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모 과학기술한림원장 (9) 항공우주종합개발계획 확정
우리나라의 우주개발에 대한 꿈은 70년대부터 싹트고 있었다. 당시 과학기술 예산의 영세성으로 볼 때 우주개발을 하겠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엉뚱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주국방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70년대 초에 국방과학연구소를 근본적으로 개편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외국에서 훈련받은 유능한 젊은 과학기술자들을 모으고 군 출신이 아닌 심문택 박사를 소장으로 임명하면서 재래식 무기체제 국산화와 함께 유도탄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30대의 젊은 우리 과학기술자들은 그러한 대규모 무기체계 개발에 전혀 경험이 없었기에 시스템엔지니어링에서부터 추호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세부 기기설계까지의 개발 과정 하나하나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개발 참여자들의 학력은 최고라고 할 수 있었지만 설계 실무에는 생소해 이 사업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관계자들이 의심을 했었다.
유도탄 개발의 총 책임자는 MIT에서 학사, 석·박사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미국 굴지의 엔지니어링회사에서 근무하다가 KIST 연구원으로 귀국했던 기계공학자 이경서 박사였다. 우리나라 기술역사상 가장 어렵고 큰 유도탄 사업을 성공시켜 그 힘을 바탕으로 자력으로 우주개발을 하겠다는 것이 꿈이었기에 이경서 박사는 혼신의 정성으로 우리의 지적 자원을 총동원해 이 유도탄 개발계획을 추진했다.
1978년 가을, 이경서 박사팀은 역사적인 유도탄 발사시험을 박대통령 참관 아래 시행했다. 시험은 대성공을 거두어 국내외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고 이에 고무되어 1985년까지 우리 기술로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겠다는 그 꿈이 이루어질 것만 같았었다. 그러나 1979년 박 대통령의 피격 사망 이후 국방과학연구소의 유도탄개발팀은 해체돼 안타깝게도 그 꿈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미국 인공위성연구센터인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제트추진연구소 통신연구팀의 중진 기술자였던 최순달 박사는 귀국해 금성통신연구소장, 전자통신연구소장, 체신부장관과 한국과학재단이사장 등 중요한 직책을 역임한 우리나라 전자통신계의 개척자다. 최박사는 KAIST 교수로 복귀하면서 인공위성 개발의 꿈을 실현하고자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인공위성연구센터 설립을 주도했고 이 센터는 1990년 한국과학재단에 의해 우수공학연구센터(ERC)로 선정되었다.
이후 그 젊은 팀은 최박사의 지도 아래 1992년 우리별 위성을 쏘아 올리는데 성공했고 그 가슴 뿌듯했던 쾌거는 지금도 KAIST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와 국민들의 자랑이 되고 있다.
1995년 과학기술부장관으로 재임 중이던 나는 우리나라 항공우주종합개발계획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경서 박사와 최순달 박사를 중심으로 기획팀을 구성하고 항공우주연구소의 장근호 박사 팀이 실무를 맡아 우리가 설계하고 제작한 인공위성을 우리의 발사체로 우주 궤도에 올리겠다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70년대에 시작된 발사체 기술개발사업과 80년대에 시작된 우주관측 및 통신 기술개발사업을 합해 한국의 우주과학을 일으키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1996년 5월 완성된 종합계획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해 최종 확정이 되는 순간 우리나라 우주개발 계획은 획기적인 전기를 갖게 되었다. 오늘날 대덕연구단지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소는 우리 국민이 염원하는 자주국방과 첨단통신망 구축을 위해 다른 연구기관들과 함께 매진하고 있다.
이들의 꿈과 땀은 결실을 맺어 대한민국의 번영뿐만 아니라 인류평화와 행복 증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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