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온라인게임 밀월 藥인가? 毒인가?

온라인 게임 분야에서 한국과 일본의 협력 무드가 빠르게 조성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온라인게임 플랫폼이 급부상하면서‘게임왕국’ 일본의 콘솔 및 아케이드업체들이 ‘종주국’ 한국업체들을 대상으로 잇따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

국내 업체들 역시 게임왕국의 방대한 콘텐츠 활용과 현지 진출의 호기라 보고 이를 매우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본과의 이같은 교류가 장기적으로 ‘종주국 프리미엄’을 약화시키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국내 최대 게임업체인 엔씨소프트는 지난달 경기 일산에서 열린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2005’ 현장에서 깜작 발표회를 가졌다. 일본 유수의 게임업체인 SNK플레이모어와 전략적으로 손잡고, 향후 이 회사의 히트작들을 온라인게임으로 만들겠다는게 주 요지. SNK는 콘솔 및 아케이드용 대전 액션게임으로 국내서도 널리 알려진 업체다. ‘킹오브파이터’ 등 몇몇 작품은 국내에 상당한 유저층을 확보하고 있을 정도로 브랜드 인지도가 높다.

엔씨와 SNK의 전략적 제휴가 다소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실 일본 게임업체들이 국내 온라인게임 개발사와 연계해 콘솔 및 아케이드 타이틀을 온라인 버전으로 개발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 년전부터 수면 아래서 활발하게 이루어져왔다. 다만 한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엔씨의 예를 보듯, 최근들어 국내 메이저급 게임업체들까지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 양국 협력, 어디까지 왔나

일본 콘솔 및 아케이드 타이틀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게임 개발은 현재 수면 아래서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과거의 경우 국내 업체들이 일본업체를 설득,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엔 역으로 일본업체들이 주도적으로 국내 파트너를 선정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SNK의 경우도 엔씨소프트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 전에 다수의 국내 개발사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일본게임의 온라인 버전 개발을 추진중인 개발사는 중소업체를 포함해 약 20여개에 이른다는게 업계의 추산이다. SNK와 전략적으로 손잡고 ‘킹오브파이터’ ‘사무라이 쇼다운’ ‘메탈슬러그’ 등의 온라인 버전 개발을 추진중인 엔씨소프트를 비롯해 CJ인터넷, 소프트맥스, 윈디소프트, 제이씨엔터테인먼트 등 개발을 공식화한 대형 개발사만도 10곳에 육박한다. 일본에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NHN, 넥슨, 한빛소프트, 네오위즈, 엠게임, 그라비티, 웹젠 등 메이저 개발사 및 퍼블리셔들도 현지 네트워크를 통해 대상을 선정, 공동 개발 및 서비스를 적극 추진중이다.

온라인 버전 개발이 추진중인 일본 타이틀의 면면도 화려하기 짝이없다. 국내 시장에서 지명도가 뛰어나고 탄탄한 유저층을 확보하고 있는 콘솔과 아케이드의 대작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제이씨가 개발하다 보류된 것으로 알려진 ‘쉔무’를 필두로, 팔콤의 빅히트작 ‘이스’ ‘영웅전설’ ‘구루민’, 반다이의 ‘건담’, 캡콤의 ‘귀무자’, 선라이즈의 로봇액션 게임 ‘슈퍼로봇대전’, 스퀘어에닉스의 ‘드래곤퀘스트’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품들이다.

# 이해관계 맞아떨어진 절묘한 결합(?)

불과 몇년전까지만해도 상상할 수조차 없던 한·일 게임업체간 제휴가 최근 봇물을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일본 게임업체들은 누구보다 프라이드가 강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한국 게임업계에 대해선 몇수 아래로 봐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업체들의 잇따른 ‘한국행’은 온라인게임 종주국의 기술력과 노하우, 나아가 온라인게임 플랫폼 자체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린 결과로 해석된다.

콘솔과 아케이드게임이 주류인 일본은 최근 브로드밴드 가입자 수가 급증하면서 온라인게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더이상 이를 수수방관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반면 콘솔·아케이드 시장은 침체기다. 더욱이 미국 MS가 네트워크 기반의 콘솔게임기 ‘X박스360’을 출시하면서 국내 온라인게임 진영을 빠르게 흡입, 소니를 비롯한 일본게임업계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업계 한 일본 전문가는 “일본이 한국엔 온라인게임으로, 미국엔 X박스360으로 기선을 제압당해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따라서 한국 온라인게임업체들과의 제휴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략적 파트너십이 절박하기는 국내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중국을 능가하는 새로운 온라인게임 시장의 ‘보고’(寶庫)로 떠오른 일본 게임명가의 ‘러브콜’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특히 콘텐츠 기획력의 한계에 도달한 국내 업체들로선 높은 완성도와 브랜드 인지도를 자랑하는 일본 콘솔게임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매력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궁극적으로 일본 시장에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는 교두보 구축 차원에서도 일본과의 제휴는 ‘옵션’이 될 수 없다.

# 장기적으론 ‘得’보다 ‘失’많아

현재로선 한국과 일본의 온라인게임 비즈니스 교류가 한국에 적지않은 도움을 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특히 국내 게임 시장이 포화기로 접어든 상황에 일본 콘텐츠 기반의 온라인 게임 개발은 새로운 성장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란 낙관론도 나온다.

중소 개발사의 한 관계자는 “블리자드의 ‘WOW’ 이후 웬만한 아이디어로는 얘기가 안된다. 이제 스스로 기획에 한계를 느낀다. 특히 글로벌 시장 공략이 가능한 방대한 스케일의 기획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일본에서 당분간은 얻을 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선 일본과의 교류가 단기적으로는 득(得)이 될지는 몰라다 길게보면 실(失)이 많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는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기본기가 탄탄한 일본업체로 노하우가 고스란히 넘어간다면, 온라인게임 분야에서 만큼은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한국의 ‘종주국 위상’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 그만큼 일본의 게임개발력과 잠재력은 위력적이란 의미다. 유무선 연동서비스업체인 모퍼스의 하정원 사장은 “사실 이미 한국과 일본의 온라인게임 개발력은 이미 백지한장 차이다. 우리의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쥘 기간이 길어야 1∼2년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이 한국과의 활발한 기술 및 인적 교류를 통해 온라인게임 노하우를 습득, 세계 시장에 진출한다면 한국게임의 국제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술, 자금, 브랜드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일본이 온라인게임 특유의 기술마저 습득, 양질의 콘텐츠를 무차별적으로 토해낸다면 국내 시장 잠식과 대외 경쟁력 약화라는 독이되어 돌아오는 ‘부메랑 효과’가 우려된다는 얘기다.

장인경 마리텔레콤 사장은 “사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나라는 미국도 중국도 아닌 일본”이라며 “지금처럼 종주국의 허상에만 안주하다간 모든 기득권을 일본에 내주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눈앞의 실리만 좇아 무분별하게 경쟁적으로 일본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추진하다간 언젠간 뒤통수를 맞게될 것”이라며 “(일본에서)취할 것은 취하되 (일본에 대한)경계심을 조금도 늦춰선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