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년간 우리경제는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외환위기로 IMF사태를 겪었다. 이후 미래성장의 엔진으로 불리는 IT붐으로 전국이 들썩거렸다. 채 1년도 안돼 다시 IT거품론이 대두되면서 급격한 시장침체기를 겪고 있다. 주식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최근 미국 테러사건으로 국내 주가는 끝간데를 모르고 추락했다. 주식시장이 좋으면 별탈이 없겠지만 침체장속에서 투자자들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이러한 IT급변기의 한가운데 선 인물은 누가 뭐래도 코스닥증권시장의 최고책임자인 강정호 사장이다. 코스닥 붐으로 한때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요즘은 누구보다도 곤혹스런 사람이다. 그래도 그의 주장은 한결같다. 시장자율 원리다. 인위적인 개입은 결코 침체장을 살리거나 반등시킬 장기적 모멘텀이 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우리의 산업구조상 주식시장의 외풍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미국 테러사건 이후 전세계 증시중에서 가장 낙폭이 컸던 시장이 바로 코스닥증권시장입니다. 외풍을 고스란히 떠안은 셈이죠. 그렇다고 인위적인 개입은 시장질서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시장체질을 강화시키지 못합니다.”
미국 테러사태 이후 일주일만에 개장한 뉴욕증시의 ‘애국심 주가’가 오래가지 못했듯이 ‘시장이 원하지 않으면 통용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특히 IT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인 코스닥시장은 더욱 철저한 자율에 맡겨져야 제구실을 할 수 있다고 그는 강력하게 믿고 있다.
‘자율’이라는 잣대를 지키기 위해 그는 주위에서 본의 아닌 질타를 들어야 할 때도 많다고 설명했다. 지나치게 늘어난 등록기업의 수 때문이다. 거래소에 버금가는 등록기업 수에 대해 그는 “일부에서는 너무 많은 기업들이 코스닥시장에 들어오고 있어 수급불균형을 초래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시장에는 매력적인 상품(우수기업)들이 많아야 투자자들도 몰려들고 시장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 일축한다. 좌판은 벌려놨으니 손님이 맘에 드는 상품을 골라야 한다는 논리다. 제대로된 상품을 차리는 것은 장사꾼의 책임이지만 상품을 고르는 것은 손님의 책임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장사꾼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그는 좋은 상품을 진열하는데 운영의 제1목표를 두고 있다. 좋은 상품이 많아야 손님이 모이듯 좋은 등록기업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잊지 않는다.
그는 앞으로도 확대지향적인 시장운영 계획에 변함이 없다. 저금리 기조 아래에서 코스닥시장내 우량기업들이 많아지고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코스닥시장이 다시 IT·벤처 중심의 증권시장으로 부각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만은 아니다. 우량기업을 선별하고 시기적절하게 거래 부적정기업을 솎아내는 작업도 병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장 퇴출제도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코스닥시장 퇴출은 ‘썩은 사과론’. 강 사장은 “썩은 사과 하나가 한 상자의 사과를 불량품으로 만들 듯이 코스닥시장 전체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업체는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한다.
무엇보다 벤처기업은 성장성에 중심을 둬야 하며 코스닥증권시장은 이런 벤처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절만을 할 뿐이라는 그는 “기업들이 모두 공생하기보다는 퇴출이나 인수합병(M&A) 같은 구조조정이 보다 많이 이루어져 우수 기업들이 시장에 많이 들어오고 질이 낮은 기업들은 상시 퇴출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여러 문제가 많다는 주위의 여론도 많지만 그는 코스닥시장의 거래량이 5배 규모(시가총액 기준)에 달하는 거래소시장과 맞먹는 것은 여전히 벤처기업과 IT, 코스닥시장에 대해 관심이 높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여전히 IT의 미래가 밝음을 뜻하고 코스닥시장의 미래 또한 열려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래 산업은 IT가 주도하며 IT군(群)의 핵심은 코스닥시장이라는 주장이다.
강 사장은 기술주의 대표 시장격인 나스닥시장에서 올해만 200개가 넘는 기업이 퇴출되고 기업공개(IPO)가 거의 없는 것을 감안할 때 코스닥시장에서 상반기에만 97개 기업이 새 식구로 들어오고 하반기에도 많은 기업들이 시장 등록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되새겨볼 만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IT주식시장에 거는 기대가 미국의 IT기업들이나 투자자들보다 한국의 IT기업과 투자자들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은 등록기업과 투자자보호를 위한 자율원칙에 준한다. 또 기업 내실과는 무관한 부하뇌동식 주가하락도 막는다는 취지가 포함돼 있다. 등록기업들의 주가하락은 미국 IT경기 침체가 주요 원인이지만 이것 역시 냉정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며 개별 기업들마다 자사의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 코스닥 등록기업들은 공개기업으로서 보다 투명한 경영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하는 강 사장은 “코스닥시장에 등록된 기업이라는 의미는 이미 대주주나 오너의 기업이 아니며 시장과 투자자들의 기업이라는 것을 뜻한다”며 “공모나 증자 등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들인 만큼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하며 주주들에게 이익을 분배하려는 노력, 즉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기업이 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공시를 통해 기업자료를 시장에 공개하는 것은 투자자에 대한 의무라는 것이다. 또 최근 늘어나고 있는 기업설명회(IR)는 주주들을 위한 매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기업활동 중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코스닥증권시장은 이달부터 대대적인 CI(corporate identity)개선 작업을 통해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일단은 코스닥시장에 대한 홍보가 주목적이지만 시장에 대한 대외 인지도를 높이고 이미지 제고를 통해 코스닥등록 기업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강 사장은 시장에 참가하는 투자자들의 기본적인 소양에 대해서도 “시장의 원리나 기본적 제도도 모른 채 ‘매매거래’에 참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에 대한 교육에도 코스닥시장이 적극 나설 방침”이라고 언급했다. 등록기업들에 대해서도 보다 정확하고 적절한 정보가 투자자들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계도와 질책을 병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매매거래에 따른 시세차익보다 시중금리를 웃도는 배당 위주의 시장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며 “시장 건전성 확보를 위해 등록기업, 투자자 모두 코스닥시장을 미래 IT산업에 대한 투자의 장으로 인식해 주었으면 한다”고 촉구했다.
IMF대리대사를 지낸 경력만큼 돈의 흐름에 민감한 그는 ’캉드쉬총재의 웃음’, ‘코스닥의 성공기업 20가지 이야기’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지난 8월에는 IMF와 관련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따기도 했다. 슬하에 법학과 의학을 전공하는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
강정호 사장 약력
△48년 경남 진양 출생 △71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71년 10회 행정고시 합격 △76∼84년 재무부(국고, 국제금융, 증권과) 근무 △80년 University of New England (Financial Mgt 학위 ) △84∼87년 주벨기에 대사관 재무관 겸 CCC(국제관세협력이사회) 상주대표 △87년 보스턴대 (MSBA) △87∼94년 재무부(법무관, 재정융자, 생명보험, 관세정책 과장) △94년∼97년 IMF 대리이사 겸 상주대표 △97년 재정경제부 국세심판관 △99년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스피치토론과정 △99년 코스닥증권시장 사장 취임 △2000년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2001년 한국정보통신대학원(ICU) 국제경영연구원 IT&IT 과정 △단국대 경제학박사 학위취득 △현재 (주)코스닥증권시장 사장
저서: 관세정책과제의 이해(94), 캉드쉬총재의 웃음(98), 코스닥의 성공기업 20가지 이야기(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