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정보문화를 만들자](29)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네팔(상)

 오토바이가 꼬불꼬불한 카트만두 시내를 골목 골목 헤집고 다니더니 갑자기 시골길로 들어섰다. 시내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어느덧 길은 비포장길로 바뀌고 양 옆에는 논이 펼쳐진다. 빗살을 맞으며 오토바이 뒷자리에 매달린 기자는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40여분 달린 끝에 도카 마을에 도착했다. 도로 사정이 안 좋아 택시 운전사들이 ‘차 망가진다’며 피하는 곳, 그래서 전세 낸 오토바이로 다녀야 하는 이곳 도카 마을에서 한국의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이 컴퓨터 교육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씨앗이라도 아이들에게 심고 싶었어요”

 인터넷청년봉사단 ‘e히말라야’ 팀장 한라나씨(24)는 네팔의 시골 마을을 봉사 활동지로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쩌면 평생 컴퓨터와 상관없이 살 수도 있는 이곳 아이들이지만 “정보화 교육을 통해서 컴퓨터를 접하고 꿈을 발견할 수 있다면 다른 어떤 교육보다 의미있을 것”이라고 한라나씨는 말했다.

 열악한 여건에서 시작한 만큼 분명 일은 힘들었지만 힘든 과정을 거치며 얻은 보람은 이 모든 것을 잊게 했다고 e히말라야 팀원 4명은 입을 모았다.

 처음 교육을 계획했을 때 이 마을에는 PC가 한 대도 없었다. e히말라야 팀은 얼마 안되는 활동비를 쪼개 한국에서 중고 PC를 사 가서 현지에 PC 교육장을 직접 설치해야 했다. 팀에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진찬희씨와 IT 전문 강사를 하는 정지희씨도 있었지만 불안한 전기 사정, 낙후한 통신망을 극복하고 교육장을 설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진찬희씨는 “애써 교육장을 정돈하고 첫 수업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됐을 때는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40여명의 학생들을 놓고 윈도와 워드프로세서를 설명하며 하루 종일 수업하면 목은 아파 오고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자갈길을 지나 숙소로 돌아오면 몸은 녹초가 되곤 했다.

 그러나 눈이 크고 깊은 네팔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수업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저절로 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진급 시험을 앞둔 상황에서도 1시간 이상 걸어 매일 교육을 받으러 오는 열의를 보였다. 네팔 도카마을의 아이들에겐 컴퓨터와 통신의 ‘별세계’였다. 1시간의 다리품은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수업에 쫑긋 귀를 세우고 어린이 답지 않게 한시도 한눈을 팔지 않는 현지 네팔아이들은 “컴퓨터 배우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신난다”며 “여태껏 보지 못한 컴퓨터와 인터넷이 네팔에도 많이 생겨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다”고 작은 바람을 얘기했다.

 정지희씨는 “수업이 끝나도 돌아가지 않고 질문을 퍼붓는 아이들 앞에서 피곤은 도리어 사라진다”며 “특히 아이들이 이해가 빠르고 금방 배워서 더욱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인근 4개 마을에서 학생이 몰렸지만 교육장 사정상 40명만 받을 수 밖에 없던 것이 못내 아쉬었다. 교육에 참여하지 못한 학생들도 오가면서 교육장 안을 들여다 보고 신기한 듯 부러운 듯 자리를 뜨지 않아 안타까움이 더했다.

 팀원들은 그럴수록 수업에 더욱 신경을 썼다. 교육을 받은 학생과 현지 학교 교사들이 PC 교육장을 계속 관리하고 다른 학생들을 가르쳐 정보화 교육이 계속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초등학교 영어 교사인 라나씨와 IT 전문가인 진찬희씨와 지희씨, 한국어가 유창한 현지인 감비르 만 슈레스터씨로 구성된 e히말라야팀은 최상의 수업을 위한 최강 ‘드림팀’이었다.

