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매직씽`탄생
93년 겨울 우연히 마이크에서 음악이 나오는 제품을 접했다. 이를 유심히 보던 나는 음악 뿐 아니라 노래, 영상 모두가 재생 가능한 마이크를 만든다면 획기적인 제품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94년 5월 엔터기술의 전신인 ‘건음’을 창업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제품 개발은 순탄치 않았다. 6개월이면 된다는 제품 개발은 끝이 없었다. 주위에서 사업자금을 끌어오고 집을 팔아 융통해 모은 개발비 1억원은 어느새 바닥나 있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나 97년 초가 되니 회사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고 내 손에는 5억의 빚만 남았다. 결국 그 동안 믿고 도와주셨던 전 직장 회계사님, 기술자, 동업자 모두 실망하고 흩어질 수 밖에 없었다. 절망 그 이상 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부도를 내고 회사 문을 닫으면 다시는 재기 하기 힘들 것만 같았다. 여기서 멈추면 도와 주신 지인들에게 영원히 마음의 빚을 지고 평생을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또 끝내기에는 지금까지의 고생을 무엇으로 보상 받을까 하는 오기도 생겼다.
다시 나의 무모한 듯한 도전은 시작됐다. 기술인력 확보가 우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업소용 노래방 회사가 성장하던 때라 기술자들은 당연히 대우가 좋은 상대 기업들을 선호했다. 제품 개발도 되지 않은 위태로운 엔터기술에 기술 인력들이 발을 들여 놓을 리 만무했다. 진심과 정성으로 이들을 설득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드웨어 전문가였던 지금의 정동준 상무를 스카우트 하기 위해 찾아 간 것만도 십여 차례였다. 하드웨어 기술자 뿐 아니라 제품에 들어갈 미디(MIDI) 음악을 제작할 전문가를 확보하는 일도 필요했다.
이들과는 아르바이트 형식의 근무형태와 곡당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의 계약을 맺었다. 그들의 근무 편의를 봐주는 형태로 좋은 미디 음악가도 확보 할 수 있었고 회사는 사무 공간도 줄일 수 있는 1석 2조였다.
그렇게 또 1년 반이 지난 98년 7월 마이크에 노래방 기능을 모두 담은 ‘매직씽’이 개발됐다. 영상, 노래가사, 부가기능 등을 손톱만한 반도체 집적(ASIC) 칩 속에 모두 압축 구현해 간편한 휴대형 제품이었다. 5년만의 고생 끝에 탄생한 제품. 이를 보기 위해 믿고 따라준 가족과 친지, 고생한 직원들 그리고 주위 지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할 길이 없었던 순간이었다.
기쁨도 잠시, 산을 다 넘었다고 생각한 내 앞에는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판로와 마케팅, 수익성을 확보하는 일이 문제였다. 종교음악을 담은 제품으로 매출은 있었지만 1만원의 마진이 전부인 게 마음에 걸렸다. 자체 양산이 불가능해서 수원의 모 전자회사를 통해 외주 제작을 맡겼는데 제품 공급 원가를 맞추고 나면 더 이상의 순익을 창출할 수 없었던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대대적인 마케팅을 위해서도 제품 양산을 위해서도 자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순간이었다.
IMF 여파로 시장은 냉담해 결국 지분을 정리하기로 했다. 금융을 활용하지 않고 기업의 장래를 내다 볼 줄 아는 장기 투자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시공테크의 박기석 회장님으로 8억원의 운영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길로 바로 제품 라인을 확보해서 직접 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했고 대당 1만원이었던 순익을 5만원까지 끌어 올릴 수 있었다.
회사는 드디어 날개를 달고 비상할 준비를 끝냈다. 사명도 엔터테인먼트와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엔터기술(Enter-tech)로 바꾸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Leeenter@enter-te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