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에 도전한다>(11)초고속인터넷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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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옛날, 이스라엘 민족과 블레셋 민족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당시 블레셋 사람 중에는 골리앗으로 불리는 거인이 있었는데 골리앗의 거대한 힘 앞에 수많은 이스라엘 병사들이 쓰러져갔다. 하지만 다윗이라는 이스라엘 소년이 돌팔매를 던져 골리앗을 쓰러뜨리자 블레셋 사람들은 혼비백산해 도망가고 이스라엘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소년 다윗과 거인 골리앗의 싸움은 예상외로 다윗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이는 성경에서나 있음직한 얘기일 뿐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21세기 IT시장에서도 이러한 극적인 승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천문학적인 R&D 투자가 요구되는 통신시장에서는 기업 규모가 곧 경쟁력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더더욱 다윗의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21세기 통신시장의 한복판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재현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지난 90년대 후반 인터넷 인구의 급속한 확산에 힘입어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초고속인터넷 장비 시장이 바로 그 곳.

 프랑스의 알카텔, 미국 루슨트테크놀로지스, 독일의 지멘스, 일본의 NEC 등으로 요약되는 ‘골리앗’ 통신장비 업체에 맞선 국내 업체들의 반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외형상으로 보면 이들 업체간 대결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 현재 초고속인터넷장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ADSL 장비 시장에서 1위를 지키고 있는 알카텔에 비하면 국내 업체들은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매출 규모나 종업원 수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불리한 상황속에서도 세계 최고의 초고속인터넷 국가인 ‘한국’을 등에 업고 점차 그 영향력을 넓혀나가고 있다. 초고속인터넷 기술의 시연장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최신 기술이 빠르게 도입되는 한국의 통신환경을 발판으로 세계시장 석권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코어세스가 지난해말 일본에 3억달러 규모의 ADSL장비를 공급키로 한 것을 비롯해 삼성전자가 올초 대만에서 알카텔, 루슨트 등을 제치고 116만회선 규모의 장비를 수주했다. 이밖에 포스트 ADSL 시대를 주도할 것으로 주목받고 있는 VDSL장비 분야에서도 기가링크, 다산네트웍스, 기산텔레콤 등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어 초고속인터넷장비 시장에서 ‘코리아 열풍’에 대한 기대를 높여주고 있다.

 

 ◆기가링크

 ‘기업 규모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기술력이다.’

 지난 99년 7월 설립된 초고속인터넷 장비업체 기가링크(대표 김철환 http://www.gigalink.co.kr)는 50여명의 종업원, 300억원대의 연매출 등을 고려할 때 전세계 통신장비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다국적 장비업체의 비교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기가링크는 지난해부터 새로운 비약을 꿈꾸고 있다. 그동안 ADSL장비 사업을 전개하면서 핵심 부품을 수입에 의존하다보니 매출은 높았지만 수익성이 나빠 고전했던 경험에 비추어 차세대 초고속인터넷장비로 불리는 VDSL 시장 공략을 위해 자쳇 칩세트 개발에 나선 것이다.

 기가링크는 지난해 4월 김철환 사장이 별도로 설립한 한기아와 컨소시엄을 구성, 정보통신부의 선도기술기반과제 사업권을 따냈다.

 총 80억원의 개발비가 투입될 이번 사업은 한기아가 VDSL 칩세트를 개발하고 기가링크가 이에 기반을 둔 VDSL장비 개발을 맡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김철환 사장은 “ADSL시장에서는 모든 핵심 부품을 수입하다보니 수익성이 좋지 않아 대부분의 국산 장비업체가 어려움을 겪었다”며 “ADSL장비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자마자 수많은 국내업체가 사업을 접은 것을 보더라도 칩세트 수입으로 인한 업체들의 부담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ADSL장비 시장에서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알카텔의 경우도 자체 칩세트를 보유하고 있듯 핵심기술 개발의 중요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김 사장은 덧붙였다.

 내년 중반께 독자 개발한 칩세트를 장착한 VDSL장비의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기가링크와 한기아는 현재 전체 개발 과정의 70% 정도를 수행한 것으로 내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내년초에는 샘플 제품을 개발하고 상반기 동안 검증 단계를 거쳐 늦어도 6월께는 상용제품 개발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기가링크는 현재 시중에 공급되고 있는 VDSL장비의 주류를 이루는 QAM(Quadrature Amplitude Modulation) 방식이 아닌 DMT(Discremete MultiTone) 방식의 장비 개발을 추진하고 있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 사장은 “기술적으로 QAM 방식의 제품 개발이 더 용이해 상용제품은 먼저 나왔지만 ADSL 분야에서 DMT 방식이 대세를 이룬것처럼 결국은 DMT 방식이 표준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확신했다.

