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사피엔스 이야기](46)해고당하는 로봇

 산업현장에서 로봇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저 기계가 우리 회사의 생산성을 얼마나 높일 것인가. 혹시 로봇이 생산라인을 차지하면서 직원들의 해고 가능성을 높이지는 않을까. 결국 회사수익을 올리는 것은 좋지만 자기 일자리까지 위협할 정도로 너무 뛰어난 자동기계도 곤란하다는 것이 일선 노동자들의 솔직한 로봇관이다. 제조업계의 수익성과 고용문제에 있어 로봇기술이 미치는 영향은 지난 60년대 미국 주물공장에서 쇳물을 나르는 산업용 로봇이 처음 실용화된 이래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초기 산업용 로봇 개발자들은 2000년대에는 거의 모든 공장이 100% 무인화된 생산라인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당시 인간의 노동력이란 24시간 일하는 기계로봇의 생산성을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며 결국 공룡처럼 생산현장에서 도태될 운명으로 보였다. 실제로 산업용 로봇기술이 성숙단계에 접어든 80년대 세계 자동차업계의 용접, 조립공정은 속속 무인화됐고 로봇시장은 급팽창했다. 로봇이 공장을 차지하고 노동자는 모두 길거리로 쫓겨날 것이란 불길한 예언은 현실화되는 듯 했다.

 하지만 로봇의 행진은 거기서 멈추고 말았다. 현 시점에서 평가할 때 로봇이 생산현장에서 노동계급을 밀어낼 것이란 예언은 너무 앞서간 것이 분명하다. 산업계의 로봇수요는 예상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공급능력이 포화상태를 넘어선 세계 자동차업계는 더 이상 대규모 로봇주문을 하지 않는다.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전자, 반도체, 광부품 등에서 로봇수요가 새로 발생했지만 그마나 경기침체로 성장이 벽에 부딛혔다.

 무엇보다 끝없이 진보할 것으로 예상되던 산업용 로봇기술은 지난 80년대 완성된 수직, 회전식, 다관절 로봇팔에서 거의 발전을 못했다. 사람의 손처럼 유연한 작업을 해내는 로봇팔은 아직 요원한 실정이다. 또 산업용 로봇의 유지, 관리업무는 너무도 복잡해 숙련된 전문인력이 필수적이다. 노동계에는 반가운 얘기겠지만 현재로선 100% 무인화된 공장이란 기술적, 경제적으로 전혀 타당성이 없다.

 최근에는 산업용 로봇시장의 앞길을 가로막는 요인이 또 하나 늘었다. 바로 13억 인구를 지닌 중국이 세계의 공장국가로 떠오른 것이다. 많은 경영자들은 90년대 이후 산업용로봇을 새로 구입하는 것보다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란 사실을 발견했다. 무한한 산업예비군을 지닌 중국경제의 부상은 선진국 기업들의 단지 인력절감을 위해 값비싼 로봇장비를 구매할 필요성을 상쇄시켰다.

 이런저런 상황을 따져봐도 향후 산업용 로봇시장은 단순한 노동력 대체가 아니라 사람 손으로 불가능한 미세작업 공정에 집중해야 재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인간의 손은 아직도 가장 위대한 생산도구이며 멍청한(?) 로봇노동자를 해고하기에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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