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기획자들의 간절한 희망은 단 한가지. 좋은 책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많이 파는 것이다.
그러나 기획자들의 간절한 희망과 달리, 국내 컴퓨터 출판계는 그동안 양적으로는 초고속 성장을 했으나 질적인 성장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출판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우선 출판사들이 한두권의 책이라도 정성을 들여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별로 5권씩, 심지어 많은 경우에는 10권 가까이 쏟아내는 과당경쟁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 한 출판사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시장을 일궈놓으면, 다른 출판사들이 마구잡이식으로 뛰어들어 경쟁서적을 펴내는 것도 주요 요인으로 들고 있다.
더욱이 출판사들은 대부분 윈도 등 운용체계, 프로그램 언어, 인터넷, 그래픽 등에 국한된 책을 무리하게 중복출판하다 보니 서로 저작권을 침해하는 사례도 빈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중복출판은 출판사간 무리한 가격할인과 부록 끼워주기 식의 비정상적인 경쟁을 부추겨 시장질서를 문란하게 함은 물론 그 결과 최근에는 책 제작비에도 못 미치는 3000∼4000원 짜리 컴퓨터 관련서적이 출판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국컴퓨터매거진이 올해 초 「3D STUDIO MAX」로 매출을 올리자 국내 각 컴퓨터 출판사들이 앞다퉈 이 분야 책을 집중적으로 내놓아 시장질서를 극도로 문란하게 만든 것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리눅스분야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보문화사가 펴낸 「한글 리눅스 알짜 레드햇 5.2 Bible」이 시내 대형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끌자, 10여개 출판사가 이 분야로 뛰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중복된 내용은 물론 부실한 것도 상당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개발툴 분야에서는 비주얼베이식 관련서적의 중복출판이 집중되고 있으며, 또 오는 6월 말 발표 예정인 「오피스 2000」 관련서적도 중복출판 현상이 심각하게 벌어지는 상황이다.
특히 영진출판사와 정보문화사 등 컴퓨터 출판계 선두주자들이 모두 이러한 중복출판 경쟁의 최선두에 나서 있고 삼각형, 크라운 등도 이에 질세라 비슷한 책을 경쟁적으로 출간하고 있어 중복출판 현상은 컴퓨터 출판계에 고질병으로 더욱 문제가 확산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들 출판사들이 올해 포토숍과 인터넷분야에서 각각 펴낸 책의 종류로는 우선 정보문화사가 포토숍분야에서 「기초에서 활용까지 포토샵 5」를 비롯해 모두 8종(계열사인 인포북 포함)의 책을 펴내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삼각형이 「류미오와 함께 하는 포토샵 & 누드샵」 등 7종, 영진출판사가 「특별판 NEW 포토샵5 쉽게 배우기」 등 6종을 각각 쏟아냈다.
이에 비해 인터넷분야에서는 영진출판사가 「할수있다! 강남길의 TV보다 쉬운 인터넷」을 비롯해 모두 4권의 인터넷 책을 펴낸 데 이어 크라운과 삼각형도 각각 3권의 인터넷 활용서를 펴내 그 뒤를 이었다.
물론 중복출판이 공정한 경쟁만 보장되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독자들이 더 좋은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등 바람직한 측면도 기대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뒤에 숨겨진 폐해는 자칫 컴퓨터 출판계를 공멸로 이끌고 갈 만큼 심각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컴퓨터 출판 전문가들은 1년에 폐기·처분되는 컴퓨터 책이 약 1000만권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 공급과잉은 가격파괴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출판사의 채산성을 극도로 악화시켜 연쇄도산마저 우려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출판분야가 몇몇 분야에 편중돼, 출판의 생명과도 같은 다양성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윈도, 프로그램 언어, 인터넷, 그래픽 등의 분야에서도 초보자용 책은 하루에도 몇종씩 쏟아져 나오지만 중·고급자들이 볼만한 책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최근 국내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전자상거래 관련 책의 출판은 거의 없고 또 간혹 한두권씩 출판된다고 해도 외국책을 짜깁기한 것이 버젓이 서점에 진열되는 등 출판의 질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