 따라서 VDSL 표준화 작업이 완료될 것으로 보이는 내년 중반까지 제품 개발을 완료해 시장 공략에 나선다면 국내 시장은 물론 전세계 VDSL장비 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다는 게 김 사장의 설명이다.

 물론 어려움이 없지는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연구개발 비용. 비록 정통부로부터 일부 자금을 지원받고 있지만 수백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외국의 대형 업체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따라서 기가링크는 국내는 물론 외국계 투자회사를 통해서도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사보다 한발 빠른 제품 출시다. 김 사장은 “과거 ADSL시장에서도 국내 대기업이 자체 칩세트 상용화를 통한 시장 확대를 추진했지만 제품 출시가 늦어 수포로 돌아갔다”며 “적시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사장도 인정하는 것처럼 기가링크의 이번 사업은 ‘모 아니면 도’다. DMT 방식의 VDSL장비를 경쟁업체에 앞서 출시한다면 VDSL 시장은 ‘메이드인코리아’가 장악할 수 있다. 반면 제품 상용화가 지연된다면 세계 최강의 꿈은 한낱 백일몽으로 끝날 수도 있다.

 기가링크가 던진 승부수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업체들이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고전했던 것을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국내 통신사업자들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만큼 상용화 작업이 완료되면 VDSL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김 사장의 확신대로 기가링크가 차세대 초고속인터넷장비 시장의 세계 최강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1년여의 시간이 흐르면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1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기가링크가 세계 최강의 자리를 굳힐 수 있을지, 아니면 또다른 국내 업체가 세계 최강에 등극할지, 이도 아니면 기존 외국 장비업체들이 우위를 이어나갈지는 어느 업체가 더 많은 역량을 효과적으로 집중시키는가에 달렸다.

 

 ◆알카텔

 ‘한발 빠른 투자로 시장을 선점한다.’

 전세계 초고속인터넷장비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알카텔(http://www.alcatel.com)의 성공은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과감한 투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알카텔은 지난 90년대초 인터넷의 확산과 더불어 대용량 데이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대한 준비에 착수했다. 단순한 텍스트 형태의 데이터뿐 아니라 각종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즐기려는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음성과 데이터를 동시에 전송할 수 있는 초고속인터넷 기술인 xDSL에 대한 투자를 강화했다.

 과감한 투자에 힘입어 알카텔은 90년대 중반 ADSL 장비를 세계 최초로 개발, 상용화했으며 지속적인 품질향상 노력을 통해 ADSL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90년대 후반에는 이미 다른 경쟁자보다 앞서는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알카텔은 DSLAM 장비를 포함하는 가입자단 집선장비(CO) 분야에서 지난 99년 이래 점유율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특히 알카텔은 매년 4, 5개 업체가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혼전을 거듭하고 있는 2위권 그룹과 달리 줄곧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가입자 모뎀 장비(CPE) 분야의 경우 2위 자리를 유지해오던 알카텔은 지난해 중반 프랑스 톰슨멀티미디어에 CPE 사업 부문을 매각했다. 바로 이 부문이 알카텔의 ADSL 사업에서 돋보이는 점이다.

 알카텔은 CPE사업을 통해 적지 않은 매출을 거둬왔음에도 불구, 장기적인 사업구조 개선 노력의 일환으로 수익성이 높은 CO분야에 집중하기 위해 CPE부문을 매각했다. 물론 ADSL의 본격적인 확산에 힘입어 이미 상당한 매출을 올려 투자비 회수에 대한 부담은 해결된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한 결단이었다.

 이와 함께 알카텔은 자사 장비의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현재 벨기에와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CO장비를 내년부터는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알카텔상하이벨로 이관할 계획이다.

 현재 알카텔은 초고속인터넷장비 분야에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지난 2000년 초고속인터넷장비 사업을 전담하는 광대역네트워크사업 부문을 출범시킨 알카텔은 VDSL, G.SHDSL 등 차세대 인터넷 솔루션에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또한 최근 전세계 통신장비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NGN 사업에 대응하기 위해 자사의 초고속인터넷장비와 NGN 제품군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알카텔 아태지역 광대역네트워크사업부 총책임자인 파잘 바하딘 부사장은 “알카텔은 ADSL 상용 장비를 조기 개발해 관련시장을 선점하고 이를 발판으로 각국의 통신 사업자와 긴밀한 파트너십을 형성함으로써 xDSL 시장 1위를 수성할 수 있었다”고 성공 배경을 설명하고 “향후 포스트 ADSL 시대에도 통신사업자들의 수익형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지원하면서 이 부문의 우위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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