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션 무죄 판결, 개인 정보 은폐 관행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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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션 무죄 판결은 한 마디로 옥션도 피해자라는 입장이 크게 작용했다. 옥션은 ‘선량한’ 관리자 의무를 다했으며 개인 정보 유출은 ‘불가항력’이었음을 입증 받은 셈이다. 옥션이 해킹을 당한 뒤 자진 신고한 점이 감안됐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개인 정보를 해킹당하더라도 집단 소송을 우려해 숨겨오던 관행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 옥션 승소 배경은= 재판부는 “정보통신망 서비스 제공자에게 해킹으로 개인 정보가 도난당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려면 제공자가 해킹 방지 의무를 위반해 이를 예방하지 못한 경우에 한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보보호진흥원은 매년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보안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를 감사하는데 옥션은 이를 무리없이 통과했다.옥션이 방화벽을 설치하지 않아 피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법이 정한 의무가 아니며 당시 다수 업체가 방화벽을 신뢰하지 않아 이용하지 않았다”는 옥션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웹 서버 ‘이노믹스’에 아무런 보안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에는 “해킹 방식이 신종이라 악성코드는 발견됐지만 당시 통용되던 최신 백신 프로그램으로 탐지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옥션이 주민번호를 암호화하지 않아 정보가 유출됐다는 지적에는 “사건 당시 정보통신법상 주민번호는 암호화 대상이 아니었고 오는 28일부터 주민번호 암호화 규정이 시행된다”며 일축했다. 배상 책임을 묻기에는 ‘뚜렷한’ 후속 피해 사실이 없었다는 점도 무죄 판결 배경으로 작용했다.

  ◇ 주변 반응은 = 14만명이 넘는 원고인단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변론을 끝낼 당시만해도 배상금 액수를 염려했을 뿐 승소에 대해서는 자신했다. 소송을 진행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격한 반응을 드러내며 인당 2∼3만원의 재판 진행 비용 환불까지 요구하고 있다. 한 피해자는 “사건과 피해자도 있는데 피의자는 없는 상황”이라며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질까 두렵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도 예상 밖의 판결이라는 반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엄연히 피해 사실이 있는데 관리에 대한 책임이 조금도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밝혔다.

 해킹을 당한 기업이 자진신고하는 문화가 마련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나왔다. 그간 국내에서는 개인정보를 해킹당하더라도 집단소송을 우려해 숨겨온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옥션 측은 해킹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고 회원들에게 피해사실을 알렸다. 이 같은 ‘용감한’ 행동이 재판 결과에 감안됐을 거라는 평가도 나온다.

  ◇ 전망은 = 14일은 짤막하게 선고 결과만 낭독됐을 뿐이다. 원고 소송 변호인단은 2∼4주 뒤 판결문이 정식으로 송달된 뒤 면밀히 분석해 항소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판결문에는 판결이 선고된 세부 근거와 이유가 보다 자세히 나와있기 때문. 아직 원고 소송 변호인단은 ‘참담하다’는 반응만 드러냈을 뿐 항소 여부에 관해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옥션은 이번 판결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소액이라도 배상 판결이 났다면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있기 때문. 옥션 측은 “고객 입장에서 서비스하라는 채찍으로 여기겠다”고 밝혔다. 이어 “해킹을 당하고도 속병을 앓을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기업이 양지로 나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이 GS칼텍스· SK브로드밴드(구 하나로텔레콤) 개인정보 유출 사건 판결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강병준 기자, 허정윤기자 bjkang@etnews.co.kr