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전환기 맞은 PCB산업 (4);구심점이 없다

PCB는 다른 일반부품과 달리 수급구조가 철저하게 주문제작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탓에 관련업체들은 다분히 폐쇄적이며 수동적이다. 이는 그동안 업계의 공동발전을 위한 중대한 사안에서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주된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따라서 외형이 兆단위로 올라선 국내 PCB산업이 명실상부한 국가 핵심 기간부품으로서 자리잡기 위해선 PCB업체들은 물론 관련 전후방업체들의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업계의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특히 PCB는 전자산업의 밭으로 불릴 만큼 가장 기초적인 부품이며 관련 전후방산업은 물론 세트산업 전반에 미치는 기술적,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다. 또한 여러 일반부품들, 특히 반도체 패키지나 TFT LCD 등 첨단부품들과의 기술적인 연관성이 갈수록 높아져 업계를 대표할 수 있는 창구설립의 필요성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사실 그동안 PCB 관련업체들의 이익을 대변할 만한 단일창구가 없어 PCB업계는 숱한 문제점을 방치해 왔고 시행착오를 거듭해 왔다.

우선적으로 지적되는 사례가 대외적인 대표기관이 없다보니 핵심 기간부품이자 유망부품으로 줄곧 주목을 끌면서도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서 철저히 소외돼 왔다는 사실이다.

PCB는 59년 금성사(현 LG전자)가 라디오를 개발하면서 출발, 컬러TV, VCR, PC, 게임기, 휴대폰, PCS 등으로 이어지는 국내 전자산업의 발전에 분명히 큰 공헌을 했음에도 이렇다할 정책적 지원을 받지 못한 채 평범한 범용부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비슷한 기간에 국가적인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고 세계적인 시장지배력을 쌓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의 그늘에 가려져 왔다.

최근엔 중기거점 개발과제로 선정, 수백억원에 집중적인 정책자금이 지원될 예정인 2차전지나 소형모터에도 비견된다.

물론 그간 PCB연구조합(이사장 윤영기 새한전자 사장)을 축으로 적지않은 개발지원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PCB산업의 중요성과 앞으로의 시장전망을 감안하면 보잘 것없는 지원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일부 선발업체들만 가입한 현 연구조합을 통해 정책자금을 지원받은 PCB업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일본, 미국, 대만 등 선진국들은 PCB가 전자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을 반도체 못지않게 중요하게 판단, 정부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을 가하고 있다. 물론 PCB 및 관련업계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업계의 구심점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심지어 후발국인 중국도 PCB를 전자산업 육성의 초석으로 간주, 관련협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확한 산업통계나 시장전망치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취합, 도출됨으로써 현 국내 PCB산업의 관련통계가 지극히 미비한 것도 대표창구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 현재 국내 PCB관련 통계는 일부 업체만 회원사로 가입된 연구조합의 설문조사에 따른 수치가 부분가공돼 전자산업진흥회, 통상산업부 등 관련기관을 통해 유출되고 있어 현실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시장현황과 장, 단기적인 전망에 대한 통계치가 부실하다보니 경기예측을 잘못함으로써 무분별한 설비증설과 중복투자를 야기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가전의 갑작스런 침체에 따라 단면PCB, 페놀원판 등에서 줄줄이 공급과잉 상태를 맞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문인력 부족과 잦은 이직, 신규업체 진출에 따른 무분별한 스카우트, 제살깎기식 과당경쟁, 세트업체들의 가격횡포 등은 업계 대표창구가 없어 생기는 문제』라면서 『관련업계가 참여하는 PCB협회 설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중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