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27일 서울 광화문 정보통신부 13층 기자실. 상기된 표정의 석호익 전파방송국장이 집중적인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면서 8쪽의 발표문을 낭독했다.
『정보통신부는 오는 2000년 6월 사업자수 및 선정방식을 결정, 2000년 9월 주파수 공고 및 사업허가 신청접수, 같은해 12월 사업자 선정 및 주파수 할당이라는 IMT2000 추진일정을 확정했습니다. 또 오는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 기간중(5월말) 국내에서 상용서비스가 가능토록 할 계획입니다.』
98년부터 물밑에서만 거론되던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정책방안이 최초로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석 국장은 이어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업자수와 관련, 『외국의 예를 볼 때 3∼5개 사업자가 적정 수준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고 추후 공청회 등을 거쳐 여론수렴 작업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현정부 최대 이권사업으로 불리는 IMT2000사업의 윤곽은 확실히 잡혔고 드디어 「점령해야 할 고지」와 「작전루트」를 확보한 통신업체들의 사활을 건 대전투가 시작되게 됐다.
당시만 해도 IMT2000의 핵심은 사업권 티켓이 몇장인가에 모아져 있었다. 30대 재벌 모두가 약속이나 한듯 경쟁에 뛰어들었던 개인휴대통신(PCS)이나 무선호출, 무선데이터 등의 예를 볼 때 그보다 폭발력이 훨씬 큰 IMT2000사업권을 거머쥘 업체의 수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미 이동전화 등 통신서비스를 운용하고 있는 기간통신사업자만도 20개가 넘는 상황이었고 이들은 모두 IMT2000사업권 확보를 지상명제로 여겼다. 여기서 뒤처지면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사업권을 따낸 기업에 흡수합병되는 비운을 감수해야 한다는 전망 탓이다.
특히 사업자 선정정책이 발표되던 시점은 우리 경제가 IMF의 길고 어두운 터널을 막 벗어나던 때여서 통신사업자는 물론 여타 기업들까지 IMT2000사업권 잡기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다.
정부가 제시한 원칙, 예컨대 외국의 예, 중복 과잉투자 방지 등으로 미루어 많아야 4개 정도라고 예상한 통신사업자들은 당연히 목숨을 걸었다. 막강한 자본력과 지명도를 자랑하는 이동전화사업자만 5개이고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등 거대 기간통신사업자도 4개였던 판에 3∼4개 사업자에게만 IMT2000을 허가해 준다는 것은 곧 이를 통해 구조조정을 유도하겠다는 정부의 복안으로 받아들여졌고 통신업체들은 그만큼 다급해졌다.
그로부터 1년여 만인 지난 6월 28일. 전파국장에서 사업권 허가 주무국장인 지원국장으로 보직이 변경된 석 국장이 다시 한번 기자실을 찾았다. 그는 『7월 6일 국회 과기정통위원들과 정부 최종안에 대한 정책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하고 『이날 오후 공청회를 거쳐 10일께 단일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 단일안에는 사업자수·선정방법·기술표준이 포함된다』고 말했지만 그동안 정부와 업계가 심한 이견을 보였던 기술표준에 대해서는 『사업자 자율선택 방침이 대세라고 해도 그 경우에도 일부에서 분석하는 것과 같은 비동기 단일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혀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도대체 지난 1년여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슈가 사업자수에서 졸지에 기술표준으로 변했단 말인가. 간단하다. 정부의 정책의지와 사업자들의 이해가 정면으로 엇갈리고 여기에 사업권 경쟁률이 예상보다 하락할 것이라는 분석이 가세한 때문이다.
PCS사업자 선정때 불미스런 경험을 안고 있는 정부는 사업권의 과열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가급적 기존 통신사업자 중심의 정책을 폈다. IMT2000이 워낙 엄청난 자금과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거대 프로젝트라는 점을 강조, 서비스 경험이 있는 기존 사업자들의 각축장으로 「전장」의 범위를 좁혔다.
자연히 3∼4개 사업권을 3∼4개 사업자가 사이좋게 나눠먹는 구도로 바뀌었다. 사정이 이쯤 되자 사업권은 이미 따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여겼던 사업자들은 기왕이면 외자유치가 손쉽고 기업가치도 높이는 기술표준에 눈을 돌리게 됐다.
LG그룹을 필두로 SK·한국통신·하나로컨소시엄 등 예비주자들은 일제히 비동기 채택을 천명했다. 이는 정부의 판단과는 완전히 엇갈린 길이었다. 정부는 우리 기술로 세계 최초의 상용화에 성공하고 세계시장을 완전 장악하고 있는 동기식(CDMA기반)으로 갈 줄 알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판단을 통해 정부는 기술표준은 사업자 자율결정 원칙을 밝혔던 것인데 실제론 정부와 사업자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대립하는 형국이 돼버렸다.
기술표준 문제는 사업자 선정 마지막까지 정부는 물론 사업자 양측에 무거운 짐
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7월 14일 기간통신사업자 허가 심사기준 개선초안을 발표했다. 요지는 사업권을 희망하는 기업은 단독 신청이 아니라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부터 예비사업자들은 세력확장을 위해 우리편 끌어들이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보통신업체는 물론 일반 제조업체, 유통업체 등 무차별 영입경쟁에 돌입했다.
사업권 신청을 보름여 앞둔 지난 9월 14일 정부는 뜻밖의 발표를 했다. 사업권 허가신청일을 한달간 연기한다는 것이다. 이는 즉각 기술표준과 관련, 정부의 정책방향과는 달리 예비사업자 모두 비동기 주장을 굽히지 않자 정부가 이를 뒤집을 시간을 벌기 위해 일정을 연기한 것이라는 분석을 낳았다.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업자들의 비동기 기술표준 고수입장이 워낙 완강하자 정부는 마침내 10월 중순, 폭탄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안병엽 정통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갖고 『기술표준을 사업자 자율에 맡기겠다는 원칙을 철회한다』며 『반드시 동기식 사업자를 포함시키기 위해 주파수를 3등분, 동기식과 비동식, 임의대역으로 나누어 할당하겠다』고 말했다.
사업자들은 발칵 뒤집혔고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에게 약속한 정책을 뚜렷한 해명없이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 백지화, 엄청난 질타를 감수해야 했다. 정부로서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국익(물론 사업자들은 비동기가 국익이라고 주장)」을 위해 정책을 변경해야 할만큼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다는 것이 배경이다.
지난달 30일과 31일 마침내 사업권 신청서가 접수됐다. 여기서도 또한번 격랑이 일었다. 최대 2장이 배정된 비동기 사업권에 빅3인 LG·한통·SK가 신청, 한곳은 타락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최대 이변은 하나로통신의 등장. 하나로는 사업권을 포기하는 듯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동기 신청자가 없자 무혈입성을 노리고 유일한 신청자가 됐다. 사업자 최종 선정은 12월 26일께로 예정돼 있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