 또 아이들이 2002 월드컵 동영상을 보며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매운 붉은 악마의 모습에 신기해 하고 한국에서 준비해 온 한국 문양의 종이 공작을 하면서 한국에 호기심을 보일 땐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정작 이들을 힘들게 했던 것은 시골보단 상류층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이었다. 상류층은 컴퓨터를 실제 생활에 활용할 기회도 더 많고 정보화 교육의 파급 효과도 크다는 것. 더구나 이들은 장차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될 사람들인 만큼 이들의 마음 속에 심어질 ‘코리아’에 대한 이미지는 값을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팀장인 한라나씨는 “인터넷 청년 봉사단 활동엔 한국의 이미지를 높인다는 측면도 있다”면서도 “어떤 이유로든 인간의 기본권인 정보접근권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시골을 택했다”고 말했다.

 밝게 웃으며 한국 선생님들의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 귀를 쫑긋 세우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언뜻 이들에게 뿌려진 작은 씨앗이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만큼 크게 자라있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도카(네팔)=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 네팔은...

 히말라야의 나라, 불교의 발상지 네팔은 히말라야 산맥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도·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은 약 14만㎢, 인구는 2370만명이다. 수도는 카트만두. 정식 국명은 네팔왕국으로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화폐 단위는 루피. 공용어는 네팔어지만 영어와 힌두어도 통용된다. 삼림과 수자원이 풍부하고 비동맹 중립 노선을 주장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40달러 수준이다.

 경제는 주로 관광업과 농업 생산에 의존하고 있으며 특히 인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대부분의 생활필수품이 인도를 통해 들어오고 있으며 인도와의 무역은 네팔 수출입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주민 대부분은 힌두교를 믿으며 소수의 불교 및 이슬람교, 기독교 신자가 있다. 법적으로는 1960년대에 카스트 제도가 폐지됐지만 실생활에선 여전히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남방계의 인도·아리안 인종이 전체의 80%, 북방 몽골·티벳계가 17%를 차지한다.

 전화보급률은 3%이며 통신 및 인터넷 기반 시설은 카트만두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고속인터넷은 아직 보급되지 않았으며 일부 대학·연구소 등에서 위성을 이용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 모택동주의 공산 반군이 일부 지역을 장악하며 정부와 대치하고 있다. 정부와 반군은 협상을 시도했으나 최근 결렬되면서 사회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에서 전자·전기, 철강 제품 등을 수입하고 섬유류, 농산물 등을 수출한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 인터뷰 - `e히말라야` 한라나 팀장ㆍ감비르씨

 “한국이 세계로 좀 더 눈을 돌려 도움을 찾는 사람들에 가까이 갔으면 좋겠어요”

 네팔에서 활동한 해외 인터넷 청년 봉사단 ‘e히말라야’ 팀의 한라나(24)씨는 대학 때부터 부지런히 세계 곳곳을 누빈 ‘해외통’이다.

 히말라야의 풍경에 매료돼 안나푸르나봉을 트레킹하며 네팔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지만 한편으론 끼니를 거르는 현지인들,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아이들, 그들의 해진 옷을 기억에 담았다.

 결국 네팔에서 지내는 동안 알게 된 감비르씨와 함께 네팔을 실제로 돕기 위한 일을 찾아 나선 것이 정보문화진흥원의 해외 인터넷 청년 봉사단에 자원하게 됐다.

 라나씨는 “단순히 성금 얼마를 전하는 것보단 자립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정보기술(IT) 분야의 씨를 뿌리는 것이 의미있을 것”이라며 “특히 우리 나라가 많이 앞선 분야기 때문에 우리가 해외에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영어 교사로서 교육에 대한 관심과 외국 학생들에 대한 의사소통 능력을 함께 갖고 있어 더욱 해외 교육 활동에 관심이 많다.

 카트만두에서 한국인 대상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던 감비르(26)씨는 한국에 들어와 우리 말을 배우며 한국의 인터넷 발전상을 생생히 봤다. 고향의 동생들, 학생들은 이런 정보화의 혜택을 받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다가 라나씨와 함께 네팔 학생들을 위한 컴퓨터 교육 봉사를 구상하게 됐다.

 한국어와 영어, 네팔어에 모두 능통한 그는 네팔 지역 정보화 교육을 위한 최고의 선생님이 아닐 수 없다. 감비르씨는 네팔의 현실이 어렵고 힘들어 보여 우울할 때도 많지만 “학생들에게 IT의 씨를 뿌리는 것이 장차 나라의 힘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카트만두 시내에도 최근 PC방이 빠르게 늘어나는 등 젊은층에서 IT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며 “인터넷과 정보화가 네팔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