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포트]멜라민과 리치(REACH)

[글로벌리포트]멜라민과 리치(REACH)

 2008년 10월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두 가지 화학물질이 있다. 바로 ‘멜라민(melamine)’과 유럽의 신화학물질규제인 ‘리치(REACH)’라는 것이다. 흔히 통상장벽 혹은 기술우위를 통한 유럽 시장 보호 장치라 여겨지는 리치가 실질적으로는 12월 이후부터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또 어떠한 통상 문제를 야기시키는지, 유럽연합은 어떻게 리치 관련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볼 만한 시점이다.

이미 지식경제부 REACH 기업지원센터와 환경부 REACH 대응추진기획단을 거쳐 많이 홍보된 유럽연합의 신화학물질규제, 리치와 관련해 올해 12월 1일까지 모든 국내기업의 주요 관심사항은 ‘사전등록(pre-registration)’이다. 리치 집행을 알리는 시발점이기도 하지만 기업에 사전등록은 화학물질 등록시한을 유예받는 절차로서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전 국민의 이목을 끌고 있는 멜라민의 사전등록 현황은 어떠할까. 리치의 담당기관인 유럽화학물질청(ECHA)의 REACH-IT에 10월 20일 현재 멜라민을 등록한 기업은 176개다. 사빅·히타치·사이노펙·미쓰이·바스프·시바 등의 해외기업이 있고, 국내기업으로는 코오롱이 유일하다.

여기서 한 가지 명확히 해야 할 사항은 이번에 문제가 된 멜라민은 식품에 사용된 것으로서, 유럽연합은 ‘식품안전규제(178/2002/EC)’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리치의 예외 적용을 받게 된다. 대부분 국가도 이와 비슷하게 규제를 하고 있으며, 이번 멜라민 파동과 관련해 조치를 취한 정부담당기관 또한 대부분 식품의약품안전청이다. 리치에 따라 멜라민을 사전등록한 기업들은 식품 외의 공업용 화학물질로 멜라민을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기관들이다.

조금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만일 리치를 적용받는 멜라민과 관련해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일이 유럽연합에서 일어날까. 간략하게 말하면, 어떤 기업이 어느 기간 동안 어느 정도의 멜라민을 어떤 용도로 유럽연합 시장에서 제조 또는 수입했는지 명확히 추적해 27개 전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그에 상응하는 법적규제를 취하는 조치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리치 등록에 필요한 자료 항목을 살펴보면, 제조자·수입자명 및 세부 연락처, 화학물질정보, 화학물질의 제조 및 사용에 관한 정보, 화학물질의 분류 및 표시, 화학물질 안전사용지침, 노출정보 등이다. 물론 이 정보는 유럽화학물질청의 중앙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며, 이로써 매우 정확하게 문제를 일으킨 화학물질과 관련기업을 추적해 낼 수 있다. 이러한 추적장치는 화학물질배출량데이터베이스(European Pollutant Emission Register)에 따라 2001년 이래 이미 유럽연합 차원에서 어느 정도 구현되고 있는 상태기도 하다.

이 시스템의 한계라고 한다면, 제한된 화학물질군의 추적시스템의 가동, 27개 회원국의 데이테베이스와의 연동, 이로 인한 데이터베이스 업데이트의 난제가 있다는 것이다. 리치는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 강한 추적시스템을 가동하게 될 것이다.

화학물질 또는 문제가 되는 화학물질을 사용한 제품의 추적이 끝난 이후에 유럽연합 27개국에서는 어떠한 조치가 취해질까. 소비재와 관련해 문제가 생겼을 때 27개 어느 국가 정부기관이라도 관련제품을 신고하게 되면 전 27개 회원국에 전파되는 라펙스(RAPEX) 시스템이 유럽연합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다. 어느 국가군이라도 특정 문제 상품을 발견해 라펙스에 보고하게 되면, 실시간으로 전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전파된다.

더 큰 이슈는 특정 화학물질의 안전성과 관련해 유럽연합에서 문제가 생기게 되면, 책임 및 파급효과가 유럽연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멜라민 파동으로 중국정부 자체적으로는 유아용 우유 제품 등에 포함되는 멜라민의 최대치를 1㎎/㎏으로 정하는 조치를 취했으나, 유럽연합은 ‘2008/798/EC’를 통해 중국산 유제품을 포함한 비스킷이나 초콜릿 등의 수입을 금지했으며 멜라민을 2.5㎎/㎏ 넘게 포함하는 제품은 즉시 폐기처분하도록 할 방침이다.

캐나다는 유아용 유제품의 멜라민 최대치를 1ppm으로 정했으며 그 외의 제품에는 2.5ppm을 최대치로 정했다. 대만 보건부는 멜라민을 포함한 모든 음식류의 판매를 금했으며, 아르헨티나는 중국산 유제품 수입을 일체 금지했다. 미국은 HUA XIA Food Trade USA, Inc.에서 관련 중국산 제품을 리콜했다. 식품의약품청에서는 멜라민 안전위험평가 중간보고서를 배포해 그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헸다.

리치 시스템에서, 화학물질 사전등록을 하지 않게 되면 등록까지의 유예기간을 적용받지 못해 즉시 본등록을 요구받게 되고, 등록하지 않으면 등록이 완결될 때까지 관련 화학물질의 제조·수입이 거부되며 화학물질의 안정성이 문제가 되면 세계시장을 잃게 된다.

사전등록만을 리치 대응의 주안점이라고 생각하는 국내기업(특히 제품제조자)이 있다면 그 관점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화학물질의 ‘제한’과 ‘허가’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2009년부터는 제품과 관련된 난제가 본격적으로 리치에서 돌출될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기업의 리치 대응은 어떠할까. 다시 멜라민으로 돌아와서 이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문건이 존재한다. 하나는 유럽연합 기존화학물질규제(793/93/EEC)에 의해 작성된 멜라민 관련 보고서고 다른 하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작성한 멜라민 관련 보고서다.

첫 번째 문건은 멜라민을 생산하는 유럽제조자들이 2000년에 작성한 문건이고, 두 번째 문건은 오스트리아에서 지원해 작성한 멜라민 관련 보고서다. 이미 국내기업에 주지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의 화학물질 데이터는 미국이나 유럽의 화학기업이 분석, 보유하고 있다. 법·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는 유럽기업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 리치의 또 다른 맹점이기도 하다.

무리하게 입법한 후 집행도구를 만들어 가는 국가가 있는 반면에 집행을 위한 틀을 다진 다음 입법을 진행하는 국가도 있다. 특히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규제와 관련해서는 그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유럽연합은 후자의 국가인 듯하다. 리치의 집행가능성에 의구심을 품는 기업이 있다. 회원국별로 실질적인 집행력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유럽연합 차원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반적 집행(예, 사전등록처리)에는 난관이 있더라도 유럽화학물질청에서 큰 방향에 맞추어 업무를 처리해 나갈 것이다. 약속한 대로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면 비유럽 국가군에서도 엄청난 비난이 따르겠지만, 유럽연합기관에 그 어느 것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회원국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유럽연합기관을 지지할 회원국은 없다. 국내기업은 유럽화학물질청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리치에 대응해 나가기야 한다.

브뤼셀(벨기에)=박대영 구주산업환경협의회 사무국장(kece@kece.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