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이 많았다. 무엇인가를 노리고 한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지난 16일 ‘신한은행 스타리그’ 16강전 2주차 경기에서 역사적인 대기록인 스타리그 개인전 통산 100승을 달성한 ‘테란의 황제’ 임요환(SK텔레콤T1)의 소감은 한마디로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온게임넷 스타리그 개인전 100승이라는 기록에는 지난 5년간 총 6차례나 결승전에 오르며 ‘황제’로 군림해온 그의 땀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상 첫 스타리그 2연속 우승에 이어 개인전 통산 100승의 고지에 오르는 등 e스포츠의 역사를 또다시 갈아치운 ‘황제’ 임요환. 그가 온게임넷 스타리그 개인전에서 달성한 100승의 의미와 그동안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았다.
# 임요환 없으면 스타리그도 없다
이번에 임요환이 달성한 개인전(온게임넷 스타리그, 챌린지리그, 듀얼토너먼트 포함 방송경기) 100승은 그가 국내 e스포츠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중심인물이라는 점을 또 한번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이번 시즌이 18회째다. e스포츠만 놓고 보면 긴 역사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제 겨우 7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시즌당 한 선수가 펼칠 수 있는 경기 수를 따져보면 최고로 많아야 25경기 정도 된다. 선수당 평균 5∼9경기를 갖게 되는 듀얼토너먼트를 통해 본선에 올라 우승까지 차지할 경우(11∼16경기)를 모두 합한 경기 수다.
이런 상황에서 100전도 아니고 100승을 달성한다는 것은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역사를 같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임요환은 처음 본선에 진출한 4회 대회부터 지난달에 마친 17회 대회까지 약 5년 동안 총 14번의 대회에 출전해 2번의 우승과 4번의 준우승, 그리고 1번의 3위를 차지했다. 그가 참가한 14번의 대회 가운데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단 한차례에 불과했다. 이같은 과정은 그에게 55만명에 달하는 열광적인 팬클럽 회원을 안겨주었다.
이런 관점에서 국내에 e스포츠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임요환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등장한 지난 2001년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임요환 이전에도 많은 스타플레이어가 있었다.
한국인 최초의 세계 스타크래프트 챔피온인 신주영이 한때 신드롬을 만들어 냈고, ‘쌈장’ 이기석이 TV광고를 타고 알려지면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가림토’ 김동수를 비롯해 몇몇 스타플레이어가 등장, 한시대를 풍미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모두 후배들에게 왕좌를 내주고 밀려나야만 했다.
하지만, 임요환은 달랐다. 지난 2001년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이후 지난 11월 ‘So1 스타리그’까지 무려 5년 가까운 세월동안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달성한 100승은 ‘황제’ 임요환의 시대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이정표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 4년 10개월만에 이룩한 100승 금자탑
임요환의 첫 방송경기는 2000년 1월1일 열린 ‘크레지오 서바이벌 대전’이다. 임요환은 이날 김정민과 ‘로스트템플’에서 경기를 했고, 아쉽게 패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온게임넷에서는 2000년 7월 20일 ‘프리챌배’ 예선전에서 이재항과 벌인 비방송 경기가 첫 경기다. 방송으로 진행된 공식경기에서는 2001년 2월 16일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전에서 정완수를 꺽은 것이 시작이었다. 임요환은 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승수사냥에 나서왔다.
그는 그해 5월 5일 이 대회 결승전에서 장진남을 상대로 한 2번째 경기에서 10승을 따냈고, 9월 8일 열린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에서는 라이벌 홍진호를 상대로 20승째를 챙겼다.
50승 고지는 2003년 2월 7일에 등정했다. 3차 듀얼토너먼트 E조 5경기에서 만난 장진남을 상대로 한 승리였다. 그의 100승 제물은 최근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프로토스 3인방 가운데 한명인 송병구(삼성전자칸)가 됐다. 임요환은 지난 16일 ‘신한은행 스타리그’ 16강 2주차 경기에서 송병구에게 GG를 받아내며 대망의 100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정완수를 상대로 첫승을 올린 이래 무려 4년 10개월 동안 써내려온 새로운 e스포츠 역사였다.
