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4년 미국에서 NTSC방식으로 컬러TV 방송이 시작된 이후 TV는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한 정보원이자 오락물 제공자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지난 43년 동안 쓰여진 TV역사를 집약하면 한마디로 더욱 현실감(Reality) 있는 영상을 안방과 거실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최대의 화면에 최고의 화질을 구현하기 위한 시도라고 요약할 수 있다.
디지털TV가 등장한 근본적인 동기 역시 마찬가지다. 가정용 컬러TV가 날로 대형화하면서 가전업계는 몇가지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기존 방송 및 수신기 규격으로는 40인치 이상의 초대형 TV에서 선명한 화면을 구현하기 어렵다는 것과 브라운관을 사용할 경우 부피가 너무 커 가정용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바로 지난 60년대부터 전세계 가전업계와 방송업계 주도 아래 시작된 고선명(HD:High Definition)TV 개발 프로젝트다. 기존 TV의 2배(수평주사전 1천1백25개)에 달하는 해상도와 콤팩트디스크 수준의 음질, 극장화면과 동일한 16대 9의 화면비율을 갖는 새 TV규격으로 정의된 HDTV 개발에 처음으로 도전장을 던진 나라는 일본이다.
지난 64년 도쿄올림픽이 끝난 직후 NHK기술연구소와 가전업체가 중심이 되어 착수한 일본의 HDTV 개발프로젝트는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방식에 근거한 것이었으며 지난 84년 MUSE(Multiple Sub-Nyquist Sampling Encoding)라는 독자적인 전송방식을 만들어 90년부터 「하이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상용화했다.
이후 하이비전을 전세계 HDTV의 표준으로 만들고자 한 일본의 노력은 유럽과 미국의 저항에 부딪혀 무산되고 말았으나 유럽과 미국의 차세대 TV개발에 결정적인 자극제가 되었다. 유럽연합이 88년에 발표한 아날로그방식의 HDTV 규격인 「HD-MAC」, 미국이 82년에 착수한 디지털 ATV(Advanced TV) 프로젝트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닻을 올리게 됐다.
중요한 것은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의 ATV를 제외하고는 일본과 유럽에서 기존 방송시스템과 동일한 아날로그기술을 토대로 HDTV 개발이 추진됐다는 것이다. 일본 및 유럽과 달리 미국이 디지털방식의 HDTV 개발을 주창한 것은 이 분야에서 선발주자로 나선 일본과 유럽기술과의 차별화를 도모함과 동시에 향후 가전제품이나 정보통신 네트워크가 디지털화될 것이라는 대세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무려 10여년간의 진통 끝에 94년 미국의 가전, 반도체, 통신 분야의 핵심 멤버들로 구성된 「대연합(Grand Alliance)」이 도출해낸 디지털 HDTV 규격은 기술 및 산업적인 측면에서 우수성을 공인받아 그동안 일본과 유럽이 주도해온 차세대 TV 개발에 대한 주도권을 미국방식, 즉 디지털방식으로 급선회시키는 극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HDTV를 둘러싼 규격싸움에서 디지털방식을 주창한 미국이 승리함으로써 전세계적으로 차세대 TV 연구는 「과화질」보다는 「디지털」이란 개념이 공통분모가 되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디지털 기술과 이를 토대로 멀티미디어 기술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컴퓨터업계가 HDTV를 위시한 차세대 TV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됐다. 그동안 차세대 TV의 대명사로 쓰인 HDTV가 디지털TV로 전환된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한마디로 HDTV가 고화질에 비중을 둔 차세대 TV라면 디지털TV는 고화질은 물론 멀티미디어 단말기 개념이 가미된 차세대 TV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미국의 대연합이 제시한 디지털 HDTV 규격이 작년말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의 승인을 얻기까지는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다름아닌 화면주사방식을 둘러싼 컴퓨터업계의 반발 때문이었다. 비월주사(Interlaced Scanning)로 불리는 전통적인 TV 주사방식은 2개의 프레임이 하나의 화면을 만드는 것으로 전파송수신 효율이 높아 동영상을 구현하는 데 탁월하다. 반면 순차주사(Progressive Scanning)라고 불리는 PC의 화면주사방식은 동영상보다는 문자나 정지영상 등 주로 데이터 송수신에 강하다.
순차주사방식을 주장한 컴퓨터업계의 입장은 기존 순차주사방식을 보완하면 TV에 상응하는 동영상을 구현할 수 있고 차세대 TV가 고화질 TV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양방향 멀티미디어 단말기로서 활용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PC에 적용되고 있는 순차주사방식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전업계와 컴퓨터업계의 주장 사이에서 난처한 처지에 몰린 FCC는 시장(방송사 및 소비자)의 선택에 맡기겠다는 명분을 제시하고 양쪽의 입장을 모두 수용해 디지털TV 규격을 통과시켰다.
차세대 TV와 동의어로 인식되고 있는 디지털TV의 요체는 궁극적으로 초대형 TV에서도 기존보다 선명한 화질을 기본으로 디지털 신호처리, 고밀도 데이터 압축기술 등을 활용한 멀티미디어 TV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