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반도체 분야에서 잇달아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얼마 전 국내 연구진이 반도체기술의 나노세대를 앞당길 ‘모트 금속-절연체 전이현상’을 구명해 세계를 놀라게 한 데 이어 최근에는 현재 주력 비휘발성 메모리인 플래시메모리의 속도 및 대용량화 한계를 모두 극복하는 ‘포스트 플래시메모리’인 저항변화메모리(Re램)를 상용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한다.
산업자원부 차세대 비휘발성 메모리사업단 국내 연구팀(팀장 황현상)이 차세대 메모리의 유력 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Re램 소자를 만들 수 있는 저항변화 물질인 단결정 스트론튬타이타늄옥사이드(SrTiO3)와 이 물질의 고유 특성이 유지되도록 하는 표면처리 공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것이다. 이 물질과 공정처리 기술은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전자소자회의(IDEM)에서 발표될 정도로 성능 검증도 받았다고 한다.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세계에 과시하는 국가적 쾌거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이 기술은 테라비트급 고용량 차세대 메모리의 실용화 시기를 당초 국제기술로드맵(ITRS)이 제시한 2012년보다 2∼3년 앞당길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으로 평가되고 있어 세계 반도체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황 교수팀은 이번에 개발한 물질과 공정을 이용해 제작한 단위 소자(cell)를 검증한 결과, 데이터 저장상태가 10년 이상 유지되고 1000만번 이상의 쓰기·지우기 작동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정보저장이 10년, 쓰기·지우기 작동이 10만번 수준인 플래시메모리보다 우수하다. 때문에 상용 제품 개발은 산업계의 의지에 달려 있지만 상용화할 경우 포스트 반도체산업의 새 시대를 열 만한 기술의 개가로 평가되고 있다.
Re램은 최근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 범주에 들어간 상변화메모리(P램)와 함께 대표적인 차세대 비휘발성 메모리다. 그래서 미국 IBM, 일본 샤프 등이 관련 기술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실용화가 가능한 수준의 연구결과는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내 연구진이 이번에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의 연구결과를 내놓음으로써 이 분야 기술개발에서 크게 앞설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차세대 성장동력을 하나 더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는 근래 들어 생명과학과 정보기술(IT) 그리고 이번처럼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성과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이들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엮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키우고 다듬어 나가느냐에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다. 기술을 개발해 놓아도 상용화가 늦다면 시장 선점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연구결과가 상용화로 이어지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실패할 위험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상용화를 주저할 수는 없다. 최근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인 인텔과 D램 업계 3위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합작회사를 만들어 내년 낸드플래시 생산에 나설 계획인 등 우리가 먹고사는 생명줄이라는 전자·반도체시장에서 ‘타도 한국’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따라서 이번에 개발한 기술이 가능한 한 이른 시일에 상용화할 수 있도록 정부와 업계 등은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 이제 Re램도 실용화를 유도하는 형태로 분류해 기업들이 상용제품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실용화보다는 대학과 연구소 중심의 기반기술 연구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차세대 비휘발성 메모리사업에 대한 재점검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반도체와 관련된 새로운 물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기초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정부 차원의 꾸준한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