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의 정보통신 문화산책](87)인터넷 대통령

지난주 토요일. 시청 앞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미군 장갑차에 무참히 깔려죽은 효순이와 미선이를 추모하는 집회였다.

 해가 지면서 수많은 촛불이 켜졌다. 그리고 그 촛불은 시청 앞과 광화문 네거리 일대를 밝게 밝혔다. 반미가 아니라 우리민족의 자존을 위한 행사였지만, 세계인들에게는 강력한 힘으로 보여졌을 것이다.

 정부에서 주도한 행사가 아닌, 자연발생적인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에 대한 추모행사의 시작은 인터넷이었다. 그 인터넷을 통해 사람이 모였고, 그 모임은 이제 나라의 자존을 지키는 힘이 되었다.

 지난 6월, 한일 월드컵의 응원을 주도한 붉은 악마가 활용한 매체도 인터넷이다. 초창기 붉은 악마의 탄생은 PC통신을 통해 시작되었다. 그 후 보편화된 인터넷을 통한 활동이 이뤄졌다. 월드컵 당시 자체적인 행사로 200∼300명씩 모여 시작된 거리응원이 인터넷을 통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500여만명 규모로 확대되었다.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온 나라를 붉게 만들었고, 온 국민들에게 건국 이래 최대의 희열을 함께 모여 느끼게 했다.

 올 초, 프랑스 영화배우 출신 동물보호가인 브리지트 바르도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다는 이유로 한국제품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그 때 우리의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통해 브리지트 바르도의 홈페이지와 두개의 방송사 홈페이지에 항의했다. 그 결과 워너브러더스11 방송사의 홈페이지는 두번이나 다운되었고, 프랑스의 제2방송은 두려운 나머지 한동안 외부접속을 차단시키기에 이르렀다.

 지난 2월 21일, 미국의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전이 열렸다. 이 경기에서 김동성 선수가 오심으로 금메달을 빼앗기자 사이버 공간에서 네티즌들이 분노했다. 극단적인 반미운동과 함께 급기야는 폭탄메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홈페이지를 12시간 동안 다운시켜버렸고, 미국올림픽조직위원회(USOC)의 홈페이지도 9시간 동안 완전 마비시켜버렸다.

 지난 3월 국방부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으로 미국 보잉의 F15K 전투기를 선정했다. F15K가 향후 생산을 중단하기로 예정돼 있던 기종임이 알려지자 인터넷상에서 반대 의견이 들끓었다. 6조4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주고도 제대로 건질 것이 없다는 사실이 네티즌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 때 김 대통령이 미국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야단을 치는 가상녹취록이 공전의 히트를 하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해서였다. 미국 국방부와 보잉 홈페이지는 한국 네티즌들의 항의가 폭주해 서버가 멈추기도 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21세기의 첫 대통령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의 진행과정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현상이 있었다. 그 현상의 핵심적인 요소에도 인터넷이 있었다. 단순한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당락에 직접 영향을 줄만큼의 요소였다.

 이번 선거에 참여한 각 후보자들은 인터넷과 매스미디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인터넷의 신속성과 양방향성의 특성은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매체로 적극 활용됐다. 이 때 인터넷보다 더 좋은 매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전의 고무신과 막걸리 선거문화, 동원선거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다. 인터넷은 분명히 새로운 선거문화를 만들어냈다.

 각 당은 유권자 대부분에 해당하는 네티즌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인터넷 홍보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후보에 관한 정보는 동영상까지 가미돼 실시간으로 전파됐다. 게다가 일방적인 e메일 세례가 아니라 네티즌간에 활발한 토론이 이뤄져 자연스럽게 정치참여를 이끌어냈다.

 이를 통해 특정 매체에 의한 여론 왜곡을 막는 데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인터넷은 분명히 이번 선거에서 매우 위력적인 존재가 되었다. 특히, 지방선거와는 달리 이번 선거와 같은 전국적인 선거나 사건에서 인터넷의 위력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

 게임은 끝났다.

 변화의 바람이 거대한 조직을 한판승부로 누르고 끝이 났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치열한 각축과 혼돈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 각 후보들에게는 경의를 표한다.

 결과론적으로, 이번 대통령 선거의 당선자가 그 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람이었다. 돈도 없고, 조직도 없고, 낡은 정치 청산과 정치개혁, 부패청산과 같은 변화를 위한 바람몰이가 승리를 굳히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그 바람의 핵심에 인터넷도 자리했다.

 인터넷은 아주 특별한 존재다. 모든 것을 통합할 수 있는 위력적인 존재다.

 기술적으로 유선통신망과 무선통신망, 개인휴대통신(PCS), 위성통신, 전력선통신, 케이블TV 등 모든 통신매체를 통합한다. 음성과 데이터를 통합한다. 그것도 양방향 통합으로,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 나간다. 이러한 인터넷의 특성은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는 도구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미 세계 최강의 초고속 인터넷 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사이버 비즈니스는 물론, 국가의 자존을 지키고, 선거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발휘한 것도 이러한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분당에 자리한 KT 본사 1층에는 ‘홈디지털서비스(HDS) 시연관’이 운영되고 있다. 가정과 카페, 상점, 학교, 차량 등에서 정보통신, 특히 인터넷의 활용성을 시연해 보이는 곳이다. 다른 전시장이나 시연장에서처럼 별도로 설치된 네트워크가 아니라, 우리가 보편적으로 활용하는 상용 네트워크인 휴대폰으로 시연이 가능하다. 이미 보급된 정보통신 서비스에 대한 상점에서의 활용을 시연하는 곳이다.

 ‘HDS 시연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온다. 일반인은 물론, 유치원생, 고등학교 발명반, 대학의 관련학과 학생, 전문 직장인들까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관람한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외국 관람객들이다. 그 외국인들은 관람을 마치고는 아주 놀라워한다. 특히, 시연과 체험을 위한 제한된 서비스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일반 이동전화와 상용화된 네트워크를 활용해 시연관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문화와 힘을 준비해 놓았다. 앨빈 토플러가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더 이상 한국이 따라갈 모델은 없다고 했다. 정보통신과 인터넷을 활용해 이룩할 수 있는 많은 것이 이제 한국이 기준이 된다는 말이다. 바로 우리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다는 말이다.

 인터넷 대통령.

 이번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우리는 하나의 기준을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인터넷의 적극적인 활용이었다면, 그것 또한 새로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이번 대통령 당선자를 인터넷 대통령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 인터넷 대통령에게 정보통신사업과 인터넷사업을 통한 세계기준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많은 관련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정치를 기대해본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 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