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산기업들의 잇따른 국내 가전시장 진출은 분명 ‘공과’를 안고 있다. 한때 한국경제의 위협요소였고 어떤 때는 국내 가전업체들에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제로 작용했다.
특히 이들 기업은 한국 가전시장이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정글의 법칙이 철저히 적용되는 곳이라는 인식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충격기제였다.
소비자들의 경우, 수입선다변화 제도가 폐지되면서 물밀듯이 유입되기 시작한 외산 제품들로 인해 제품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수혜를 누릴 수 있었다.
여기에 일본 업체들의 국내 법인 설립은 종전 남대문, 용산전자상가 중심으로 형성돼 왔던 블랙마켓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계기로 작용하면서 밀수품을 양지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등 외산 제품을 구매했던 국내 소비자들이 한 번쯤 경험했을 AS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외산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소니코리아를 비롯해 상당수 외산업체들의 AS마인드 전환이 이뤄지고 있으나 국내 소비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제품가격의 20%에 육박하는 출장수리비 등 높은 AS 비용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장사’의 주범으로 외산기업이 꼽히는 제도적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2002년도 소니코리아, 필립스전자 등 개별 외산가전업체들의 총매출도 현지화 노력과 한국형 상품 개발에 힘입어 1조3000억원(추정치)을 돌파했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외산기업들이 장기적으로 한국시장에서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선 AS제고와 우수인력의 확보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기적인 승부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상실하기보다는 지속적인 ‘재투자’를 통해 매출 1조원 시대에 걸맞은 성장엔진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국산과 외산의 품질격차가 줄어들면서 AS가 제품구매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요소로 떠올랐다. 현재 외산업체들의 AS망은 국내 삼성전자, LG전자에 비해 절대적으로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단일 점포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점포 영업에 필요한 파트너를 물색하는 것은 협업의 시대에서 검토할 수 있는 한 대안으로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산업체들이 국내시장에서 공식 판매하지 않는 제품에 대해서는 유상수리를 해 준다든지 원활치 않은 부품수입 체계로 인해 AS시간이 길어지는 등의 문제점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점으로 지적된다.
다국적 기업에 맞는 글로벌 인재육성의 중요성도 제기된다. 외산가전업체들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나무는 물론 숲을 볼 수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형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차인덕 도시바코리아 사장의 말은 현재 외산가전업계의 인력상황을 가늠해 볼 있게 한다.
내년도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2003년도 사업전략을 수립하는 외산 가전업체들도 수요 예측에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디지털가전 시황이 예상외로 침체국면에서 회복되지 않고 있고 내년 1∼2월 미국의 이라크 공격설, 대선 이후 경기회복 기대감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수입물량 조절과 신상품 개발 착수에 변수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가전시장은 원천기술에 대한 노하우와 첨단 기술력을 갖고 있는 외산 기업들에는 분명히 ‘기회의 땅’이다.
0과 1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를 맞은 외산가전업체들의 새로운 변화와 제2의 도약을 기대해 본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