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신년특집]신화는 계속된다

지난 11월 2일 LG전자가 긴급 간담회를 자청했다. 전날 일본 마쓰시타가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모듈에 대한 특허를 침해했다며 LG전자를 제소한 데 따른 대책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LG전자의 대응이 받아들여져 보름 후 산업자원부 무역위원회는 마쓰시타 제품에 대한 국내 수입 및 판매 행위를 중지하는 잠정 조치를 내리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유사한 사례로 대법원은 삼성SDI와 LG전자 등 국내 PDP업체가 1999년 일본 후지쯔를 상대로 낸 특허등록 무효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하기도 했다.

 이들 사건은 세계 PDP 모듈 시장에서 한국이 49%를 차지하며 일본을 바짝 추격하자, 일본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한국 PDP산업을 견제하려는 조치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디지털가전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삼성과 LG를 위시한 우리나라 위상이 매년 성장하면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 역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대표적인 효자품목이다. 월 수출액이 20억달러 내외라는 수치도 그렇고, 세계 오지에까지 한국의 깃발을 꽂았다는 점에서도 휴대폰은 말 그대로 ‘신화 창조의 주역’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증명하듯 디지털전자산업 부문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년대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00년 전체 수출 규모인 1723억달러 가운데 디지털전자산업이 38.6%를 차지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전체 1938억달러 중 38.5%인 747억달러가 디지털전자산업에서 나왔을 정도다. 치열한 기술경쟁과 통상마찰, 더욱 심화되는 지역경제 블록화, 중국 급부상이라는 다변적인 주위환경 속에서 거둔 쾌거라는 점에서 의미는 더욱 크다.

 하지만 우리나라 수출 신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막 시작하는 전초전일 수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이 순간, 동시에 각 부문·기기 간에 융·복합이 이뤄지는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노하우’보다는 ‘노웨어(Know-where)’가 중요하고, 트렌드에 맞춰 발빠르게 상품화하는 것이 성패와 직결되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구도는 우리에게 훨씬 유리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단적인 예로 디지털 셋톱박스나 디지털TV, MP3플레이어는 중요한 ‘차세대 먹거리’일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세계적인 추세는 단연 아날로그 방송의 디지털화다. 셋톱박스가 통합돼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셋톱박스와 디지털TV에 대한 세계적인 수요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또 대형 TV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갈 것임은 자명하다.

 우리나라는 9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셋톱박스에 대한 기술과 브랜드를 축적하면서 세계적인 유통망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몇 년 전부터는 ‘제2의 휴맥스’를 꿈꾸며 가온미디어·토필드·티컴앤디티비로·홈캐스트 등 전문회사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디지털TV 역시 삼성·LG전자 등 대기업과 함께 중소중견회사들이 계속 발군의 실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휴대형 오디오기기인 MP3플레이어는 종주국답게 여전히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최근에는 뚫기 어렵다는 미국 시장도 진출했다. 레인콤, 거원시스템, 엠피오 등 MP3플레이어 전문회사들이 올해 5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기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디지털전자산업의 미래를 짐작케 한다. 이렇게 된다면 궁극적으로는 문화 수출도 가능해질 수 있다.

 “어느 국가에서건 한국인처럼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면 마음 뿌듯할 것 같다”던 한 중소기업 사장의 말이 잊혀지질 않는다.

 정은아기자@전자신문, eajung@



◆해외 진출 성공비결-민심을 잡아라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뛰어난 기술의 제품이거나 아이디어가 훌륭한 경우, 아니면 마케팅이 기발하거나 공격적이라면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 지역의 특화된 제품으로 ‘민심’을 잡는 것이다. 각 문화에 따라 소비자 생활방식이나 구매패턴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성공한 제품이 LG전자의 대추야자 냉장고다.

 대추야자 냉장고는 중동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김치처럼 대추야자를 즐겨 먹는다는 데 착안해 대추야자를 장기간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든 냉장고를 말한다. 일교차가 큰 중동지역의 기후를 고려해 25℃에서 3.5℃까지 온도조절이 가능하고, 김치냉장고처럼 3단 서랍형 또는 2단 서랍형으로 설계된 대추야자 냉장고는 이제까지 중동 지역에 양고기를 저장하기 위한 냉동고는 있었지만 과일이나 야채를 저장하기 위한 별도 저장고는 없었던 점을 감안, 대추야자라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셈이다.

 LG전자가 인도와 이란에 출시한 ‘크리켓 TV’나 ’케밥 전자레인지‘도 현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사례다.

 ‘크리켓 TV’는 인도 국가 스포츠라고 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크리켓 게임을 TV에서 할 수 있는 TV로, LG전자는 이 ‘크리켓 TV’ 인기에 힘입어 인도 진출 7년 만에 TV시장 1위(24% 점유율)에 오르기도 했다.

 ‘케밥 전자레인지’는 전자레인지에 이란의 인기 음식인 ‘케밥’ 조리기능을 추가한 것으로 이란 전자레인지 시장 부흥에 기여했다. 4∼5년 전 2만대에 불과하던 이란 전자레인지 시장이 지금은 20만대까지 증가했는데, 이 중 40% 정도를 LG전자가 차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이슬람권 소비자를 겨냥해 나침반처럼 방위표시 기능을 가진 ‘메카폰’이나 중남미·중동 등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냉장고 문을 자주 여닫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자물쇠 냉장고’도 지역색을 살린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