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혁명은 시작됐다]3부-로봇생태계를 만들자: ⑥평평한 세상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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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주민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네, 됐습니다. 끊어요.” 요즘 신용카드사나 검찰청 직원을 사칭해 남의 돈을 빼내는 전화사기(보이스피싱)가 극성이다. 대부분 중국과 대만의 국제범죄단이 거는 인터넷 국제전화라서 적발하기도 곤란하단다. 이젠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화의 대열에 사기꾼까지 뛰어들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저서 ‘세상은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에서 강력한 통신수단과 정보화에 의해 글로벌화 주체가 국가와 기업에서 개인으로 확대된다고 주장했다. 멀리서 사례를 찾을 것 없이 옌볜에서 국제전화로 사기를 치는 못된 인간도 그 나름대로는 세계화의 물결에 성공적으로 동참한 셈이다. 한국과 중국이 모두 평평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전화사기단이 전 세계를 상대로 활동할 수 있는 배경에는 값싼 신종 통신매체, 즉 인터넷전화의 보급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국제전화비가 옛날처럼 턱없이 비싸다면 중국 땅에서 한국 전역에 전화사기를 치는 범죄유형은 애당초 등장하지 못했다. IT혁명은 우리가 사는 지구를 짧은 시간에 평평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산업을 창출했으며 수많은 개인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진보는 로봇산업의 미래에도 절대적 영향력을 미친다. 요즘 관심을 끄는 지능형 로봇은 로봇공학계의 자생적 성과라기보다는 광대역 통신과 컴퓨터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준 뜻밖의 선물이다. 반도체 성능과 광통신망의 전송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다면 대부분 로봇장비는 공장에서 똑같은 일만 반복하는 투박한 기계에 불과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앞으로 필요로 할 중장기 로봇수요를 찾으려면 적어도 2010년대 중반까지 IT혁명의 진행방향과 사회변화를 먼저 예측하고 역으로 유추하는 프로세스도 해 볼 필요가 있다. 저 평평한 세상 너머에서는 어떤 로봇들이 활약할까.

 ◇이보다 선명한 영상은 없다= 삼성전자는 오는 2015년 사람의 눈으로 실물과 구분할 수 없는 ‘초고선명(ultra- efinition) TV(UDTV)’가 상용화될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UDTV는 HD급보다 4∼5배 선명하고 시야각도 2배로 넓기 때문에 현장에 가지 않고도 거의 완벽한 시각 정보로 몰입할 수 있는 ‘원격현실감’(telepresence)을 실제로 구현한다. 입체적 공간감을 구현하는 3차원 TV도 상용화된다. 이 같은 초고선명 영상정보를 다루려면 TV는 물론이고 통신망·저장장치·카메라 등 관련산업 전반에 거대한 신규수요 창출이 예상된다. 방송이 아닌 개인 간의 영상통화도 육안으로 구별이 힘들 정도의 고화질 서비스가 일반화될 것이다. 최고 1Gbps급의 전송속도를 구현하는 4G 이동통신이 이통시장 주도권을 잡는 시점도 넉넉잡아 2010년대 초반이면 충분하다.

 이처럼 다양한 고화질 영상서비스는 우선 원격제어가 되는 로봇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는 촉매가 될 전망이다. 보이는 게 많으면 참견할 일도 많아진다. 현장에서 전송되는 영상정보의 충실도가 높아질수록 접속자는 확신을 갖고 원격지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의료계의 원격수술이나 로봇기반의 원격회의·원격쇼핑·해외공장 시찰 등은 좋은 사례다. 굳이 업무상 목적이 아니더라도 로봇의 몸체를 빌려 세계 곳곳의 관광지를 자유롭게 둘러보거나 멀리 떨어진 지인과 현장에서 담소를 나누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 자아의 끝없는 확대욕구에도 부합한다.

 ◇로봇도 세계화의 주역=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인을 위한 실버타운 건설이 붐을 이룬다는 소식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은퇴 후가 아니라도 각박한 한국을 떠나 날씨 좋고 물가 싼 외국에서 모여서 살자는 웰빙 경향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로봇기술의 발달은 이처럼 사회생활의 지리적 제약을 벗어 던진 사람에게 새로운 연결고리를 제공할 전망이다. 무선통신망과 접속한 미디어 로봇을 통하면 기술적으로 사회생활의 상당부분을 대체할 수 있다. 문제는 로봇기반의 원격업무를 법률적,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준비작업이 필요하다는 것. 요즘 신도시 건설에 토지보상금만도 20조원이라는데 주택수요 분산과 집값 하락을 위해 로봇을 세계화의 첨병으로 내세우는 방안은 적극 검토할 가치가 있다. 또 국산 서비스 로봇(헬스케어·청소·보안 등)의 해외진출에도 재외 한국인이 몰려사는 신도시는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다.

 ◇UCC에서 UCR(User Created Robot)로=로봇OS와 부품의 표준화가 진행됨에 따라 DIY방식의 로봇자작, 이른바 UCR가 인기를 끌면서 예전보다 로봇수요가 훨씬 대중화하고 많은 부품수요를 창출할 전망이다. 로봇제조사를 통하지 않고도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기능을 지닌 로봇제품을 입맛에 따라 만드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과거 PC기술의 발달과정을 보면 아무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SW를 만들어 배포했던 수많은 생산소비자(프로슈머)의 노력이 큰 기여를 했다.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UCC 열풍은 세계 영상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가 로봇을 직접 설계, 조립하는 UCR 개념의 부상은 지능형 로봇시장의 대중화와 기술기반 확충에 중요한 촉매로 작용할 전망이다.

 ◇평평한 세상의 끝= 지구가 계속 줄어들다 보면 평평한 단계를 넘어 결국 블랙홀처럼 하나의 점으로 축소되는 시기가 온다. 이는 물리적 거리의 한계를 넘어 개인의 자아와 세상이 하나로 합치됨을 의미한다. 아마도 2015년께에는 서울과 뉴욕, 로봇과 인간, 사이버 공간과 현실세계가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있음을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인터뷰-오상록 정보통신부 로봇PM

 “네트워크 로봇은 IT혁명이 낳은 자식이에요. 미래 로봇산업을 전망하려면 IT의 흐름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오상록 정보통신부 로봇PM은 지난 2003년 로봇 지능을 원격지의 서버와 주변 센서망에 분산시킨 네트워크 로봇이란 개념을 최초로 제안했다. PC로 치면 네트워크 컴퓨터(NC)나 신 클라이언트처럼 가벼운 시스템을 만들어서 로봇대중화를 앞당기자는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로봇공학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인터넷 PC에 바퀴만 달았다고 로봇이냐는 비판도 있었죠. 하지만 요즘에는 로봇에서 통신망의 중요성을 많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는 정통부 로봇PM을 맡은 후 네트워크 로봇 개념을 바탕으로 국민로봇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로봇제품의 상용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차세대 로봇시장과 정보통신기술의 상관관계도 명쾌하게 설명한다.

 “우선 인터넷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집니다. 로봇을 둘러싼 공간에는 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USN)의 지능화가 진행되고 있지요. 이와 연계된 새로운 로봇서비스가 나올 겁니다.”

 오 PM은 한국과 일본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네트워크 로봇연구를 시작했고 기술수준도 대등하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더욱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확산되는 우리나라의 유무선 광대역 통신망은 네크워크 로봇의 상용화에 천혜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래의 로봇은 다양한 센서망과 지능형 임베디드 시스템이 하나로 연동되면서 전 지구 차원으로 활동범위를 넓힐 겁니다. 로봇이 네트워크를 타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거죠.”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