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인은 어떻게 싸움을 시작할까? 막부 시대에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길에서 스쳐 지나갈 때 항상 상대를 자신의 오른쪽으로 지나가게 했다고 한다.
그래야 혹시라도 싸움이 나면 바로 검을 뽑아서 벨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칼은 보통 왼쪽에 차고 오른손으로 뽑기 때문에 자연 오른쪽을 베는 게 쉽다) 서로 칼 있는 쪽으로 스쳐지나다가 칼이 부딪치기라도 하면 반드시 싸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사무라이에게 있어서 칼은 곧 목숨이기 때문에 그걸 건드린다는 건 대단한 모욕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길거리에서, 혹은 무협소설에 자주 나오는 것처럼 객잔에서 술을 마시다가 시비가 일어나 싸우는 건 중국에서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워낙 일반적인 일이니 생략하고 무림인이 보통 싸움을 하는 건 비무(比武)를 통해서다.
비무, 즉 무예를 비교한다는 것이다. 현대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일종의 대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보다는 조금 더 넓은 범주의 단어다.대련이라는 개념의 비무라면 수련비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건 주로 정해진 투로를 반복하면서 무술을 수련하는 중국무술의 특징에도 불구하고 산타(散打)라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산타는 우슈의 정식 종목 중 하나이기도 한데, 유파에 상관없이 행해지는 격투기이니 중국무술의 이종격투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진검승부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사실 일본에서 온 단어다. 무기를 들고 하는 승부, 혹은 대련은 날이 없는 목검이나 목도를 들고 하는 게 보통이다. 진짜 무기를 사용하면 안전에 치명적인 위험이 있으니까. 그러니 진검승부란 목숨을 걸고 승부를 겨룬다는 각오를 하고 벌이는 승부를 뜻한다.
그런데 실제로 진검승부를 하는 경우, 그리고 죽이지는 않고 단지 누가 뛰어난지 승부만 겨루는 경우 판정은 어떻게 할까? 일본의 북진일도류 거합도에선 최근까지도 진검승부를 하곤 했다고 한다. 거합도란 철저히 진검만으로 수련을 하는 무술이다. 앉아서, 혹은 서서 검을 빼는 것으로 시작되는 검술이 거합도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이곳에선 목도나 죽도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대련도 진검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근래 들어서는 보험회사에서 보험적용을 안해준다거나 정부에서 금지시켰다거나 해서 잘 안 한다고 하지만 만약 하게 될 경우엔 승부 판정을 세 번 베이면 지는 걸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보통은 세 번 베이기 전에 졌다고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중국에서 비무는 대련을 위한 것 이외에도 다양하게 행해진다. 그 대표적인 것이 비무초친(比武招親)이다. 2~3년 전에 중국의 한 처녀가 비무를 해서 자기를 이기는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광고를 내서 한국의 신문에까지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비무를 해서 친척을 만든다. 그게 비무초친이다. 이게 무협소설에만 나오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대개 무협소설 속의 비무초친 방법은 이렇다. 무림세가의 주인이 자기 딸을 무능한 남자에게 주고 싶지 않으니 비무로 사위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여러 가지 목적이 있겠지만 사실은 딸을 내걸고 고수를 사위로 맞이하고 싶다는 의도일 것이다. 보통은 딸과 보물을 같이 내걸고 모월 모일에 비무대회를 연다고 소문을 낸다. 그리고 당일엔 지원자들끼리 비무를 시켜서 우승자를 가려내고, 이 우승자와 딸을 결혼시키는 방식이다.
이 비무초친 에피소드는 과거에는 자주 무협소설에 등장하던 이야기였다. 문제의 딸보다 같이 내건 보물 쪽이 탐이 나서 참가하는 무림인들이며, 참가자의 자격조건에 미혼인 남자라 되어 있다고 자기도 참가하겠다고 우기는 노인네(게다가 추남이다), 원래는 사윗감을 미리 골라두고 화려한 무림 데뷔를 시키겠다고 준비한 비무초친 대회에서 이 사윗감이 의외의 인물에게 져버리는 바람에 문제가 되는 이야기 등등이 다수 있었다.
비무는 문파 간의 시비를 해결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두 문파 간에 시비가 붙었다. 서로 누가 잘못했니 따지자니 한도 끝도 없다. 이럴 경우 무사답게 칼로 해결하자고 하는 것이다. 방식은 여러 가지 있다. 제일 간단한 건 두 문파의 문주가 붙어서 승부를 내는 것이겠지만 대개 문주 쯤 되면 이미 늙어서 싸울 힘도 없는 경우가 있다. 그게 아니라도 귀하신 몸이 다칠 우려도 있겠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각 문파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고수를 대표자로 내보내 승부를 보게 하는 방식을 쓸 수 있다. 하나씩만 하면 운이라는 게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 여러 명을 내보내서 많이 이긴 쪽이 이기는 걸로 할 수도 있다.
실제로는 이 방식이 가장 많이 사용된 듯하다. 그리고 원칙적으로는 이때 각 문파에 원래 있던 선수들이 나와야 겠지만 그러면 불리할 수도 있으니까 유명한 강호의 고수들을 초빙해서 선수로 내보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인맥이나 재력도 무림 문파의 실력 중 하나인 셈이다.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덤비는 도전자를 상대해 주는 것도 비무의 일종이다. 근세 중국의 무술계에는 이런 일이 흔히 벌어지곤 했다고 한다. 무술이 인격의 도야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싸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배우면 한 번 써보고 싶기 마련 아닌가. 무술가들은 또한 명예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누가 어디서 유명하다고 하면 굳이 가서 꺾어버리고 싶어하는 무술가들이 과거에는 적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도전을 당하는 처지에선 이런 게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지면 당연히 수치스럽고 불쾌하겠지만 이겨도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긴다고 특별히 뭐가 생기는 것도 없다. 진 쪽에선 당연히 분하게 생각할 것이고, 다치게 만들거나 아예 죽였다거나 하면 그쪽 친인척이나 문파 사람들에게 원한을 살 수도 있다.그래서 도전을 받는 쪽에서는 가능하면 비무에 응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유명한 팔극권의 고수 신창 이서문의 일화가 있다. 창주에 은거하고 있는 그에게 북경의 무술인 두 명이 찾아와 비무를 요청하자 이서문은 정중하게 거절하고 음식까지 준비해서 대접한다.
그런데 이 무술인 두 명이 그걸 무서워서 꼬리를 마는 것으로 생각하고 거만하게 행동했던 것이다. 그러자 이서문은 음식상을 치우고 그냥 비무를 하자고 한다. 결과는? 북경에서 온 두 무술인은 각각 한 방씩 맞고 죽어버렸다.
이서문 자신도 젊었을 때는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비무를 요청하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비무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아 신창 이서문이라는 명성을 쌓은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많은 원한이 결국 그를 죽였다. 여행 중에 독살 당하고 만 것이다.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사진설명 : 사진 순서대로..]
◇ 무협식 대결이란 이 정도 이미지는 돼야 할 것 같다. 영화 ‘영웅’의 스틸.
◇ 영화 ‘영웅’의 한 장면.
◇ 진검승부. 사실은 거합도 유파 중 유생신음류의 연무 모습이다.
◇ 거합도 유파 중 무쌍직전영신류의 시범 모습.
◇ 영화 ‘영웅’의 한 장면.
◇ 무협게임 천상비에서 재현된 비무.
◇ 현대의 우슈대회 중 산타 경기. 방호구를 하고 8m X 8m 매트 위에서 싸운다.
<좌백(佐栢) jwabk@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