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새드무비

정우성 염정아 차태현 임수정 손태영 신민아 이기우 이런 배우들을 모두 섭외해서 출연 승낙을 받으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그러나 그런 걱정할 필요 없는 곳이 있다. 영화사 아이필름이다.

이 배우들은 대부분 아이필름과 자매회사인 싸이더스HQ에 속해 있다. 이들 회사와 함께 영화배급사 아이러브시네마, 드라마 제작사 캐슬인더스카이, 게임 제작사 엔트리브소프트가 모여 IHQ라는 연예계의 공룡 재벌을 형성하고 있다.

얼마 전 아무 노력도 없이 스타 배우를 보유한 연예 매니지먼트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강우석 감독 등 영화제작자들이 공격한 주 타깃은 애꿎은 송강호나 설경구가 아니라, 바로 싸이더스HQ였다.

아이필름에서 제작한 ‘새드무비’는 위에서 열거한 배우들을 기용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사실 싸이더스HQ 소속의 배우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전지현, 송혜교, 김혜수, 전도연, 조인성 등등 70여명의 배우가 여기에 소속되어 있다.

연예매니지먼트사에서 출발하여 영화계의 공룡으로 급부상한 IHQ팀과 기존 충무로 제작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진행되는 전쟁터에서, ‘새드무비’는 일종의 세과시형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결과는?

실패다. 권종관 감독의 새드무비는 모두 네 커플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러브 액츄얼리’처럼 다양한 커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처럼 베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울림은 훨씬 적다. 너무 작위적이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부터 슬픈 냄새를 와장창 풍기고 있지만 슬프지 않다. 관객들은 극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정작 영화는 관객들의 눈물샘을 건드리지 못한다.

이진우(정우성 분)는 성실한 소방관이다. 그는 화재현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포기한 곳으로 진입해 수은(신민아 분)을 구출했다. 그리고 수은의 언니인 수정(임수정 분)과 데이트를 시작했다. 서른 살 이진우의 프러포즈를 기다리고 있는 수정, 그러나 진우는 번번이 기회를 놓친다.

수은은 그때 입은 화상으로 왼쪽 뺨에 보기 싫은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녀가 하는 일은 테마공원 백설공주. 얼굴에 커다란 인형 탈을 쓰고 연기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이지 않아도 된다. 언어장애자로서 수화로만 의사 표시를 해야 하는 수은 앞에 나타난 백마 탄 왕자님은 그림을 그리는 상규(이기우 분). 일곱 난장이들은 그들의 사랑이 맺어질 수 있도록 주위에서 도와준다.

정하석(차태현 분)은 백수다. 지난해도, 그 전해도 백수였다. 그의 여자친구 최숙현(손태영 분)은 마트의 계산원이다. 최숙현은 이 지긋지긋한 궁핍한 삶을 벗어던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백수 정하석은 이별대행 회사를 인터넷에 차려서 다른 사람의 이별을 대신 전해 주는 일을 시작한다.

최숙현은 그 이별대행 회사에 자신의 이별을 대신해 줄 것을 부탁한다. 상대는 정하석이다. 또 말썽꾸러기 초등학생 휘찬(여진구 분)의 어머니 주영(염정아 분)은 휘찬 때문에 늘 신경 쓰이지만 그녀는 매일 일을 해야 하는 커리어 우먼이다. 그러나 어느 날 암으로 쓰러진다. 휘찬은 뒤늦게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깨닫는다.

이렇게 각각 다른 사연을 가진 네 커플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 제목처럼 슬프게 막을 내린다. 그런데 관객들이 전혀 슬퍼지지 않는 이유는, 우습게도 제목에 이야기를 뜯어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이 ‘새드무비’여서 모든 커플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야만 한다. 이 억지설정 때문에 이야기는 힘을 잃고 배우들의 연기는 허공에 떠버렸다. 정말 이것이야말로 새드무비다. 비극이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