공장으로 역시 상공부장관의 표창을 받는등 호남의 대표적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해가고 있었다.

이과정에서 고 심상하 사장은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고 그의 뒤를 이어 그의 둘째 동생인 심상우씨가 3대 사장에 취임했다. 68년의 일이었다.

전쟁막바지였던 53년 주변의 우려속에서 20대의 젊은 나이에 사장직에 올랐던 심상하씨는 선친의 유업을 이어받아 재임기간중 호남전기를 일약 호남의 간판기업으로 키워놓는 업적을 남기고 일선에서 한걸음 물러선 것이다.

그리고회장에 취임한지 3년쯤 지난 71년, 그는 40대 초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심상하 회장의 죽음이 호남 전기가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 전주곡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당시엔 아무도 없었다.

초창기의힘겨운 여건속에서도 전지 산업의 주춧돌을 놓는 데 매진해왔던 호남전기는 이 때부터 "경영 누수" 현상을 빚으면서 내부로부터 동요하기 시작했다. 당시 회장직을 맡아 호남전기를 이끌고 있던 사람은 심상우씨였다.

그러나큰 형인 심상하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인계된 심상우 회장 체제는 그리 확고하지 못했다.

그리고이는 급기야 경영권을 둘러싼 치열한 내부다툼을 표면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심상우회장의 상대편에 서있던 사람은 다름아닌 고 심상하 회장의 부인이자 심상우 회장의 형수가 되는 진봉자씨였다.

진봉자씨는남편의 사망후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나섰다.

그녀는자신의 친정 식구들을 회사의 요직에 앉히는 등의 방법으로 점차 영향력을 확산시켜 나갔다.

이로인해 심상우 회장과의 마찰정도가 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호남전기의 친인척간 재산싸움은 세인들의 입에도 오르내리면서 호남 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떠오르던 이 회사의 이미지에도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있었다. 어쨌든 경영권 다툼은 결국 진봉자씨의 승리로 일단락 됐다. 심상우 회장이 자리를 물러나고 진봉자씨의 아들인 심홍근씨가 사장을 맡아 회사 경영의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심홍근씨는 당시 선친인 심상하씨가 사장직에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20대의 젊은 나이였다.

심홍근씨가사장직에 오른 것은 이밖에도 몇 가지 점에서 선친인 심상하씨가 사장이 될 때와 매우 유사했다.

아버지의갑작스런 죽음이라는 상황적 요인이 그랬고, 경영을 담당할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최고 경영자로 막바로 진입했다는 점이 그랬다.

그러나그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한사람은 격동기에 선친의 유업을 받들어 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 또 한사람은 경영권 다툼의 결과로서 중책을 맡게 됐다는 점이 그랬다.

그리고이 차이는 결과적으로 호남전기를 각각 흥망의 갈림길로 이끌었던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했다.

20대의심홍근 사장은 기업을 키워내기엔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었다.

그런그가 경영권 다툼의 와중에 사장자리에 오른 것은 결과적으로 심씨 소유의 호남전기의 좌초시간을 재촉하는 것이었으며, 심홍근씨 자신 에게도 불행의 씨앗이 되는 일이었다.

심홍근씨는사장에 오른 후에도 기업 경영에 몰두하지 않고 방탕의 길로 빠져 들어가 선친이 키워놓은 기업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비운을 당한 후 경포대에서 익사하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고 세상에서 잊혀져 갔다.

한편경영권 다툼의 양 당사자 중 한 사람이었던 심상우 회장은 이후 정계에 진출했으나 아웅산 테러사건으로 희생되는 비운을 당했고, 진봉자씨 역시 불미스런 사건으로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수모를 겪으면서 호남전기로 부터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