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버업체 밀어내기에 유통사 자금난

SW 기반 사업확대 등 자구책 필요

 올 국내 서버 시장을 유통 측면에서 결산한다면 ‘밀어내기 전쟁’으로 요약될 수 있다. 국내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HP와 한국IBM이 벌이는 점유율 싸움에서 발단이 된 밀어내기는 유통 시장에서 소화해낼 수 있는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 시장 자체를 왜곡시킬 시한 폭탄으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업체간 시장 점유율 확대가 주요 원인=일반적으로 서버 유통 업체(이하 채널)들은 제품을 주문한 후에 실제로 공급받는 데 4∼5주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해 일정 물량을 비축해 놓는다. 하지만 12월 중순 현재 상당수의 유닉스 서버 채널들은 최소 두 달, 길게는 석 달 판매치에 해당하는 물량을 재고로 안고 있다. 대강 잡아도 채널 입장에서의 적정 재고 물량의 2∼4배 정도를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사태가 이처럼 악화된 것은 유닉스 서버 시장을 둘러싼 업체들간의 점유율 경쟁 때문이다. 특히 한국IBM이 지난 6월 미들레인지 유닉스 서버를 유통 모델로 전환, 상당한 실적을 올린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실제로 이달초 한국IBM이 지난 3분기에 미드레인지급 서버의 매출 확대로 기대 이상의 실적을 올린 것으로 발표하자 한국HP를 비롯한 경쟁 업체들도 한 해를 불과 열흘 정도 남기고 있는 현 시점에서 대규모 물량 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커 채널의 재고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반품·신제품 교환 아예 불가능=유통 채널 입장에서 과도한 재고 물량은 자금이 묶여 경영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서버 공급업체들은 과도한 물량을 받는 대신 이에 상응하는 물량의 판매를 보장해주는 식의 ‘당근’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 역시 시장 구조를 왜곡시키는 편법이라는 지적이다. 시장에서 공정경쟁 자체가 봉쇄된다는 것.

 재고 물량에 대한 반품이나 구매 취소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문제점로 지적된다. 과거 서버 업체들은 일단 밀어낸 물량에 대해선 신형으로 교체해 주는 등 재고를 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시행했지만 지금은 어느 업체도 이런 정책을 가동하지 않고 있다.

 유통사의 한 관계자는 “더 이상 재고를 안고 있을 수 없어 신형 서버 제품을 땡처리하는 것처럼 근을 달아 팔아버렸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개선 방안 없나=유통사들은 무엇보다 서버 업체가 불필요한 시장 점유율을 둘러싼 싸움을 그칠 것을 주문한다. 또 총판간 경쟁을 유도하는 상황을 조장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현금 거래를 할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 역시 생색내기 정책에 불과한 만큼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는 것도 요구한다.

 이와 관련, 최근 한국HP가 본사 차원에서 가동한 주문관리프로세서 시스템은 유통사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쉽게 말해 전화나 대면을 통해 주고받던 주문 관행을 웹에서 시스템적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유통사에서는 상시 주문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문에 따른 공급 진행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밀어내기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방식은 아닐지라도 필요 이상의 주문을 피할 수 있는 안전장치로 작동할 것이란 평가다.

 국내 유통사가 단순히 하드웨어를 물량 대기로 판매하는 대신에 특화 시장 개척이나 솔루션 기반의 사업을 벌이는 등 자구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버 유통 채널들이 특정 수요처를 관리하고, 그 사업을 하기 위한 기술력을 확보하다 보면 시장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어 서버 업체들의 휘둘림에서 일정 수준 벗어날 수 있는 것.

 유통 채널들은 무엇보다도 서버 업체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서버 업체들이 유통사들을 각사 제품을 밀어 내는 채널이 아니라 비즈니스 파트너로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한 유통사의 대표는 “서버 업체들이 유통사들을 BP(비즈니스 파트너), CDP(채널개발파트너), 홀세일러, 총판 등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올 봄 SK네트웍스(구 SK글로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로는 각사 제품을 일방적으로 밀어내는 파이프 라인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