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천동에 거주하는 주부 정 모 씨(55세)는 최근 난생 처음 신경 정신과를 찾았다. 실직한 뒤 인터넷 PC방에서 온라인 도박에 빠져 집에 들어오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인 아들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서다. 결혼을 앞둔 직장인 박 모 씨(29세) 역시 여러 번의 취직 시험 낙방 이후 인터넷 게임에 심하게 몰입하게 된 예비 신랑 탓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울의 한 신경 정신과에는 최근 들어 이처럼 가까운 가족이나 애인, 또는 자신이 스스로 인터넷 중독자라고 판단해 병원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찾는 이들의 연령이나 직업도 초·중·고생으로부터 중년의 실직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해졌다. 이쯤되면 인터넷 중독을 단순히 시일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치유될 일시적인 현상으로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나도 혹시 ‘인터넷 중독?’= 인터넷 중독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우리 나라는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없다. 그러나 국내에서 인터넷 접속으로 인해 일상 생활이 위협받는 수준에 달하는 명백한 중독자들이 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정통부와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만 9세에서 39세까지 전국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4년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 결과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고위험 사용자, 이른바 인터넷 중독자는 3.3%, 잠재적 위험 사용자는 11.4%에 달했다.
특히 만 9∼19세의 청소년들 중 고위험사용자는 4.3%, 잠재적 위험 사용자는 16%인 것으로 나타났다.
KT문화재단이 전국 초·중·고교생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조사 대상의 23%가 스스로 인터넷 중독임을 인정했고 채팅이나 음란물에 빠져 있다고 답한 학생도 각각 11%, 15%나 됐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이수진 센터장은 “최근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나 상담 사례를 살펴보면 아직 중독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중독 위험이 있는 사용자 층이 크게 확대돼 예방교육과 인터넷중독의 위험을 알리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인터넷 사용자의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으며 성인들 역시 어떠한 예방 체계도 없는 상황에서 중독의 정도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독 의심되면 상담 센터 찾으세요 = 이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터넷에 병적으로 빠져들어 해결책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활발한 지원을 펼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전문적인 인터넷 중독 상담 및 예방 활동이 정부 차원에서 개시된 것은 불과 2년 남짓 됐지만 최근 지원 범위 및 관련 활동이 날로 확대되는 추세다.
정부 기관으로는 유일하게 전문적인 인터넷 중독 예방 및 상담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의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센터장 이수진)는 지난 2002년 4월 개설 이후 초·중·고교 교사, 학부모, 학생 등을 대상으로 예방 교육, 상담사 파견, 연구 작업 등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 중이다.
특히 최근에는 정통부의 인터넷 중독 관련 사업 지원 확대 방침에 힘입어 그동안 수도권 중심으로 운영돼온 인터넷 중독 상담 센터를 16개 광역 시·도까지 확산하고 2006년에는 전국적으로 80여 개까지 센터를 늘려나갈 예정이다. <표 참조>
진흥원의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활동 중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한국형 인터넷 중독자가진단 프로그램을 연구, 개발했다는 점. 인터넷 중독이 의심되는 사용자는 센터 홈페이지(http://www.internetaddiction.or.kr)에 접속해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자가 진단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난 93년 설립된 ‘서울YMCA 청소년 약물과 인터넷중독 예방 상담실’ 도 개인·집단 상담, 사이버 상담, 심리 검사 등을 통해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 예방 및 치료에 적극 나서고 있는 대표적인 단체이다. 이 상담실은 내달 10일부터 18일까지 서울YMCA 서초지회에서 매주 금·토요일에 인터넷 중독에 관심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인터넷 중독 워크숍’도 개최할 계획이다.
◇책임있는 예방 대책 마련해야=일부 전문 기관과 시민단체가 온·오프라인을 통해 인터넷 중독 확산 방지에 팔을 걷어 부쳤지만 인터넷 중독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보다 다각적인 시도가 요구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학부모 감시단 활동에 참여해온 한 학부모는 “교육부, 문화부, 정통부 등 각 부처의 산하 기관 등이 인터넷 중독의 심각성에 대한 실태 조사 수준에 그치고 해결책 마련에는 소극적인 것 같다”며 “초등학생부터 학교에서도 올바른 인터넷 이용법을 정식으로 교육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 한국의 인터넷 중독을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독특한 현상’으로 주목할 만큼 그 실태가 심각한 만큼 정부 차원에서 좀더 체계적인 예방 교육에 힘을 쏟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김종윤차장(팀장), 김유경기자, 조장은기자, 윤건일기자
◇김현수 청년의사인터넷중독치료센터장
“한국도 일본처럼 사용시간 만큼 요금을 내는 인터넷 종량제를 실시하는 등 보다 강력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입니다. 초등학생은 밤 10시 이후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게 하자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김현수(38) 청년의사인터넷중독치료센터장은 인터넷 중독의 예방책을 묻는 질문에 다소 과격한(?) 대답으로 일관한다. 실제로 다양한 인터넷 중독자와 만나면서 그 심각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청소년 문제 및 인터넷 중독에 관심이 많아 청소년보호위원회 자문위원,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청년의사 인터넷 중독 치료센터를 개설한 김 센터장은 최근 자신이 서울 봉천동에서 운영하는 ‘사는기쁨 신경 정신과 의원’을 통해 인터넷 중독자 치료를 적극 실천하고 있다.
최근의 양상에 대해 그는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매우 폭넓어지고 청소년 게임 중독의 경우 중독되는 게임 종류도 많아졌다는 것이 특징”이라며 “청년 실업 장기화 현상을 반영하듯 대학생이나 실업자들이 많아진 것도 눈에 띄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인터넷 중독 등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대안학교인 ‘성장학교 별’을 운영하면서 30여 명의 학생과 만나는 교사이기도 한 김 센터장은 “학교에서 직접 학생들과 얘기를 나눠본 결과 80% 이상이 게임이나 음란물, 채팅 중독에 노출돼 있었다”며 “인터넷이 청소년 성매매의 절대적인 경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청년의사인터넷중독치료센터는 주로 온라인으로 인터넷 중독 상담 등을 펼쳐왔으나 병원 개원 이후 센터 운영 보다는 인터넷 중독 환자들과 대안 학교 운영에 주력하면서 직접적인 사례 연구 및 치료법 도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며 “부모는 물론 학교에서도 인터넷의 올바른 사용법을 교육시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성인들의 인터넷 중독 예방 및 자가 진단 방법에 대해 그는 “일반적으로 하루 4시간 이상 인터넷에 매달려 있으면서 대인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가족 관계나 사회 생활이 어렵다면 중독자로 분류한다”며 “인터넷 외에 몰입할 수 있는 다른 무엇을 찾는 등 개인의 노력도 필수적이지만 사이버 아노미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기 교육 등 정부의 노력도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잠재적 위험 사용자도 급증 `사회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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