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최고경영자’
남성 중심의 문화가 정치·경제·사회 등 전반을 지배하는 우리 나라에서 이런 등식은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생소한 개념에 불과했다.
여성이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상상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등식은 2001년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결코 낯선 개념이 아니다. 이는 공식적인 조사 결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이 최고경영자인 업체가 100만개를 넘었다고 한다.
이런 급격한 변화를 초래한 원인은 단연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IT의 급속한 발전과 확산이다. 다른 어떤 산업 영역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창조력을 발휘하기 좋은 분야가 IT 영역이었던 것이다. 이에따라 많은 여성들이 창업 전선 전면에 등장했다.
여성들은 지난 2∼3년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IT 전 분야에서 요란하지는 않지만 당당하게 내실있는 기업을 일궈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이들이 거둬들인 결실의 이면에는 남성에 비해 2배 혹은 그 이상의 눈물과 땀이 바탕이 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과감하게 헤치고 나가 성공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도전정신은 축하의 박수를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뿐만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이겨낸 강인함과 미래에 대한 비전 또한 찬사의 대상 가운데 하나다.
여성CEO들은 IT 각 분야에 걸쳐 맹활약을 펼쳐 분야별 대표 기업으로 떠오를 정도로 각광받고 있다.
이는 인터넷 분야만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영상회의 솔루션 분야의 송혜자 사장(우암닷컴), 보안업계의 강형자 사장(인터넷시큐리티), 인터넷 지불결제 분야 박소영 사장(페이게이트), 인터넷 시장조사 분야 이상경 사장(인터넷메트릭스), 토털 e비즈니스 컨설팅 분야 김이숙 사장(이코퍼레이션) 등은 모두 각 분야 선두업체를 이끌고 있는 여성 CEO다.
이들은 모두 인터넷 산업이 채 막을 올리기도 전에 남들보다 한 발 먼저 무한경쟁 속으로 뛰어들어 각 분야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알찬 기업을 이끌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했던 이들의 행보는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여성 창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만만치 않았다. 격려의 박수보다 걱정과 비아냥이 앞섰다.
하지만 이들은 성공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정진했을 뿐 어떤 난관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결국 성공한 여성 최고경영자로 평가받게 됐다.
이들뿐만이 아니라 전국 28개 대학 정보통신 창업지원센터에 입주한 20여명 여성CEO들도 또 다른 성공신화를 꿈꾸고 있다.
창업지원센터에 입주한 신생 벤처기업의 여성CEO들 또한 이미 알려진 여성 CEO들만큼이나 탄탄한 실력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상태다.
이는 여성CEO의 기반 확대를 위해 바람직한 현상일뿐만 아니라 성공한 여성CEO의 끊임없는 배출을 기대하게끔 하는 것이다. 아이디어와 기술력 기반이라는 인터넷 업종의 특성을 고려할 때 기존의 조직문화에 얽매이지 않고 여성만이 지닌 참신한 아이디어와 감각을 기반으로 급격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여성CEO들의 성공 예감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활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제 2, 제 3의 여성CEO를 꿈꾸는 새로운 세대에게 기존 여성CEO들이 기술력과 아이디어만이 성공신화의 지름길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 비로소 인터넷 업계에 새로운 여성CEO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원만한 인간관계와 이를 바탕으로 한 폭넓은 네트워크 구축, 탄탄한 실력과 과감한 결단력, 추진력 등 여성 CEO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수히 많다.
특히 남성에 비해 여성CEO들이 겪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네트워크 구축이다.
이상경 인터넷메트릭스 사장은 “여성은 군대를 다녀온 것도 아니고 동창회에 참석해도 전업주부가 대부분을 차지해 사업에 필요한 인맥 쌓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여성CEO들은 이런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각오로 이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고 있다. 그동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인맥관리에도 관심을 갖고 여성 관련 각종 단체나 모임을 만들어 내고 서로 도와주며 하나된 그들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임은 결국 활발한 교류를 통한 휴먼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한다. 또한 사회 전반의 디지털화와 맞물려 섬세함과 감수성, 아이디어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여성 CEO들의 맹활약을 북돋는 촉매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여성 CEO는 숨가쁘다.
이들은 지식정보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한편 큰 물줄기를 장악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뛰고 있다. 지난 수백년간 학연·지연·혈연으로 똘똘 뭉친 남성들에 비하면 이들은 기업을 경영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다.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 여성CEO들도 점점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도 만들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극복해야 어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여성CEO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당당하게 실력으로 이겨보겠다는 여성CEO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이제 여성CEO들은 IT 산업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새로운 시대의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으로 부상했다.
이들이 경쟁력을 마음껏 발휘할 때 우리 사회는 또 다른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샘물을 하나 더 갖게 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때가 왔다.
산업현장에 여성CEO들의 진출이 잇따르는 것만으로 화제가 되던 시대는 갔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경영으로 건실한 기업을 이끄는 여성CEO들도 부지기수로 늘고 있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성공사례로 오래도록 기억되는 CEO가 등장할 때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 업계에서 여성CEO 돌풍은 지금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
◆누가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 했나…
정보기술(IT)업계 여성 최고경영자(CEO)의 교류를 통한 인적 네트워크 구축과 후배들의 IT분야 진출을 돕기 위한 각종 단체나 모임 결성이 활발하다.
여성과 CEO라는 공통분모로 모인 이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이런 움직임은 여성CEO의 급격한 증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이들이 서로 도와주며 그들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여성CEO들의 대표적인 모임은 ‘이화IT’와 ‘크리스털 모임’이다.
‘이화IT’는 IT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이화여대 출신들의 모임이다.
이대 출신 IT분야 경영자들의 네트워크 구축과 비즈니스 협력을 꾀하고 후배들의 IT업계 진출을 돕기 위해 발족한 이화IT는 70년대 학번부터 신세대 90년대 학번까지 이화인들을 아우르고 있다. 현재 300여명의 정회원 가운데 CEO로 활약하는 회원만도 30여명에 달한다.
정혜숙 링크인터내셔널 사장을 비롯해 고준영 우노커뮤니케이션즈 사장, 이영아 컨텐츠코리아 사장, 김세은 웹포러스 사장 등이 핵심 멤버다.
이화IT는 월 1회 오프라인 정기모임을 마련해 각계 전문가들을 초청, 시장 동향과 기술 흐름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이화IT가 학연 기반의 네트워크라면 ‘크리스털 모임’은 ‘여성·20대·CEO’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젊은 여성CEO 모임이다. 권은정 월드포스팅 사장, 김세은 웹포러스 사장, 박지영 컴투스 사장을 비롯, 막내격인 김경진 인터카드넷 사장 등이 창립 멤버다.
크리스털 모임은 오프라인을 통해 자유토론을 벌이거나 선배 CEO들을 직접 찾아가 경영이나 조직관리 등 기업 운영에 필요한 지식과 노하우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이화IT와 크리스털 모임을 시작으로 앞으로 여성CEO 모임이 얼마나 새로 탄생할지 궁금해진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