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벤처코리아 2004’ 개막식장.
이 행사의 호스트인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은 ‘다시 벤처다!’라는 구호로 개막 선언을 대신했다. 그는 ‘벤처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자’는 취지에서 이 구호를 외친 것이다. 그러나 이날 행사장을 찾은 200여명 벤처업계 관계자들은 장 회장의 외침을 그리 의미있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의례적인 구호’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한달 그리고 사흘 후인 11월 8일.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벤처기업 활성화 간담회’를 가진 후 “내년을 벤처부활 원년이 되도록 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벤처 살리기를 장마 비에 젖은 나무에 불을 붙이는 것에 비유하며 “불쏘시개만으로는 안 되고 석유를 뿌리든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한 달 그리고 16일 후인 12월 24일.
마치 벤처업계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듯이 ‘벤처기업 활성화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대책에는 △벤처기업의 세제 및 금융지원 △코스닥시장의 중소·벤처기업 전용시장화 및 활성화 △벤처기업 인수합병(M&A) 활성화 △벤처캐피털의 안정적 재원 확보 및 투자자금 회수 지원 △벤처 패자부활 프로그램 도입 △벤처 클러스터 형성 △신기술제품 및 SW수요기반 확대 △제3시장 개편 등 벤처업계가 그동안 요구해온 정책 대부분이 반영됐다.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은 “정부의 지원책 내용을 보면 능력 있는 기업들이 열심히 하면 초기부터 성장·성숙기까지 단계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며 “이번 정책은 한국 벤처산업이 다시 한번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왜 제2의 벤처 붐인가?= 정부가 벤처기업 육성을 통해 △경제활력 회복 △성장동력 확충 △일자리 창출 등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특히 9년간 머무르고 있는 국민소득 1만달러대를 넘어 2만달러 시대 진입을 위해서는 벤처가 첨병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본 것이다. 오명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장관은 “미국이 현재까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경으로 벤처를 빼놓을 수 없다”며 “벤처기업은 국가적으로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차원에서도 육성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글로벌 경쟁력 우위 유지를 위해서는 벤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분석도 한 몫을 했다. 즉 중국의 급부상 그리고 대일 무역적자 심화 극복을 위해서는 벤처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제2의 벤처 붐 가능하다= 정부는 올해 ‘제2의 벤처 붐’을 일으키기 위해 두 가지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나는 지난달 24일 발표한 ‘벤처기업 활성화대책’.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11월7일 ‘IT뉴딜정책’.
벤처기업 활성화대책은 이헌재 부총리의 말 그대로 ‘제2의 벤처 붐’ 조성을 위한 방책이다. △역동성 △다산다사(多産多死) △고위험-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등 벤처기업의 본질을 잘 살릴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기 위해 창업·성장·구조조정이라는 벤처기업 성장단계별로 필요한 인프라와 자본시장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벤처업계가 지난 11월8일 제시한 벤처산업 재도약을 위한 10대 아젠다를 적극 수렴, 업계가 나래를 적극 펼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일각에서 우려한 ‘퍼주기 식 지원’은 최대한 절제하고, 정부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벤처기업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IT뉴딜 역시 벤처산업 활성화에 직간접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는 정책이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벤처기업들이 정부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신시장 및 신산업 창출. 이런 의미에서 IT뉴딜은 의미가 크다. 주요 IT뉴딜정책을 보면 △지능형교통정보시스템(ITS), 재난관리시스템, DB통합표준연구 등 각종 정보화 프로젝트 △첨단IT콤플렉스 조성사업 △홈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사업 △KAIST발전 종합프로젝트 △나노종합팹 구축사업 등이다.
◇벤처업계, 더 이상의 실패는 없다= 벤처업계는 정부의 잇따른 벤처육성책에 ‘이제는 우리가 분발할 때’라고 말할 정도로 매우 고무돼 있다. 특히 각자 맡은 영역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다짐하는 한편 벤처가 그동안 갖고 있던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윤리·투명경영’을 다짐하고 있다.
벤처기업협회는 업계가 자발적으로 윤리경영에 나서자는 의미에서 윤리경영 가이드라인을 조만간 확정, 확산에 나설 계획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벤처기업 윤리강령 △윤리경영 실천규범 △윤리경영 자가진단표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조현정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은 “벤처가 단기간에 압축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벤처가 윤리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벤처캐피탈협회도 그동안 꾸준히 문제점으로 지적받아왔던 투자 투명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반기중 ‘창투사 투자활동 공시제도’를 도입한다. 이 제도의 골자는 벤처캐피털업체가 경영·재무상황, 조합 운영현황, 위법사항 등의 공개다. 협회는 또 윤리강령 가이드라인을 포함한 벤처캐피털산업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다.
김준배기자@전자신문,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