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지스타2005에서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던 작품 가운데 하나가 그라비티가 개발한 ‘페이퍼맨’이었다. FPS 게임 최초로 만화풍의 그래픽을 선보였고 캐릭터를 종이로 표현해 많은 갈채를 받았다.
특히 수류탄이 폭발했을 때 종이가 날리듯 캐릭터가 팔랑팔랑 거리며 떨어지는 모습과 총알 세례를 받고 피가 아닌 종이 조각이 튀기는 장면은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현재 ‘페이퍼맨’의 총괄팀장으로서 이 놀라운 게임을 빚어 내고 있는 인물이 바로 이동호(32) 팀장이다.
“전 전세계인을 중독시켜 매일 게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만드는 하는 작품을 개발할 때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다소 도발적인 말과 함께 커다란 웃음 터뜨리는 이 팀장. 그의 욕심은 자신이 만드는 게임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장르라도 상관 없고 또 어떤 플랫폼이라도 문제 삼지 않는다는 태도다.
그는 지금까지는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개인적으로 우여곡절이 많았고 게임 개발이라는 것이 개발자가 만들고 싶은 것만 만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공이 깊이 쌓여 자신감이 충만한 모습이 순간적으로 느껴졌다.
# 고난의 길로 들어서
물론 전국의 남학생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이 팀장도 오락실을 독서실 삼아 다녔고 컴퓨터로 숱한 게임을 즐겼으며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콘솔 작품을 접했다. 그는 특히 PC 게임에 몰두했는데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머리에 털이 나고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홈월드’를 꼽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파워 유저라는 생각이 강하게 떠올랐다.
그가 게임을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낀 것은 대학 때였다. 당시 자신보다 2살 많은 형이 게임 잡지사에 기자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끌렸다. 전공도 그래픽이었으니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95년에 게임업계로 뛰어 들었다.
일단 눈 딱 감고 게임 바닥으로 달려 들었으나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경험도 없이 게임 회사를 설립했으니 처음부터 잘 될리 만무했다. 하드디스크에 데모를 담아 이 회사 저 회사를 기웃거렸으나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세미콤에 입사해 아케이드 게임의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곧 DDS로 자리를 옮겨 ‘아크 온라인’을 담당했으나 역시 여의치 않았다. DDS라는 회사 자체가 공중 분해된 것이다.
그 와중에 그는 지인들과 다시 회사를 창업해 성공에 도전했으나 역시나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무래도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KT계열사 씨즈에서 자리를 잡았고 그곳에서 그라비티의 문을 두드렸다.
# 개발이란 열의와 노력이 바탕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그라비티에 자리를 잡았으니 다른 평범한 개발자와는 차원이 다를 수 밖에 없는 법.
“제가 처음부터 ‘페이퍼맨’을 기획하고 만든 것은 아닙니다. 로시오의 박명규 기획팀장이 거의 다 했어요. 처음 보는 순간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총괄팀장으로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는 셈이죠.”
앞으로 ‘페이퍼맨’은 더욱 진화될 예정이다. 현재 그는 종이의 특성을 활용한 다양한 게임 시스템을 구상 중이다. 캐릭터가 불에 타거나 물에 젖는 등 종이만이 가지는 성질을 적극 이용할 생각이다. 그래서 오픈 베타 테스트를 내년 상반기로 잡았다. 지금도 나무랄 데가 없는 수준이지만 더욱 완성된 작품성으로 유저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좋아하지 않으면 오지 마라. 전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많은 부분을 희생할 각오로 와야 합니다. 게임 개발이란 직업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죠.”
이 팀장은 아쉽다는 듯 모자를 매만졌다. 그는 최근 신입이나 개발자의 길을 택한 후배들이 ‘노가다’를 싫어한다고 걱정했다. 개발은 원래가 지루하며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인데 그것을 모르고 단숨에 결과만 보기를 원하는 자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이 만드는 게임을 본인도 안 해보는 경우도 많다면서 노력이나 열의가 부족하고 단지 돈이나 좀 벌자는 식의 생각은 대단히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이 팀장은 “이제 겨우 경력 10년인 데요. 더 배우고 더욱 노력해서 제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고 싶습니다. 유명한 만화의 대사처럼 하얗게 태우고 싶어요.”라며 씩 웃었다. 씩씩하고 잘 웃지만 든든한 말투가 더욱 미더웠다.
<김성진기자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