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전자화폐 실용화 "재걸음"

일본 도쿄 시부야역 근처의 아이스크림점. 귀가길의 여고생 서너명이 각자 원하는 메뉴를 선택해 주문한다. 그리고 지갑에서 현금이 아니고 현금카드와 모양이 같은 전자화폐를 자연스레 꺼내 든다. 직원은 그 카드를 받아 해독기에 집어넣고 표시된 금액을 보며 확인 버튼을 눌러 계산을 마친다.

젊은이의 거리로 불리는 시부야에서는 요즘 이러한 광경이 자주 목격된다. 이달 중순부터 개시된 전자화폐 실험 「시부야 스마트카드 소사이어티(SSS)」 때문이다.

SSS 실험은 시부야역을 중심으로 반경 약 1㎞ 내의 번화가에 위치한 상점을 대상으로 내년 10월까지 약 15개월에 걸쳐 실시될 예정이다.

이 실험은 비자 인터내셔널과 시중 은행 등 금융기관 46개사로 결성된 기업 연합이 운영주체로 추진하고 있다.

전자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상점 수는 우선 백화점을 비롯해 커피숍, 가라오케(노래방), 주차장 등 다양한 업종을 포함해 총 8백개 점포이고, 점차 규모가 커져 최종적으로는 2천개 점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대 관심사인 실험용 전자화폐는 모두 4종류로 구성돼 있다. 상품권처럼 다 쓰고나면 버리는 폐기형과 다 쓰면 금액을 보충해 다시 사용하는 리로더블형, 그리고 리로더블타입과 크레디트카드를 통합한 일체형과 리로더블타입에 현금카드 기능을 결합한 타입 등이 있다.

전자화폐는 리로더블형과 크레디트카드 기능 결합형 및 현금카드 기능 일체형의 경우 디시카드 등 10개의 신용카드회사와 도쿄미쓰비시은행 등 10개의 은행에서 발행한다.

폐기형은 공중전화카드처럼 상점에서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으며, 5백엔 짜리의 경우는 가맹점에서 무료 배포하기도 한다.

이 중 리로더블형의 경우는 도큐백화점 등 16군데에 설치돼 있는 전용기계를 이용해 금액을 보충하게 되는데, 이용자는 한번에 최대 3만엔까지 자신의 은행계좌에서 카드로 이체할 수 있다.

SSS 실험은 규모와 장소 두가지 면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즉 도쿄 중심부에서는 처음이고 2천여개의 점포와 46개의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데다 실험기간 중 발행되는 전자화폐만도 13만장에 이르는 사상 최대라는 점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자화폐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SSS 실험의 운영주체측은 실험과정에서 나타난 수요동향 등을 참고해 실험이 끝나는 대로 바로 실용화에 착수할 계획이다.

사실 일본에서는 전자화폐 실용화 실험이 이전에도 여러 차례 실시됐다. 그러나 본격적인 보급단계로까지 발전된 경우는 없었다.

일본에서의 전자화폐 실험이 본격적인 실용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실험으로 그친 것은 카드발행 등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인식부족으로 다른 매체에 비해 결제수단으로서의 편리성이 떨어진다는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현실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비용이다.

현재 카드발행에는 장당 1천엔 정도가 든다. 통상 실험에서는 그 비용을 카드업체가 모두 떠맡게 되는데, 부담능력의 한계 때문에 실험장소가 지방도시나 대학의 생활협동조합 등 상거래가 활발하지 못한 특정 범위로 제한돼 왔다.

또 장소가 제한되면 전자화폐를 결제수단으로 이용할 필요성도 그다지 높아지지 않고 사용자도 늘어나지 않게 된다.

이에 따라 결과적으로 카드발행에 드는 비용은 처음 상태를 유지하고 보급은 계속 부진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 예로 카드업체 JCB가 지난해 7월 도쿄 미타카의 상점가에서 실시한 전자화폐 실용화 실험을 들 수 있는데, 이 실험은 참가 점포수를 약 50개로 극히 제한한 결과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고 결국 반년 만에 중단하게 됐다.

SSS 실험에서도 카드 발행 등의 비용은 그대로 문제가 된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카드 발행이나 단말기 설치비 등은 운영자측이 맡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실험이 기대되는 것은 운영측이 당분간 채산은 2차 문제로 하고 전자화폐의 이용성을 높여 보급을 촉진시키는 데 최대의 목적을 두고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하며 대규모로 추진하려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실험은 유행을 선도하는 젊은층이 몰리는 시부야를 무대로 하기 때문에 전자화폐를 일반에 빠르게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내년 봄에는 도쿄의 또 다른 중심가 신쥬쿠에서도 일본전신전화(NTT)와 시중은행이 주체가 돼 백화점 등 1천개 상점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전자화폐 실용화 실험을 벌일 예정이다.

전자화폐는 이들 대규모 실험을 계기로 일본인들의 소비생활 속으로 본격적으로 침투해갈 것으로 보인다.

<신기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