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올림픽’으로 불리는 ‘월드사이버게임즈(WCG) 2004’가 성황리에 막을 내리면서 각국의 게이머들의 독특한 게임문화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게임은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언어장벽이 거의 없어 세계인이 한데 어우러져 화합을 다지는데는 금상첨화다.
하지만 나라마다 독특한 게임문화가 반영되면서 강세를 보이는 종목이나 게이머들의 플레이 스타일도 천차만별로 갈린다. WCG 조직위에서 경기진행을 담당하고 있는 ICM 손경국 대리는 “아시아, 유럽, 미주 등 지역마다 게이머들이 좋아하는 게임이 다르고, 플레이 스타일이나 심지어 매너까지 크게 달라 때로는 예상치 못한 행동에 상대 선수가 당황하는 일도 생긴다”고 말했다.
# 아시아는 RTS, 유럽은 FPS
WCG2004에는 ‘세계 게임문화 지도’가 한눈에 그려졌다. 나라마다 게이머들이 좋아하는 게임이며, 플레이 스타일 등이 국가 대표들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우선 문화나 정서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동양과 서양은 게임 장르별 선호도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한국, 대만 등 아시아 선수들이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와 ‘워크래프트3(이하 워3)’로 대변되는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에 열광하며 뛰어난 성적을 보인 반면 미국이나 유럽 선수들은 ‘카운터 스트라이크(이하 카스)’ ‘언리얼 토너먼트(이하 언리얼)’ 등 1인칭 슈팅게임(FPS)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다. 다만 스포츠게임인 ‘피파’에서만 동·서양의 선호도나 실력이 거의 엇비슷한 정도였다.
# 국민성 선호도에 투영
대륙별로 유사한 선호도도 국가로 세분되면 또 다른 양상도 보였다. RTS를 선호하는 아시아에서도 한국이 ‘스타’에 여전히 열광했다면 대만은 ‘워3’가 ‘스타’의 인기를 앞질렀다. 콘솔게임 강국 일본이나 온라인게임 바람이 불고 있는 중국에서는 RTS 못지않게 ‘카스’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특징.
WCG를 주관하는 ICM 관계자는 “WCG에 참가한 국가의 대부분이 RTS의 경우 ‘스타’보다 ‘워3’에 더욱 관심을 갖는데 반해 유독 한국만 ‘스타’를 고집하는 양상”이라고 귀띔했다. 이 때문에 이번 WCG ‘스타’ 32강에서 우승 후보인 한국 선수끼리 만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예선전 마지막 경기에서 전상욱이 일부러 패해 조 2위로 32강에 진출하는 전략이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빨리 빨리’로 대변되는 한국인의 화끈하고 호전적인 성향이 게임 선호도에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스타’는 ‘워3’에 비해 훨씬 빨리 승부가 결정되는데다 많은 유닛으로 이른바 ‘개떼 전투’가 가능하기 때문.
FPS를 좋아하는 유럽도 동유럽과 서유럽 게이머들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동유럽에는 ‘언리얼’이 단연 인기를 얻고 있는 반면 서유럽에서는 ‘카스’ 열기가 뜨겁다. 이는 WCG 행사장에 몰린 관중들의 면면에서도 확연하게 구분됐다. ‘언리얼’ 경기를 중계하는 대형 스크린에는 슬로바키아, 체코 응원단이 두드러진 반면 ‘카스’ 관중석엔 독일, 영국, 프랑스 사람들을 주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파티나 사교문화가 발달한 서유럽의 게이머들이 ‘총싸움’도 팀을 이뤄 즐기는 ‘카스’를 좋아하는 반면 다소 개인적이고 소극적인 동유럽 게이머들이 싱글플레이 요소가 강한 ‘언리얼’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플레이 스타일도 각양각색
이번 WCG에서는 게임 선호도뿐 아니라 게이머들의 플레이 스타일도 대륙이나 나라별로 크게 다른 양상을 보였다.
한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권 게이머들은 항상 조용하게 경기에 임하는 반면 유럽이나 미국의 게이머들은 경기에 앞서 요란한 응원구호를 외치는가 하면 경기에 이기면 환호성을 지르며 세레머리를 펼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특히 다혈질의 동유럽 게이머 가운데는 경기에 지면 분을 삭히지 못해 돌출 행동도 서슴지 않아 대회 관계자들을 긴장시키곤 했다. 이번 대회에도 예선에서 탈락한 슬로바키아 게이머 한명이 여권을 포함해 모든 짐을 놓고 경기장에서 혼자 사라져 대회 관계자가 그를 찾느라고 애를 태우는 해프닝도 빚어졌다.
ICM 관계자는 “아시아 게이머들이 다소 조용조용하고 내성적인 측면이 있지만 메달이 걸린 결승전에서는 서구 게이머들처럼 흥분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지난해 대만 선수들이 ‘워3’ 국가별 대항전에서 우승한 뒤 모든 선수들이 무대로 올라와 열광하면서 경기장 세트가 무너진 것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ICM 정흥섭 사장은 “게임이 언어장벽을 뛰어넘는 만국어가 되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게이머들의 성향은 대륙이나 국가마다 제각각이라 WCG 종목별 메달 실적에 반영되곤 한다”면서도 “WCG가 4회째 접어들면서 국가마다 모든 게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양상이라 앞으로는 이같은 게임 선호도의 경계도 차츰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샌프란시스코=장지영기자 장지영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