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월에 열리는 반도체분야 올림픽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ISSCC)’. 오는 8일부터 12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이 행사에는 올해 2500명 정도가 참석할 예정이다. 지난해는 전세계 3700명이 모여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환율 탓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KAIST도 지난해는 30∼40명이 참석했지만 올해는 절반 정도만 보낼 예정이다.
이공계 대학원생 및 대학교수들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환율 탓에 해외학회에 나갈 기회를 잃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 할 것 없이 지난해 대비 40%에서 최고 두배나 뛰어버린 환율로 인해 항공료, 체류비 등을 합한 경비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소인원만 참석하거나 아예 참가 자체를 취소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 진행해야 하는 표준활동, 연구정보 교류, 해외 공동연구 등에 차질이 예상된다.
한양대 A 연구실은 매년 10명 이상의 대학원생을 미국·일본 등 에너지 관련 해외학회에 보냈다. 그러나 올해는 환율 영향으로 배정된 출장비도 최대한 아껴쓰기로 했다. A 연구실 지도교수는 “해외학회에서 발표하려고 제출했던 논문도 철회했다”면서 “올해는 중요하고 꼭 필요한 학회가 아니면 학생들을 보내지 않을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KAIST B 연구실 지도교수는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해외에 나가 배울 수 있는 터전이 학회인데, 환율 때문에 기회를 잃고 있다”며 “환율이 안정되지 않는한 올 한해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될 거 같다”고 말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은 국제학술회의 경비 집행 기준을 강화했다. 연구실의 ‘비빌 언덕’마저 없어 진 것이다. 학술진흥재단 측은 지난해 9월부터 4개국 이상의 해외 저명학회가 주관이거나 학술대회 발표 논문이 50건 이상, 전체 발표자 중 외국인이 50% 이상인 학회 참석에만 경비를 지원한다고 한정했다. 사업단 관계자는 “고환율 시대에 외국에서 학술대회를 연다고 무조건 경비를 지원하는 것은 옛 말”이라고 설명했다.
대학가에서 2008년 기준 국제학술대회, 국제 공동세미나, 해외 대학과 공동연구 및 산학협력을 위한 교류 협정 등은 1만여 건을 넘었다. 서울대 C연구실 교수는 “이공계 관련 학과의 경우 국제적으로 연구 실적을 공유하며 ‘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하지만 국가 전체가 어려운 상황인데, 대학이라고 피해갈 수 있겠느냐”며 고환율 여파에 따른 고충을 토로했다.
설성인기자 siseol@etnews.co.kr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