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와 문화, 엔터테인먼트를 담는 그릇인 미디어가 통합되고 있다. 종이(출판)·광학필름(사진 및 영화)·자기 테이프(비디오 및 음반)·지상파(방송)와 같은 아날로그 미디어의 고유영역이 해체되고 인터넷과 디지털을 중심으로 한 뉴미디어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미디어 비평가들은 이같은 형태의 뉴미디어를 제 3세대라고 부른다. 종이를 기반으로 한 인쇄 미디어가 1세대라면 라디오에서 시작해 TV·영화·자기 기록매체 등이 2세대에 해당한다. 3세대는 물론 인터넷과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다.
3세대 뉴미디어 시대에는 무엇보다도 기존의 올드 미디어가 디지털로 새롭게 태어난다. 서적을 비롯한 종이 미디어는 전자책(e-book)으로 바뀌고 영화·사진·음악은 MPEG이나 MP3 파일로 대치된다.
3세대 뉴미디어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컴퓨터나 통신 기술과 접목되는 것. 전통적인 음성전화 위주의 통신이 데이터 통신으로 중심축을 옮겨 디지털 미디어와의 만남을 통해 인터넷 콘텐츠로 대통합을 이루게 된다. 현재 시점에서 3세대 미디어의 특징을 가장 확연하게 보여주는 곳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다. 이곳에 들어가면 읽고 싶은 책은 전자책 형태로 다운받아 볼 수 있으며 듣고 싶은 가수의 노래는 MP3 파일로 들을 수 있다. 영화나 홈 비디오는 VOD(Video On Demand)로 감상할 수 있고 연속극이나 쇼프로 역시 아무 때나 시청할 수 있다. 물론 신문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텍스트 정보도 얻을 수 있다. 한마디로 기존 아날로그 미디어들의 개별적인 형태는 사라지고 인터넷 콘텐츠라는 큰 그릇안에 섞여 있는 모습을 접하게 된다.
최근에는 매스 미디어의 강자로서 반석같은 영역을 지켜온 방송이 통신과 결합됨으로써 3세대 미디어 시대의 개화를 예고하고 있다. 인터넷 방송·디지털 위성방송·웹TV·디지털 방송과 같은 이름으로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방송과 통신의 통합은 3세대 미디어의 핵심이며 총화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인터넷 방송을 포함한 웹캐스팅은 미디어가 인터넷 콘텐츠로 통합되는 3세대 미디어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 내고 있으며 향후 이 부문의 최강자 자리를 예약해 놓고 있다.
기존의 방송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신호를 보내면 시청자들은 일방적으로 보고 듣는 한 방향성 미디어라면 웹캐스팅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골라 시청하면서 관련 정보를 검색하거나 전자상거래 등을 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기존 방송은 VCR와 같이 뒤로 돌리거나 앞으로 되돌아가 보는 기능이 없지만 웹 캐스팅은 시간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사실 VOD나 MOD(Music On Demand) 역시 스트리밍·푸시·온디맨드 등 웹캐스팅의 범주에 속하는 기술을 기존의 미디어에 접목시킨 것이다. 이처럼 매력적인 장점을 갖고 있는 웹캐스팅은 앞으로 기존 방송을 위협할 뿐 아니라 미디어의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평가된다.
제3세대 미디어의 등장은 기존의 미디어 소비 구조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미디어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향하는 한 방향성의 소비구조에서 소비자가 미디어와 상호작용(인터액티브)을 할 수 있는 양방향의 구조로 바뀌게 된다. 예를 들면 디지털TV를 통해 경마 실황 중계를 보면서 경주마와 기수의 과거 기록을 검색해 볼 수 있으며 경기 결과에 대한 내기를 실시간으로 할 수 있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이 입고 있는 의상이 맘에 들면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고 그 자리에서 구매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제 3세대 미디어는 매스 미디어를 지향하는 기존의 미디어들과 달리 개인화된 마이크로미디어를 지향한다. 관객들이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보다가 중간 중간에 스토리 전개를 마음대로 바꾸어 가는 인터액티브 무비가 대표적인 예로서 제 3세대 미디어는 개별화된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의 『앞으로 매스 미디어는 사라지고 수천개의 마이크로미디어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진단은 제 3세대 뉴미디어 시대의 특성을 요약한 금과옥조로 통한다.
현재 컴퓨터와 유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제 3세대 미디어는 무선 인터넷의 모바일 환경과 만남으로써 또 한번 대변혁을 앞두고 있다. 통신 분야에서 유선전화 중심의 1세대 통신, 휴대폰의 2세대를 거쳐 IMT2000으로 대표되는 3세대 기술이 구체화되면서 미디어의 통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이동중인 모바일 단말기를 통해 2Mbps 이상의 엄청난 속도로 각종 동영상과 데이터·음성 등을 전송할 수 있는 IMT2000이 실현된다면 유무선 통신·디지털 미디어·모바일 컴퓨팅 기술 등이 결합됨으로써 현재로서는 상상도 못할 미디어의 대변혁이 일어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통합은 개별 미디어 산업의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전세계적인 미디어 시장을 좌지우지할 공룡 기업의 탄생을 재촉하고 있다. 올초 세계를 놀라게 한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은 서곡이며 전세계 곳곳에서 거대 미디어 그룹이 이합집산하고 있다. 이들 거대 미디어 그룹은 지역과 각 산업의 벽을 허물고 세계를 상대로 토털 미디어 사업을 전개하려는 전략을 가시화하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IT분야의 공룡기업들이 무선통신과 유선통신·인터넷 서비스사업 및 콘텐츠 사업까지 포함하는 토털 서비스를 전세계를 상대로 제공하는 초거대 미디어 그룹의 선두주자가 되기 위한 포석을 깔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미디어 그룹간의 통합이나 인수가 활발하지 않다. 일본의 소니와 같은 거대 미디어 그룹이 국내에는 없을 뿐 아니라 그나마 IMF를 맞으면서 재벌 그룹들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미디어 사업을 대폭 축소하거나 아예 퇴출시켰기 때문이다. 그만큼 국내 기업들은 통합 미디어 시대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반증도 된다.
다만 최근 들어 엔터테인먼트와 인터넷 분야의 벤처기업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e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벌이기 위해 컨소시엄을 결성하거나 공동으로 별도의 회사를 설립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8월 음악·영화·게임·애니메이션·캐릭터 업계의 대표 벤처기업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아이스크림(대표 이수만)이 대표적인 예다. SM엔터테인먼트(대표 이수만)·강제규필름(대표 강제규)·엔씨소프트(대표 김택진)·나이트스톰미디어(대표 최안희)·바른손(대표 임호석) 등이 자본금 10억원으로 설립한 이 회사는 통합 미디어 시대를 맞아 연예 엔터테인먼트·영화·게임·음악·애니메이션·캐릭터 등을 결합한 통합 미디어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8월초 창업 기념식장에서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사장은 『국외 유명 미디어그룹에 대응해 한국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종합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발돋움하는 것이 장기 비전이며 각 분야의 선두 업체들이 모인 만큼 각 업체의 강점을 살려 세계시장을 상대로 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과거 아날로그 미디어가 중심이 됐던 시기에 대기업들은 VCR나 오디오기기·PC와 같은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미디어 사업을 벌였던 것처럼 인터넷 뉴미디어 시대에도 대기업들은 정보통신 인프라나 IMT 서비스와 장비 사업에만 매달릴 뿐 콘텐츠 사업을 등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벤처기업들이 늦었지만 통합 미디어 시대를 대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