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 청연

박경원(1901-1933). 불과 서른 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여류비행사 박경원의 일대기를 그린 ‘청연’은 지금 거센 친일시비에 휘말려 있다. 조선 최초의 여류비행사로 알려진 박경원의 친일 행적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소름’을 만든 윤종찬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청연’이 그녀의 삶을 애써 미화하지는 않았지만 박경원의 친일 행적에 대해 용기 있게 파헤치고 있는 것도 아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던 해, 어린 소녀 박경원은 공중을 나는 경비행기를 보고 창공에 대한 꿈을 갖기 시작한다. 영화는 박경원이 비행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도쿄의 비행학교로 유학 가는 192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험난한 육체적 훈련과정은 물론 조선인에 대한 민족차별을 거치며 뛰어난 조종사로서 능력을 인정받기 까지가 굴곡 있게 펼쳐지는 영화 ‘청연’은, 리듬의 강약과 완급조절을 탁월하게 구사하는 윤종찬 감독의 빼어난 연출력으로 캐릭터들의 감정선이 살아 있는 드라마로 완성되었다.

컴퓨터그래픽(CG)과 미니어처의 특수촬영이 도입되어서 폭풍우 속을 뚫고 날아가는 박경원의 비행기 청연의 모습도 매우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아직도 미니어처 촬영은 너무나 표시가 나고, 생동력은 떨어진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 초반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당시 일본사회의 모습이 세트와 의상, 소품 등으로 훌륭하게 재현되어 있다.

90억원이 넘는 순제작비, 미국과 일본, 중국, 한국 등 4개국에 걸친 11개월의 촬영 등을 거쳐 8개월의 후반작업을 통해 미니어처와 CG를 동원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고, 이런 험난한 제작일지는 작품의 완성도로 보상받게 되었지만, 박경원의 친일 시비는 예기치 못한 복병이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일 경우, 현실의 어디까지가 영화적 구성을 위해 각색이 허용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매우 어려운 문제다.

윤종찬 감독은 박경원의 친일 행적은 사실이기 때문에 일장기를 들고 마지막 비행을 하는 모습으로 압축해서 표현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러나 벽경원의 친일 문제가 사실적으로 체감 있게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청연’은 친일 시비를 피해나갈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박경원 이전에 중국군에 합류해서 싸웠던 권귀옥이 조선인 최초의 여류비행사라는 점에서, 박경원에 대한 수식어는 조선 최초의 민간 여류비행사로 바뀌어야 하며, ‘청연’은 마지막 엔딩 이후의 별도 자막을 통해 이 사실을 밝히고 있다.

비행사가 되겠다는 한 여성의 집념과 열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청연’은 잘 만든 드라마다. 특히 박경원 역을 맡은 장진영의 배역 몰입도는 매우 뛰어나서 ‘소름’ 이후 급성장하고 있는 그녀 연기력의 결정판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다만 영화 속의 박경원과, 친일 행적을 보였던 실제의 박경원의 모습이 너무나 거리가 있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청연’이 정말 좋은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박경원의 허물까지도 정직하게 응시했어야 했을 것이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