<표> 임요환 온게임넷 개인전 일지
1승=2001년 2월16일 한빛소프트 스타리그 16강 임요환 승 <네오정글스토리> 정완수
10승=2001년 5월5일 한빛소프트 스타리그 결승 2경기 임요환 승 <네오정글스토리> 장진남
20승=2001년 9월8일 코카콜라 스타리그 결승 1경기 임요환 승 <네오홀오브발할라> 홍진호
30승=2001년 12월28일 2001 스카이 스타리그 결승 2경기 임요환 승 <네오버티고> 김동수
40승=2002년 9월6일 2002 스카이 스타리그 8강 임요환 승 <네오버티고> 장진남
50승=2003년 2월7일 3차 듀얼토너먼트 E조 5경기 임요환 승 <네오비프로스트> 장진남
60승=2003년 9월12일 마이큐브 스타리그 C조 재경기 임요환 승 <신개마고원> 도진광
70승=2004년 7월6일 2004 1차 챌린지리그 순위결정전 임요환 승 <노스탤지아> 홍진호
80승=2004년 11월20일 EVER 스타리그 2004 4강 임요환 승 <머큐리> 홍진호
90승=2005년 8월26일 So1 스타리그 16강 임요환 승 <알포인트> 안기효
100승=2005년 12월16일 신한은행 스타리그 16강 임요환 승 <라이드오브발키리즈> 송병구16일 드디어 임요환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개인전 100승이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인터뷰에 나선 임요환은 이날 따라 유독 “부담이 많았다.” “스트레스가 심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 지난 시즌 결승전에서 달성했더라면 통산 3회 우승이라는 대기록과 함께 작성할 수 있었던 100승 고지였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보내오는 관심과 격려의 목소리까지 그에게는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온 때문이었다. 그에게 100승 달성의 감회를 들어봤다.
- 100승을 앞두고 부담이 컷을 텐데.
▲ 부담이 심했다. 신경이 날카로와져 팀 외 사람에게 화를 낸 적도 있었다. 매년 겨울에는 연습량이 적어 스트레스가 심하다. 원래 여름보다는 겨울을 좋아하는데 스케줄과 이벤트를 생각하면 겨울이 싫어지기도 한다. 예상은 했지만 경기 직전에 1승부터 99승까지를 정리한 특집이 방송이 나오는 것을 봤다. 이번에 100승을 못하면 한동안은 그 부담감을 떨쳐버리지 못해 계속 이루지 못할 것같아 이번 만은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중했다. 내게는 100번째 승리가 아니라 그냥 눈앞에 다가온 1승을 추가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다.
- 이번에는 도박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
▲ 무아지경에서 경기를 펼쳤다. 캐리어가 어려워 박지호전에 썼던 도박적인 플레이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지켜보는 사람이 많은 경기라 안정적으로 플레이 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나를 만나면 정찰을 많이하기 때문에 앞으로 당분간 도박적인 플레이를 못할 것 같다. 당분간 도박적인 플레이를 안하면 상대가 정찰을 하지 않게되지 않겠나. 다시 도박적인 플레이를 하려면 그때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웃음)
- 어느 시기가 가장 힘들었나.
▲ 스폰서가 없던 4U시절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어도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편했다. 지금은 신경을 써야하는 부분이 많아 오히려 반대상황인 것 같다. 식구가 많아지다 보니 서로 간에 신경을 쓰지 못하기도 한다.
- 앞으로 몇승까지 올릴 계획인가.
▲ 몇승을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처음처럼 그때 그때 열심히 해서 이기고, 나중에 돌아 보며 느끼고 싶다. 무엇인가를 노리고 한다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다.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150승도 하고 200승도 하지 않겠나.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