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벤처, 새 틀을 짜자>(2)벤처정신을 되살리자

2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대기업의 샐러리맨이었던 A씨는 요즘 수 백억원대의 자금을 운용하는 벤처투자가로 변신했다. A씨가 이처럼 단기간에 인생이 바뀐 것은 지난 98∼99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투자한 벤처기업 주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급등하면서 엄청난 투자수익을 올린 때문이다.

벤처붐 조성 이후 벤처기업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이처럼 단기간에 거금을 손에 쥔 「벼락부자」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은 사회 전반의 「대박 지상주의」와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 현상을 만들어냈다.

정현준 사건을 다시 들먹이지 않더라도 최근 국내 벤처기업은 물론 관련기관이나 업계에 종사하는 벤처인들의 도덕적해이 현상은 심각한 지경이다. 물론 아직도 「벤처스타」의 꿈을 간직한 채 묵묵히 기술개발에 몰두하는 건전한 벤처인들과 이들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의식있는 사람들도 결코 적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일부 사이비벤처인들은 갖은 수단과 방법, 지위 등을 동원해 일확천금만을 노리고 있다. 이들 중에는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벤처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데 혈안이 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현행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 법에는 전혀 저촉되지 않으면서 당당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사리사욕에 젖어 온갖 불법과 편법으로 부를 확보하고 벤처에 대한 인식과 신뢰에 먹칠을 하는 일부 사이비벤처인들 말고도 적지않은 벤처기업인이나 벤처캐피털, 벤처지원업체, 관계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 도덕적해이 현상이 만연돼 있다는 사실. 이는 이번 정현준 사건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연루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

이같은 현상은 벤처문화에 대한 왜곡에서부터 출발한다. 우선 할증 유상증자가 일반화되면서 벤처기업들이 펀딩자금을 경쟁력 있는 기술이나 비즈니스모델을 개발하고 이익을 창출하는 데 사용하기보다는 타법인에 출자해 손쉽게 돈을 버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다. 벤처캐피털이나 기관투자가들 역시 「기업공개(IPO) 지상주의」에 젖어 투자기업을 조기에 코스닥에 등록시켜 단기에 고수익을 창출하는 데 몰두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벤처발굴보다는 기성벤처에 대한 투자와 공모가 부풀리기 현상이 일반화됐다. 또 등록 후에는 조기에 주식을 팔아치움으로써 일반투자가들만 손해를 보고 결국에는 코스닥과 벤처의 신뢰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벤처위기론이 극에 달하고 자금경색으로 요즘에는 다소 주춤해지고는 있지만 예전의 「헝그리 정신」은 온데간데 없다.

펀딩하자마자 사무실을 옮기고 사치스런 인테리어부터 시작하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불황이 반년을 넘었지만 테헤란로의 임대료는 떨어질 줄 모른다. 자금사정이 좋은 기업은 재벌을 답습하고 있다. 지주회사(홀딩컴퍼니)를 표방하며 계열사를 무차별로 늘리고 계열사간 지급보증, 내부자거래 등의 폐해가 암암리에 재현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벤처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급한 것은 도덕적 재무장이다. 「나만 돈 벌면 그만」이라는 자세로는 휘청거리는 벤처를 다시 세울 수가 없다. 열악한 컨테이너에서 벤처의 꿈을 키우는 실리콘밸리의 벤처정신으로 재무장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