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Home]사이버 레저-영화·공연 감상에서 서점순례까지…

 지난해 극장가를 휩쓸었던 ‘공동경비구역 JSA’의 열풍에 이어 올해 들어 ‘친구’가 전국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

 부산을 배경으로 네 명의 절친한 친구들이 서로 다른 운명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이 영화는 걸죽한 부산 사투리를 유행시키며 얼마 전 전국 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4000만 명 정도라고 볼 때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어린아이나 환자, 노인 등을 빼고 나면 네, 다섯 명 중 한 명 꼴로 이 영화를 본 셈이다.

 그러나 가정이 디지털화되고 사회의 문화 인프라까지 완벽하게 디지털화된다면 더 이상 ‘몇 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라는 기록은 의미가 없게 될지도 모른다.

 가정에서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디지털 영화관이 만들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 디지털화의 최 일선에 설 선봉장이 디지털 TV가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디지털 TV란 쉽게 말해 디지털 신호로 처리된 방송을 송수신할 수 있는 TV다.

 디지털 TV는 우선 선명한 화질이 특징으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아날로그 TV보다 5배나 생생한 화면을 전달, 피부의 땀구멍까지 보일 정도다. 화면의 가로·세로 비도 아날로그가 4대3인 반면, 디지털TV는 극장 화면 같은 16대9라서 TV로 영화를 볼 때도 화면이 잘리지 않고 음질 역시 극장에서나 접할 수 있는 돌비사운드 입체 음향이다.

 디지털TV의 또다른 특징은 데이터 방송이다. 한마디로 ‘바보상자’가 똑똑한 ‘정보단말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 전송에 대한 기술표준이 확정되지 않았고, 다양한 콘텐츠 등 부가서비스 개발도 걸음마 단계로 무엇보다도 TV 가격이 아직은 비싼 편이다.

 프로그램 제작비용도 만만치 않다. 국내의 경우 작년 9월부터 시험방송을 하고 있지만, 드라마의 경우 소품과 세트를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제작비가 아날로그 방식의 3∼4배에 달한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는 디지털TV를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나마 DVD의 등장으로 인해 가정에서 홈 시어터를 구축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고 있는 정도다. 이러한 DVD로 이뤄지는 홈 시어터는 오프라인적인 성격이 강하다. 앞으로는 DVD보다는 VOD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보는 사람이 더 늘어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VOD는 인터넷이나 위성을 통해 가정으로 디지털 영화나 드라마 쇼, 공연 등을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그러나 VOD서비스가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디지털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각 가정에 디지털TV를 볼 수 있는 수상기가 보급돼야 하고 지상파와 위성방송, 케이블 방송 등도 디지털화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이나 방송국 모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간이 문제일 뿐 가정의 디지털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다.

 디지털TV가 극장과 공연장으로 몰려다니던 사람들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면 인터넷을 통한 각종 오락서비스는 게임장과 놀이공원 등에 몰리던 청소년과 청장년들을 다시 한번 집 안으로 유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터넷정보센터가 최근 조사한 결과는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인구는 2000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별 PC보급률은 72.1%에 달했으며 인터넷 이용이 가능한 가구는 52.3%로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더욱이 흥미를 끄는 대목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장소로 ‘가정’이 무려 65.9%를 차지해 회사(17.4%), PC방(11.4%), 학교(3.3%) 등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이버 활동의 중심공간이 점차 안방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 네티즌들의 인터넷 사용 목적도 ‘정보검색’에 이어 ‘게임·오락·스포츠’ 등 여가 관련 사이트의 접속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여가’에 대한 네트즌들의 욕구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멀티미디어 문화가 상당히 보급된 오늘날에도 손에서 책을 떼지 않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 취미를 물어 볼 때 ‘독서’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직접 읽는 것 말고도 다른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수없이 많은 책이 들어선 서점을 기웃거리며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는 재미일 것이다.

 책을 고르는 것도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큰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일주일에 한두 번 또는 한 달에 한두 번 서점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정의 디지털화가 완벽하게 이뤄지면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를 필요도 없게 된다.

 또 서너 시간씩 다리 아프게 이 책방, 저 책방을 전전할 필요도 없다. 집 안에서 컴퓨터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인터넷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자기가 가장 읽고 싶은 책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의 디지털화는 레저생활의 패턴까지도 바꿔 놓을 것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경마장을 찾아 나섰던 사람들도 디지털TV를 통해 중계되는 TV화면을 보면서 손에 땀을 쥐게 될 것이다.

 또 연극이나 음악공연장을 즐겨 찾던 사람들도 마치 코앞에서 지켜보듯 눈동자의 움직임과 거친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적나라하게 보고 들을 수 있는 TV를 통해 감동에 몸을 떨게 된다.

 이 정도가 되면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고도 영화, 오락, 독서, 레저 등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

 봉건주의 시대만 해도 가정은 생산과 소비, 그리고 문화의 창조와 유통을 모두 담당하는 집합체였다. 산업사회 이후 가정의 모든 기능이 분산되면서 생산은 공장과 회사로, 소비는 시장과 상점으로 문화는 작가와 음악가 등 전문집단으로 넘어가 버렸다.

 미래 학자들은 디지털 시대에는 가정이 빼앗겼던 이 모든 것들을 다시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가정이 문화의 창조와 유통, 그리고 재창조의 가장 핵심적인 기반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이는 일방적이었던 아날로그 시대를 벗어나 양방향적이고 개인적이며 창조적인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게 됨으로써 가능해 진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의 디지털화, 사이버화는 자칫 개개인을 고립시키고 파편화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인간이 갖고 있는 사회적 본능이 마비됨으로써 병적인 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친구, 동료들 서로를 배려하고 인정하는 가족적인 분위기가 무엇보다 선행돼야 할 것이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