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을 주도해온 국내 MP3플레이어 업계가 위기다. MP3플레이어의 주요 핵심 부품인 낸드플래시 메모리 공급 부족 사태가 이어지면서 업계는 사상 최대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컨버전스로 인해 휴대폰·MP3플레이어·디지털카메라·DMB·전자사전 등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주문이 늘었지만, 제조 업체 생산 라인 증설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의 50% 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업체 주문량의 절반밖에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세계 MP3플레이어 업계 1위인 미국 애플컴퓨터가 삼성전자·하이닉스 등과 낸드플래시 장기 공급 계약을 해 낸드 플래시 물량을 끌어들이는 ‘블랙홀’로 자리잡으면서 국내 MP3플레이어 제조 업체의 입지가 더욱 약해지고 있다.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도 지난달 코엑스에서 열린 한 조찬 강연에서 “애플·소니 등이 낸드플래시를 더 많이 공급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현재 주문량의 50%밖에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힐 만큼 낸드플래시는 절대적 부족 상태를 맞고 있다. 업계는 이미 ‘낸드플래시 공급 부족 사태로 MP3플레이어 업계의 구조조정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MP3플레이어 구조조정=낸드플래시 부족 사태의 파장은 중소기업에 훨씬 크다. 대량 구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과 수량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낸드플래시 부족은 곧 MP3플레이어 사업 축소를 의미하며, 그에 따른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MP3플레이어 사업 지속 여부가 낸드플래시 공급 회사의 선택에 좌우되는 운명이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형 가전 업체들이 MP3플레이어·디지털카메라·휴대폰·게임기 등에 낸드플래시 사용을 늘리고 있어, 공급 부족 사태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약한 MP3플레이어 업체들은 낸드플래시 구입난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A사 대표는 “주문을 받아도 메모리가 없는데 어떻게 계약을 하고 수출을 할 수 있냐”고 토로했다. 업계의 집단 행동도 나오고 있으나, 해법 찾기는 쉽지 않다. 중소 MP3플레이어 업체들의 모임인 한국포터블오디오협회(KPAC)가 안정적인 메모리 수급과 단가 인하를 꾀하고 있지만 업체마다 의견이 달라 난항을 겪고 있다.
국내 MP3플레이어 업계 1위 업체인 레인콤조차 KPAC의 공동 구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관망하는 상황이다.
◇흉흉한 MP3플레이어 업계=낸드플래시 메모리 수급 불안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이 중소 MP3플레이어 업계의 구조조정은 시작됐다. 올해 이미 J사와 G사가 MP3플레이어 사업을 정리했으며 MP3플레이어를 전문적으로 위탁 생산해온 S사의 경우 생산량 감소로 지난해 1000억원이 넘은 매출이 올해 절반으로 줄었다.
B사 사장은 “국내 업체들이 개척한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을 낸드플래시 부족 때문에 손 놓고 빼앗기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낸드플래시 수급 불안이 이어지면서 낸드플래시를 공급하는 국내 총판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C사 사장은 “대리점들이 수출 기업에 우선 공급한다는 이유로 낸드플래시를 주문할 때, 해외 바이어와의 계약서를 요구하고 있다”며 “수출 물량 및 제품 사양, 바이어 연락처 등이 모두 들어 있는 영업 기밀을 대리점에 제출하면서 낸드플래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일부에서는 “낸드플래시 부족을 이용해 대기업들이 국내 중견 MP3플레이어 시장에 대한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있다” “특정 기업에 낸드플래시 공급이 집중되고 있다”는 등 흉흉한 소문마저 떠돌고 있다.
윤건일기자@전자신문, ben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