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ITU가 주는 교훈

[ET단상] ITU가 주는 교훈

지난주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ITU 텔레콤월드 2009가 3년 만에 개최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전시회와 포럼이 함께 열렸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전시회에 참여한 업체는 대폭 감소했다. 예년 같으면 세계적인 통신사업자와 장비제조 업체가 총망라될 만큼 전시회 규모가 컸는데 이번에는 초라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성전자만 소규모로 참여했고 한국관에 ETRI와 몇몇 중소기업이 참여하는 수준이었다.

전시회는 보잘 것 없었으나 ‘오픈 네트워크 커넥티드 마인드’란 슬로건으로 개최된 포럼은 달랐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필두로 대통령·총리급 인사가 7명, 장관급이 무려 88명, 기업 CEO가 180명, 일반 참석자 1300명 등으로 5일 동안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러시아 전 대통령은 비디오 녹화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세션에도 참여했다. 장관급 회의 등을 비공개로 개최한 것도 특징이었다.

 전성기 때는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의 IT 대기업 CEO가 총출동하고 장차관은 물론이고 언론 기관에서도 20∼30명의 취재진이 북적였는데 이번에는 거의 볼 수 없었다. 방통위에서는 정기국회 국정감사로 인해 마지막날 하루 국제협력국장이 참석하는 데 그쳤다.

이번에 참석한 고위층은 대부분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이고, 이들 지역이 국가관을 만들어 전시회에도 적극 참여했다. 특징은 이들 지역이 현재 이동통신 보급이 제일 활발하고 시장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유선통신망을 구축하려면 투자비용이 엄청나게 소요되기 때문에 그 사이 통신의 사각지대로 놓였던 지역이다. 유선망보다 무선망을 구축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유선망을 건너뛰어 무선망을 직접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이내에 휴대폰 보급률이 50% 수준에 육박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휴대폰 다음에 이어질 것으로 무선 인터넷을 거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유선인터넷이 매우 잘 되고 있어 무선 인터넷은 수년째 주춤거리고 있는데 이들 지역은 유선 인터넷을 뛰어넘어 곧바로 무선인터넷으로 구축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개발한 와이브로가 이들 지역의 무선 인터넷 구축에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아프리카에서는 기지국과 기지국 연결도 광섬유 등 유선보다는 마이크로웨이브 등 무선으로 구축하고 태양전지를 전원으로 이용하려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 후에는 우리나라가 오히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무선 인터넷 분야에서는 뒤처지지 않을가 염려스러울 정도다.

앞으로 IT 해외 진출에 관심이 있다면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주시해야 할 것 같다. 아프리카 국가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것과 가능하면 값이 저렴한 장비와 단말기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이들 지역에서의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면에서 현재 중국이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다. 화웨이가 저렴하게 장비를 공급하고 여러 회사가 값싼 단말기를 대량 생산해서 공급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무역 흑자로 얻은 달러를 아프리카 각 국가에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제네바 전시회에서도 중국이 제일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느꼈다.

휴대폰이 고가의 사치품인 시대는 지나고 있다. 선진국만이 향유하던 시대도 지나고 있다. 선진국은 모두 시장이 포화된 상태다. 역동적인 시장은 아프리카와 중동, 남미 등이다. 앞으로 곧 전 세계 60억 인구가 모두 휴대폰을 손에 들고 서로 통화하며 하나의 네트워크에 접속될 날이 머지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통신의 미래를 봐야 할 것 같다.

임주환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 yim@klab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