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혁명은 시작됐다]2부-일·유럽 로봇현장을 가다: 유럽편⑤프랑스 에꼴 데 민

[로봇혁명은 시작됐다]2부-일·유럽 로봇현장을 가다: 유럽편⑤프랑스 에꼴 데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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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유럽의 기초과학연구를 선도해온 나라다. 또한 TGV, 콩코드기 등 다른 나라는 엄두도 못낼 창의적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기는 산업강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로봇분야에서 프랑스는 그다지 깊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로봇기술을 통해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 걸까.

파리에 위치한 국립과학대학인 ‘에꼴 데 민’(국립광산학교, Ecole des Mines de Paris)은 프랑스 최고의 과학수재들만 모이는 곳이다. 나폴레옹이 정부가 필요로 하는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창설한 고등교육기관인 ‘그랑제콜’(Grandes Ecoles) 중에서 에꼴 데 민은 이공학분야에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에꼴 데 민은 본래 산업혁명에 필수적인 금속, 석탄 등 지하자원 연구를 위해 설립한 학교였지만 오늘날에는 전자, 기계, 바이오, 우주항공 등 프랑스 첨단과학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1년에 선발하는 신입생은 불과 120명. 철저한 소수정예와 엘리트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한번 이 학교에 입학하면 신분상승과 함께 프랑스 사회에서 출세가 보장된다. 4개의 분원을 합친 학생수는 총 1270명. 한국을 포함한 외국학생 비율이 28%나 된다. 최근에는 세계화 추세에 따라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강의도 늘려가고 있다.

△에꼴 데 민의 로봇연구현황: 이 곳의 로보틱 센터는 총 35명의 연구진으로 구성되며 주로 민간업체와 계약에 따른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있다. 에꼴 데 민이 추진하는 여러 로봇프로젝트 중에서 무인자동차 연구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르노, 푸조 등 프랑스 자동차업체들이 80년대부터 거액을 지원하면서 무인자동차의 기반기술을 개발해왔기 때문이다.

