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수첩>영문 브랜드의 거품

얼마 전 취재차 들른 한 전기부품업체의 P사장은 회사명을 영문으로 바꾸고 싶다며 자문을 구해왔다.

P사장이 내민 몇 가지 후보안을 살펴보니 모두 기존 회사이미지와 아무 상관없는 이름뿐이어서 기자는 사명변경을 말려야 했다.

기자 만류에도 P사장은 자신도 오랫동안 애환을 같이한 이름을 버리고 싶겠느냐면서 털어놓은 사명변경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촌스러운 회사명을 영문으로 바꿔야 영업활동에 유리하기 때문에 사명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요즘 신문증권면을 자세히 보면 P 사장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생소한 이름의 회사들이 유난히도 많이 눈에 띈다. 주로 코스닥시장에 몰려 있는 낯선 이름들은 주로 ∼컴, ∼네트, ∼텍, ∼시스템 등을 돌림자로 달고 있다.

회사명만 봐서는 무슨 업종인지 도무지 알지 못할 영문회사명이 신문 증권면을 도배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벤처기업이야 예외라고 쳐도 경륜있는 굴뚝기업까지 너도나도 영어식으로 사명을 바꾸고 있다. 코스닥등록기업 중 이달 현재 회사명을 바꾼 업체수는 전체 511개 등록기업 중 70개사로 17%에 달하고 있다. 이중 63건이 한글식 회사명을 영어식표기로 「전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다보니 처음부터 영문표기로 회사명을 지은 업체들까지 합치면 코스닥등록기업 중 영문브랜드의 비중은 과반수를 훌쩍 넘고 있다.

∼산업, ∼공업, ∼정밀, ∼통신, ∼전자같은 회사간판을 내리고 이른바 첨단기업 이미지를 표방하기 위해 사명을 변경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코스닥시장의 거품이 빠지면서 회사명 교체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리기보다는 오히려 변경된 사명을 알리기 위한 비용 증가로 손해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국제화시대에 외국인들이 인지하기 쉬운 영문회사명으로 바꿔 브랜드가치를 높이려는 것은 탓할 일이 못된다.

그러나 수출비중이 높은 것도 아니고 IT관련업종도 아니면서 회사명만 바꾸려는 구태의연한 의식은 이제 바꿔야 한다. 오늘은 한글날이다. 영어식사명을 고집하기보다는 회사명을 순수한 우리말로 세련되게 짓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산업전자부·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