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디지털 러시

박재성jspark@etnews.co.kr

세계 골프역사에서 가장 대비가 되는 골퍼를 꼽으라면 아마 닉 팔도와 타이거 우즈일 것이다. 닉 팔도는 20세가 다 돼서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해 40세에야 꽃을 피웠다. 반면 타이거 우즈는 서너 살이 되면서부터 골프채를 잡아 채 20세가 되기전에 미국 메이저 골프대회의 꽃인 마스터스를 제패한 이후로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늦깎이 골퍼인 닉 팔도는 자신의 화려한 골프생활을 뒤로 접고서 걸음마를 하면서부터 골프채를 잡은 신동 타이거 우즈가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데 갈채를 보낼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됐다. 패기와 힘, 정교한 기술까지 갖춘 신예 앞에서 노장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것이 스포츠였으니까 젊은 세대가 유리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겠지만 시작한 시기가 달랐을 뿐 대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큰 차이가 없다.

이같은 사건도 90년대 후반에 일어났지만 묘하게도 90년대는 신진세력인 20∼30대가 사회 각 부문에서 유난히 두각을 드러냈다. 특히 젊은 산업인 정보기술(IT)분야에서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이들은 기성세대를 제치기에 충분한 듯이 보였다. 결정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전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에는 「디지털 러시」에 대한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그맘 때쯤 벤처기업 1세대들이 탄생했다. 메디슨을 비롯한 한글과컴퓨터 등이 그들이다. 또 이름은 그리 알려지지 않은 숱하게 많은 중소 규모 소프트웨어업체들이 그 당시에 싹을 틔웠다. 그들은 비교적 착실한 경영으로 외환위기(IMF체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큰 흔들림 없이 살아남았다.

그렇지만 1세대 이후에 IMF를 지나 벤처붐이 일면서 탄생한 많은 벤처기업들은 오늘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불법대출 사건이나 주가조작 사건 등에 연루된 기업가들은 벤처 1세대와는 거리가 있다. 그들은 엄밀히 보면 벤처도 아니려니와 IMF 이후에 비롯된 한건주의에 젖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벌그룹의 몰락과 더불어 그들은 한국경제를 끊임없이 추락의 길을 걷게 하고 있다는 지탄까지 받고 있다. 제2, 제3의 사건이 터질까 봐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데도 그들의 탓이 크다.

그런데 그들의 공통된 점은 대부분 30대 초반의 비교적 어린 나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외국 유학에서 습득한 기업인수 및 합병(M&A) 지식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일확천금을 노린 얼치기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들의 한건주의에서는 미국 개척시대에 대서양을 건너고 동부에서 사지를 넘어 서부로 향하던 골드러시의 개척자 정신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의 끊임없는 나락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혼돈돼 왔던 깨끗함과 더러움, 능력과 무능력을 가릴 수 있는 눈을 다시 한번 뜨게 해주고 있다. 또 한편으론 우리 사회가 일시적으로는 허술하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정도를 걷지 않을 때는 항상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지난 몇년간 벤처붐이 일면서 우리 사회에는 달려가도 뒤처지는 듯한 조바심이 만연했다. 그 과정에서 차근차근하고 성실하게 삶을 살아왔던 40대 이후 세대의 설 자리는 거의 없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제 벤처붐은 거의 지나갔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젊기만 한 경영자들은 시련기에 접어들었다. 이 사회는 그들에게 영원할 것 같은 기회를 오래 주는데 벌써 지친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킨 일부 30대 경영자들 뒤에 정도를 걸을 수 있는 기성세대가 없었다는 것도 우리의 불행이다. 그렇게 된데에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 줄 만한 자격있는 기성세대가 꼭 없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할 때다.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된 젊은 세대와 경륜을 지니고 있는 기성세대가 하모니를 이룰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한 사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