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사피엔스 이야기](53)변신로봇

 어린 시절 집짓기 놀이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방바닥에 어질러둔 온갖 모양의 블록조각을 맞춰서 집, 동물, 우주선으로 만들던 그 열정과 창조의 순간을. 장난감블록에 생명을 불어넣고 다시 해체하는 과정을 거듭하며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현실세계에서 구현하는 노하우를 터득하고 조금씩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흔히 집짓기라고 불리는 레고블록(Lego block)은 1932년 덴마크에서 처음 등장한 이래 20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완구로서 전세계 어린이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레고블록의 장수비밀은 다른 장난감과 달리 순간적으로 형태가 바뀌는 가변성에 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레고블록의 변신능력은 전자오락게임이 판을 치는 21세기 첨단완구시장에서도 퇴색되지 않는 천재성을 과시하고 있다.

 이처럼 유년시절 블록쌓기를 하며 놀던 기억은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된 과학자, 엔지니어에게 창조적 영감의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 때문일까. 최근 로봇연구계에선 장난감블록처럼 자유로이 형태를 바꾸는 변신로봇이 등장해 실용화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변신로봇은 작은 로봇모듈들이 필요에 따라 뭉쳐 새로운 로봇기능을 구현한다. 방바닥에 쌓아 놓은 블록조각들이 스스로 짜맞춰서 생물처럼 변신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이해가 빠르겠다. 예를 들면 물건을 옮길 때는 팔로 작동하고 급히 이동하고 싶으면 발로 변하는 식이다. 만화같은 얘기지만 90년대 초반 일본에서 모듈형 변신로봇의 개념이 구체화된 이래 외형을 바꾸는 로봇은 애니메이션 속의 거대한 변신합체로봇(건담V류...)이 아니라 실생활에 응용가능한 단계로 매년 근접하고 있다.

 제록스사의 파올로 알토연구소에선 최근 한국계 과학자의 주도로 험한 길을 올라갈 때는 거미형태로 변신하고 굴 속을 지나갈 때는 뱀처럼 바뀌는 변신로봇을 개발했다. 이같은 변신로봇은 기존 로봇에 비해 다양한 환경변화에 대응능력이 뛰어나고 표준화된 모듈양산시 가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튼튼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현재 변신로봇이 당면한 기술적 과제는 수많은 로봇모듈을 한꺼번에 제어하면서 각 모듈메카니즘의 기계적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레고블록처럼 단순하고 신뢰성있는 로봇모듈이 실용화될 경우 원자력 발전소의 파이프 청소에서 화성 지표탐사까지 여태껏 단일용도 로봇이 해결하기 힘들었던 많은 응용분야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술처럼 외형을 바꾸는 변신로봇을 보면 왜 어릴 적 조기교육이 중요한지, 아이에게 사주는 장난감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낀다. 최첨단 변신로봇도 결국 족보를 따지자면 장난감 블록쌓기의 성인용 버전이 아닌가. 어린 자녀에게 장난감을 선물한다면 전자오락게임보다 창의력 발달에 좋은 블록쌓기가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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