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 동료와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다녀온 적이 있다. 베트남 전쟁이 종식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머릿속엔 화염에 쌓인 전장과 키보다 긴 총을 든 베트콩의 이미지가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하노이에는 전쟁의 상황도, 총을 둘러맨 베트콩 전사도 없었다. 적어도 외관으론 그랬다. 출퇴근 시간 산업의 용사들을 태운 수천대의 오토바이와 대우, 현대차 사이로 곡예운전을 하는 택시(오토바이)기사와 생활인이 있을 뿐이었다.
수천대의 자전거가 거리를 꽉 메우는 중국과는 대조를 이루며, 베트남의 특징을 한 장의 그림으로 보는 듯하다.
인구 8000만명, 33만㎡(국토면적·한국의 약 1.5배)의 꼬리를 꽈리 틀어 길게 뻗친 용의 모양을 한 나라, 17도선을 중간에 두고 1976년 통일이 될 때까지 남북이 갈라져 10년을 넘게 전쟁을 한 나라, 베트남이다.
남북의 길이가 3000㎞가 넘어 호지명 시티에서 하노이까지 열차로 40시간이 걸리고 국민소득이 아직 1000달러 미만이다.
중앙선이 잘 보이지 않는 좁은 거리에는 오토바이 위에 앉은 긴 팔 소매에 긴 바지를 입고 모자를 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반바지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나 남자들은 거의 볼 수 없다. 한증막 같은 날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수천년 동안 유교를 신봉해 조상을 숭배하여 엉덩이에 몽고반점을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는, 경로사상이 강한 젊은 청년(평균연령)의 나라다.
더는 한국에 대한 적대감이 없고 최근 한류열풍이 시작된 나라이며 월드컵이나 자동차, 휴대폰, 화장품, 가전제품과 소비제품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베트남 여성들은 한국 화장품을 어떤 외제화장품보다 최고로 친다고 한다.
지금 베트남에서는 상당수의 한국기업과 교민들이 현지에서 총·칼 전쟁이 아닌 마케팅 전쟁을 하고 있다. 하노이 길거리에 가장 자주 보이는 간판은 단연 ‘SAMSUNG’ 간판이다. 길거리엔 아직도 한국에서 쓰던 그대로인 버스노선 번호와 안내판, 광고, 금연 안내문구를 붙인 채 현대버스와 대우버스가 다니고 있다.
하노이에서 약 180km 떨어진 ‘베트트리’라는 도시에 한국의 P방직이 약 8000만달러를 투자해 설립한 PN사가 지난해 42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 업체 사장은 베트남에 투자한 한국기업은 대부분 성공적이라고 말한다. 중국에 투자한 기업의 성공확률이 20%에도 못 미치는 반면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80% 이상이 성공하고 있다는 얘기다.
베트남에서 한국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대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하에 있으나 자본주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보다 더 값싸고 질적으로 우수한 노동력이 풍부하다.
둘째로 평방미터당 15센트의 싼값으로 공장부지를 50년간 조차할 수 있으며 연장 계약할 수 있다. 그 외 전기 공업용수 등에서 중국보다는 훨씬 유리한 입장이며 경제적이다.
셋째, 베트남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며 한국사람 못지 않게 은근과 끈기를 가진 민족이며, 무엇보다 한국사람에 대해 우호적이다.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에 진출하자 하노이 시장이 한국기업에 아오자이를 입은 화동을 보내주었고, 한국기업은 붉은 티셔츠 수천장을 답례로 보내기도 했다.
넷째로 한국기업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절대적인 배려와 우호적인 노사협력관계를 들 수 있다. 다섯째로 식을 줄 모르는 한류열풍이다. 대우호텔에는 YTN방송이 한국시간과 같이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아리랑 방송을 청취할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마음의 전쟁에 이용할 수 있는 지형지물이며, 손자병법의 동남풍이다.
한국의 모든 기업이 중국으로 블랙홀처럼 빠져 들어갈 것이 아니라, 업종의 유형에 따라 더욱 유리한 지형지물과 동남풍이 있는 곳으로 머리를 돌리는 것도 기업의 전략이다.
<조봉진 한국창업보육협회 회장 bjcho@km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