로보틱 센터의 필립 퓌시 교수(53)는 무인자동차의 테스트 장면이 담긴 비디오를 기자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르노의 승합차량을 개조한 무인차량은 직선거리에서 120Km, 커브길에서 50Km까지 속도를 내면서 자동차 전용도로를 안전하게 주파했다. 이같은 실험이 2002년에 성공했으니 지금은 훨씬 앞선 무인주행기술을 시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뒤이어 시연된 비디오에선 오토바이와 온갖 차량이 복잡하게 오가는 시내 도로를 무인차량이 주행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지난해 촬영된 테스트 장면이다. 정체, 지체가 수시로 일어나는 교통흐름. 전문용어로 단속류라고 불리는 복잡한 시내 교통상황에서 무인차량이 주행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쭉 뻗은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벗어나지 않고 앞차와 간격만 유지하는 2000년대 초반의 무인차량에 비하면 훨씬 진보된 기술이다. 자동차에 내장된 감시 카메라 외에 레이저 센서와 고주파 레이더를 채택하면서 무인주행의 안전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연구원들은 설명했다. 무인차량은 차도의 신호등과 정지선, STOP, 차선변경과 같은 도로표지판까지 정확히 구분하고 있었다. 차도로 뛰어드는 보행자와 자전거의 움직임도 어렵잖게 잡아내는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야간주행장면이 나왔다. 도로 윤곽도 희미하고 상대편 차선의 전조등만 간간히 보이는 열악한 조건. 과연 카메라에 의지해서 무인차량이 밤중에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릴 수 있을까. 보는 사람이 가슴을 조릴 정도로 위험해 보였지만 로봇자동차는 야간주행시 차선 유지와 방향전환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같이 방문한 국내 전문가들도 복잡한 도로환경에서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자동차 위치를 분석해내는 에꼴 데 민 연구팀의 SW처리 알고리듬은 상당한 기술수준이라고 인정했다. 연구실 밖에 세워둔 무인차량을 직접 보여준 한 연구원은 “우리가 완벽한 무인차량을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안전운전을 돕고 운전자의 피로감을 줄이는데 확실히 도움을 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 밖에도 에꼴 데 민의 로봇연구진은 유인차량을 따라가는 무인주행기술이나 무인주차 등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보여줬다. 하지만 유럽의 독창적인 첨단기술이 상당수가 그렇듯이 이론은 먼저 개발해 놓고도 상용화에서 일본, 미국에 뒤지는 사례도 있었다. 에꼴 데 민의 로보틱 센터는 지난 2000년 세계최초로 자동차 혼자서 빈 주차공간을 찾아가는 무인주차기술을 개발했다. 이는 일본의 도요타에 비해 3년이나 앞선 성과였다. 하지만 프랑스 자동차업체들은 무인주차의 실용화에서 일본에 뒤졌다. 프랑스는 지난 90년대까지 무인자동차 연구에서 독일, 일본과 함께 세계를 선도한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지난 몇년새 미국이 군용차량의 30% 무인화를 목표로 엄청난 국방비를 퍼부으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기획청(DARPA)은 사막지형에서 무인차량 완주에 성공한데 이어 오는 11월 혼잡한 도심지 도로환경을 그대로 재현한 ‘어번 챌린지’대회를 캘리포니아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미국 자동차업계는 머지 않아 무인주행기술을 ABS, 에어백과 같은 옵션사양으로 장착해서 일본에 뺏긴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되찾는다는 희망까지 내비치고 있다. 반면 프랑스가 무인차량 연구에서 미국을 따라잡을 가능성은 점점 요원해지고 있다. 에꼴 데 민의 로보틱 센터도 이같은 상황변화를 인정하고 미국 아리조나 대학팀과 손잡고 11월 미국 DARPA가 주관하는 어번 챌린지 대회에 참여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지형 3차원 모델링과 가상현실기반의 자동차 설계: 로봇연구팀은 민간업체 용역으로 진행 중인 또 다른 첨단기술도 공개했다. 지형 3차원 모델링은 자동차 뒤에 레이저 스캐너를 장착하고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주변의 건물과 도로망의 3차원 지도를 만드는 기술이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조금 더 완성되면 파리시의 전체를 사이버공간에 재현해서 3차원 가상투어도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또 가상현실기술을 이용해서 사이버 공간에 가상 쇼핑몰을 만들거나 자동차 디자인 개발을 앞당기는 등 민간업체에 도움을 줄만한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었다.

에꼴 데 민의 로보틱 센터의 두드러진 특징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명색이 로봇연구소인데 연구실에서 로봇제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무인자동차가 로봇이 아니냐며 별걸 다 묻는다는 반응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로봇기술을 보는 시각에는 ‘로봇이란 이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거의 묻어나지 않는다. 로봇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간주하는 한국인과 좀처럼 코드가 맞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인터뷰-필립 퓌시 로보틱 센터 교수

“우리 로보틱 센터는 로봇분야의 기초기술보다 자동화를 위한 응용기술 개발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에꼴 데 민의 필립 퓌시 교수(53)는 로보틱 센터의 주된 기능은 민간업체가 필요로 하는 로봇기술을 개발해주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의 로봇연구현황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면서 프랑스와 비교해서 설명했다. “한국은 서비스 로봇이나 이족보행 로봇 개발이 활발하다는데 프랑스는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 기업들이 그런 형태의 로봇제품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퓌시 교수는 자동차 업체 외에도 휴대폰 제조사 사젬, 방산업체 탈레스 등도 프랑스 로봇연구의 주요한 스폰서라고 귀뜸했다. 그는 “르노, 푸조의 로드맵을 고려할 때 지금 개발되는 무인자동차기술들은 향후 3∼4년내 고급 승용차, 트럭 등의 안전옵션으로 채택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복잡한 시내도로에서 보행자, 오토바이를 저절로 피하는 스마트카의 등장이 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퓌시 교수는 에콜 데 민이 추진하는 무인차량 프로젝트가 프랑스에선 최대 규모지만 미국, 독일에 비해 열세라는 지적도 빠뜨리지 않았다. “로봇화된 무인차량은 세계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을 겁니다. 사고를 방지하는 로봇자동차가 나오면 누군들 사지 않겠어요”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