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지만 확실한 목표와 한번 정한 목표는 반드시 이루는 길거리 농구인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농구를 시작해 잠을 잘 때 빼고는 손에서 한시도 농구공을 놓지 않는 안희욱. 그는 흑인들이 즐기는 것과 다른, 김치맛이 물씬 풍기는 길거리 농구를 완성하기 위해 오늘도 코트를 누빈다.
# 힙훕을 통한 자유
“힙훕은 자유를 추구합니다. 농구를 통해 나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방과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낯선 사람이라도 한 게임만 같이 땀을 흘리며 뛰면 친해집니다.”
힙훕은 힙합과 농구 골대의 링을 의미하는 후프의 합성어다. 길거리 농구의 또 다른 명칭. 하지만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고 안씨는 말한다. 프로 농구는 반드시 이겨야하기 때문에 정해진 룰과 매번 같은 스타일의 플레이를 벗어날 수 없고 정확히 정해진 선수들의 포지션을 벗어나기도 힘들다. 하지만 힙훕은 아마추어 농구이기 때문에 꼭 이기기 위한 농구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보다 자유롭고 자신이 가진 많은 기술을 표현해도 탓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주인이 되는 농구, 그것이 바로 힙훕이다.
# 마이클 조던에게 반해
초등학교 3학년 당시 처음 본 마이클 조던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고무같은 몸놀림과 NBA 스타들을 농락하는 드리블,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공시키는 슈팅. 마이클 조던에게 한 눈에 반한 안씨는 곧바로 농구공을 구입해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홀로 공을 튕기던 그는 동네 고등학생 형들에게 같이 하자고 부탁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하고 놀림만 당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 한달 동안 농구공을 붙들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찾아가 농구를 즐기는 형들 곁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마침 한 명의 자리가 비워 간신히 낄 수가 있었으나 패스를 전혀 해주지 않았다. 경기 내내 공 한번 만져보지 못한 분함에 엉엉 소리내어 울었고 악에 받쳐 밤새도록 혼자 연습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고등학생 형들과 같이 게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드디어 레이업으로 생애 최초의 골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형들은 서서히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정식 멤버로 끼워주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어요. 레이업이 들어가는 바람에 형들이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고 애걸하면서 겨우 낄 수 있었던 시합도 없어졌지요.”
하지만 신장이나 힘, 기술에서 차이가 많이 날 수 밖에 없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은 계속됐다. 초등학교 3학년이 고등학교 3학년이나 대학생들과 함께 플레이를 하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인데 꼭 이기고 싶어서 시합 후 반드시 일대일을 신청했다. 물론 자신이 이길 때까지 집에 못가도록 붙잡아 뒀다. 안씨의 이런 생활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 나이키에서 인정한 실력
“저보다 크고 힘이 센 형들을 이기기 위해 다양한 드리블을 생각해 냈고 정통 농구 룰을 벗어나는 스킬도 막 사용했어요. 정통 농구인이 보면 마구잡이로 하는 것 같았지만 저는 제 나름대로 농구 플레이를 개발해 열심히 노력했던 결과였던 것이지요. 전 그게 길거리 농구라는 것도 전혀 몰랐어요.”
안희욱씨는 나이키에서 주최한 1회 길거리 농구 대회에 참가했고 대회 관계자의 눈에 띄었다. 나이는 어린데 마치 미국 슬렘가에서 하는 농구와 비슷하다는 칭찬과 함께 그는 나이키에 전격 발탁됐고 길거리 농구 대회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 했다. 전국을 누비며 농구를 즐겼고 미국 슬렘가의 흑인들과 한판 붙기도 했으며 국내 프로 농구 스타들과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어느새 그는 유명인사가 됐고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으며 팬을 자처하는 네티즌에 의해 카페(http:cafe.daum.netanheewook)도 만들어졌다.
# 내 인생을 걸고 도전한다
22살의 나이면 아직 젊다. 하지만 언제까지 길거리 농구만 하면서 전국을 누빌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도 이런 점을 많이 느끼고 힙훕에 대해 체계화를 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농구를 하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지만 아직까지 체계적으로 잡힌 문화와 방향이 없기 때문에 청소년들을 위해서라도 브랜드화를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길거리 농구만을 위한 브랜드를 만들고 용품도 제작해 사업을 전개하고 싶다는 것이다.
“제 인생을 힙훕에 걸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지만 농구를 할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군대도 가야하고 아직 해야할 일이 태산처럼 많지만 하나를 위해 달려가고 싶어요.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자신이 있습니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