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이후 해외진출 붐을 타고 세계 각국으로 동반진출했던 세트업체와 부품업체의 유대관계는 IMF이후 완전히 붕괴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97년 대우전자와 멕시코에 동반진출했던 코일부품업체 O사의 Y사장은 IMF이후 멕시코 현지공장의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내 세트업체에 대한 신뢰감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토로하고 있다.
IMF이전 국내 세트업체들은 글로벌 경영체제 구축을 위해 해외투자에 적극 나서면서 안정적으로 부품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부품업체와의 동반진출 전략을 구사했다. 부품업체들은 세트업체의 현지화 전략에 보조를 맞추고 원가절감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세트업체의 동반진출 전략에 적극 호응했다.
그 결과 세트업체와 부품업체들의 해외 동반진출은 한때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
다.
하지만 IMF사태 이후 상황은 180도로 달라졌다. IMF사태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현
지에서 부품을 구입하는 데 부담을 느낀 세트업체들이 당초 약속과는 달라졌다. 동반진출한 부품업체의 제품을 구매해주지 않으면서 세트업체를 믿고 해외에 진출했던 부품업체들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비록 상황이 달라져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벅차다고는 하지만 당초 약
속과는 달리 동반진출한 부품업체들의 어려움에 눈길 한번 주지 않던 국내 세트업체들의 행태를 보며 배신감마저 느꼈다』는 중소 부품업체 S사 J사장의 말은 당시 정황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최근 들어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국내 세트업체 및 부품업체들의 해외투자가 다시 늘어나고 있으나 불과 1∼2년 전만 해도 국내 부품업체들은 어렵게 마련한 해외 공장을 눈물을 머금고 매각하거나 투자를 줄이는 등 강도높은 자구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일례로 전자레인지용 고압트랜스 생산업체인 DPC(동양전원공업)는 IMF이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멕시코 현지공장의 토지와 건물, 기계 일부를 일본 업체에 매각하고 그 곳의 전자레인지용 고압트랜스 생산라인을 말레이시아 공장으로 이전해야만 했다.
97년 멕시코 현지공장을 설립했던 이 회사는 국내 세트업체들이 IMF이후 환율급등을 이유로 설비투자 계획을 잇달아 취소하는데다 멕시코 공장의 생산효율이 말레이시아 공장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600만달러에 현지법인을 매각, 생산라인을 말레이시아로 이전하고 멕시코에서 철수한 것이다.
또 규소강판 코어 생산업체인 한국코아 역시 IMF이후 회사 재무구조 개선 및 구조조정을 위해 멕시코 규소강판 코어 공장을 1000만달러에 일본 종합상사인 가와쇼사에 매각했다.
이밖에 크로바전자와 오성전자산업 등 세트업체와 함께 멕시코에 진출했던 트랜스포머 생산업체들도 IMF이후 국내 세트업체의 구매물량 감소로 인해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한편 IMF사태로 인해 해외에 동반진출했던 세트업체와 부품업체들의 기본적인 신뢰관계가 무너지면서 부품업체들의 해외진출 전략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근 경기가 회복되면서 해외투자를 재개하고 있는 부품업체들은 IMF이전과는 달리 세트업체와의 동반진출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독자생존 전략에 따라 해외투자 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집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품업체의 움직임은 해외 법인 및 공장의 현지화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IMF체제 이후 해외시장에서 국내 세트업체와의 공조체제가 붕괴되면서 중장기적으로 현지공장을 해외시장 공략을 위한 거점기지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현지화를 통한 독자생존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부품업체들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인쇄회로기판(PCB) 생산업체인 새한전자는 IMF로 인해 97년 가동에 들어간 멕시코 공장의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해외 세트업체에 대한 공급물량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는 등 현지화 전략을 통해 멕시코 현지법인을 정상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스피커 전문업체인 에스텍은 지난해말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말레이시아 공장의 현지화와 수출기지화를 위해 동남아에 진출한 소니와 켄우드 등 일본 음향기기 생산업체들을 주력 거래처로 확보, 내수시장과 국내 세트업체의 해외 현지법인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의 사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세트업체와 부품업체의 동반 해외진출은 우리나라의 경우 IMF란 특수상황을 겪으
면서 실패한 사업전략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구축돼 서로가 윈윈(win win)할 있는 세트업체와 부품업체의 동반진출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록 상황이 변하더라도 신뢰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단순히 말뿐인 세트업체의 지원약속이 아니라 부품업체의 해외법인에 대한 세트업체의 자본참여는 동반진출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경없는 경제전쟁시대의 개막으로 국내 부품업체들의 해외진출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하지만 해외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국내 부품업체들이 아픈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는 더이상 국내 세트업체에만 의존하는 사업전략을 구사해서는 결코 안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 IMF이후 지난 2년간의 고통스러웠던 시간은 국내 부품업체들에도 해외진출 전략을 마련하는 데 있어 과거의 구태의연한 사고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이룰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성욱기자 swkim@etnews.co.kr 최수봉 수석연구원 choisb@nuri.ket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